이른바 ‘성형쌀’로 쌀 소비 촉진에 나선 이가 있다. 뒤늦게 농사일을 배운 차경숙 명성제분 상무가 그 주인공. 경기 의정부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다 전남 영암으로 내려가 지역 특산물을 보고 기능성 쌀을 생각해냈다. 쌀 시장에 붐을 일으키며 ‘6차산업’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는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 우리동명성제분이 개발한 톳쌀 ⓒ조선뉴스프레스
“남편이 20여 년간 쌀 관련 일을 하고 있어요. 옆에서 일을 돕다 보니 저도 들은 게 많죠. 쌀 생산량은 거의 그대론데 소비가 줄어 많은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묘안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톳쌀, 다시마쌀 등을 만들게 됐어요.”
차경숙(50) 상무의 기능성 쌀 개발은 농가에 대한 ‘걱정’에서 출발했다. 차 상무는 2016년 전남 나주에 있는 제분회사 ‘명성제분’을 인수하면서 남도 해안가 사람들이 종종 해먹는 ‘톳밥’을 상품화하기로 했다.
“결혼하고 의정부, 포천에서 살다 20여 년 전 시댁이 있는 전남 영암으로 내려왔어요. 전라도에서 사는 건 생전 처음이었죠. 모든 게 신기했어요. 그중 하나가 ‘톳밥’이었어요. 이곳 사람들은 밥을 지을 때 톳을 넣더라고요. 향긋한 해초 향에 오물오물 씹히는 밥맛이 일품인데 그 맛에 반해 저도 자주 해먹었죠. 과학적인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톳밥을 자주 해먹는 사람들이 건강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됐어요. 톳은 해조류 중에서 철분 함유량이 으뜸입니다.”
쌀 25톤 소비하며 제품 개발에 몰두
차 상무가 ‘톳쌀’을 개발하기 전에 이미 상품화된 톳쌀이 나와 있었다. 그러나 기존 톳쌀은 쌀 표면에 톳을 코팅한 것이라 밥을 지을 때 코팅된 톳 성분이 씻겨나가 영양 성분을 잡아두는 데 문제가 있었다. 차 상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냈다. 빻은 쌀에 톳 가루를 섞은 후 다시 쌀알 모양의 ‘성형쌀’을 만들기로 한 것.
“쌀과 톳의 비율을 어떻게 해야 맛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2%에서 10%까지 계속해서 섞어보고 현미에도 섞어봤죠. 실험한 쌀만 25톤이 넘어요. 톳쌀의 생명은 맛과 모양이거든요. 밥을 지을 때도 모양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요. 쌀알이 잘 뭉쳐지도록 성형할 때의 비율과 압력, 온도에 대한 연구도 계속했어요.”
마침내 차 상무는 지난 4월 ‘밥할때 톳’이라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연이어 ‘밥할때 다시마’, ‘밥할때 표고’, ‘밥할때 녹차’도 내놓았다.
“남도에는 좋은 특산물이 많아요. 영암에서 가까운 완도에 질 좋은 톳과 다시마가 있고, 장흥은 표고가 유명하죠. 보성 녹차도 좋고요. 기왕이면 인근에서 나는 쌀과 지역의 질 좋은 특산물을 섞어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는 진도의 강황도 생각 중입니다.”
차 상무는 이러한 제품을 영암과 나주 등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했다.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참에 유통망을 전국으로 확대해야겠다고 작정한 그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이하 농업지원센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농업지원센터 측도 차 상무가 개발한 제품을 인정해 전국의 농협 하나로마트에 공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농업지원센터는 농협이 가진 전국 유통 채널과 금융망, 다양한 컨설팅 기능 등을 활용해 농식품 우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농민을 위한 종합 컨설팅을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곳이다.
차 상무는 농업지원센터에서 배운 대로 영양 분석과 상표 등록, 포장까지 모든 상품 출시 과정을 직접 해냈다. 지난 4월 농업지원센터가 연 ‘나의 살던 고향 장터’에서 제품을 선보인 이후 매주 토요일 전국을 무대로 제품 홍보에 나서고 있다. 그는 “농업을 6차산업이라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농사짓고 제품을 만들어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며 “정부나 관련 기관이 더욱 체계적으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0원 벌면 50원은 되돌려준다”
차 상무의 출발은 일단 성공적이다. 그의 ‘상쾌한 출발’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정부에서 고깃집을 했는데 언제부턴가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결국 가게를 접고 친정이 있는 포천으로 갔죠. 거기서 야산 10만 평을 임대해 흑염소를 키웠어요. 목장 옆에 있던 한 칸짜리 컨테이너가 집 겸 식당이었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닭볶음탕이나 염소 요리를 팔고 약도 팔면서 살았어요.”
