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우리 고향 앞 바닷가로 나가는 길에 옹달샘이 하나 있습니다. 옹달샘 물 한 잔 떠서 시원하게 목을 축였던 기억이 나요. 고향 옹달샘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요. 그 옹달샘을 기억하는 사람도 아마 우리가 마지막이겠지요.”
▶ 2000년 서울 워커힐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모습 ⓒ뉴시스
아흔의 노구를 이끌고 기자와 마주 앉은 실향민 김송순 할머니가 68년 전 6·25전쟁 중 떠나온 휴전선 넘어 함경도 고향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4월 27일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6·25전쟁 당시 고향인 북한 지역을 떠나 대한민국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을 만났다.
“10년 전 동생 살아 있다는 소식 듣고 꿈만 같았어요”
▶ 김