그는 하나뿐인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남편을 대신해 식당, 농장 일을 도맡았다. 그렇게 5년을 보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했다. 아이는 커가는데 계속 컨테이너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전남 영암에 살고 있던 시아버지에게서 당장 내려오라는 ‘엄명’을 받은 것.
“아버님은 저희더러 ‘시골로 내려와 왕겨 납품 일이나 하라’고 하셨죠. 그 말씀에 당장 보따리를 싸서 아무 계획 없이 바로 내려왔죠.”
부부는 농업법인 ‘금강농산’을 세우고 왕겨 판매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납품처를 뚫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부부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농촌은 서로가 친인척으로 연결돼 있어 타지인이 발붙이기가 어려워요. 사업은 사람이 전부예요. 내가 100원 벌면 50원은 다시 돌려준다는 개념으로 일했어요. 그렇게 쌓은 인맥이 지금의 자산이 됐죠.”
왕겨를 납품하던 부부의 눈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들어왔다. 벼의 껍질(왕겨)을 벗겨내면 현미가 되는데, 이를 다시 도정해 흰쌀(백미)을 만드는 과정에서 쌀겨(미강)와 쌀눈이 부산물로 나온다. 쌀눈은 쌀이 가진 영양의 65%를 함유하고 있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쌀겨와 쌀눈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한 부부는 곧바로 제품화에 들어갔다. 현미를 공급받아 직접 추출한 ‘쌀눈’을 지역 농협을 통해 로컬 푸드로 출시했다.
왕겨에서 시작한 사업이 쌀눈으로 이어져 부부는 적잖은 돈을 모았다. 부부가 사업을 착실히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제분회사인 명성제분을 인수해보라는 제안을 받게 됐다. 고심 끝에 부부는 회사를 인수했고, 평소 생각했던 쌀 소비 촉진을 위한 다양한 쌀 가공품을 개발해 판매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남편 김철진(53) 씨가 명성제분 대표를 맡고 있지만 제품 개발과 판매 등 사실상 모든 부분을 아내 차경숙 상무가 책임지고 있다.
차 상무는 명성제분의 연구개발(R&D) 파트인 ‘행복한쌀연구소’도 맡고 있다.
“연구소요? 아휴, 대단한 게 아니에요. 회사 전체 매출도 지난해 10억 원밖에 안 돼요. 직원은 10명 남짓이고요. 그래도 꿈이 있습니다. 딸이 그러더군요. 우리 회사가 언젠간 ‘CJ제일제당’ 같은 큰 식품기업이 될 거라고요.”
차 상무의 딸이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엄마의 비전과 경영철학, 추진력이 대기업 오너 못지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죠. 시골에서 정성껏 만든 먹거리를 도시 사람들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쌀농사 짓는 농민과 지역민들이 상생을 도모하는 것, 이게 바로 저희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제품에는 첨가물이나 색소가 전혀 안 들어가요. 오로지 남도의 특산물만 들어가죠. 앞으로 내놓을 제품도 많습니다. 아기용 이유식, 환자용 유동식도 내놓을 예정이에요. 특화된 곡물 가공식품을 많이 개발하고 판매하는 게 바로 쌀 소비를 늘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차 상무는 인터뷰 말미에 “일반 쌀 7에 저희 제품 3의 비율로 섞어 밥을 해야 가장 맛있다”고 조언했다.
올해 한국 쌀 생산량 410만 톤, 1인당 쌀 소비량 연간 74.9㎏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6월 11일 발간한 ‘식량 전망(Food Outlook)’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지난해 420만 톤보다 3.1% 줄어든 410만 톤으로 예상된다. FAO는 우리의 쌀 생산량이 이집트(420만 톤)와 비슷한 수준으로 세계 15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인 중국은 전년보다 0.4% 증가한 1억 4230만 톤을 생산할 것으로 예측됐다.
우리나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연간 74.9㎏으로 2015년 77.4㎏, 2016년 76㎏에 이어 계속 줄어들 것으로 FAO는 내다봤다. 이는 아시아 평균 소비량(78.1㎏)보다 적은 수치다. 쌀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전체 곡물 생산량은 430만 톤으로 전년(440만 톤)보다 조금 적고, 곡물 수입량은 1530만 톤에 달해 수출량(10만 톤)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됐다. 1인당 곡물 소비량은 연간 125.5㎏으로 2015년 129.6㎏, 2016년 127.4㎏보다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한 우리나라의 쌀 의무 수입량은 2016년 41만 톤이었다.
백승구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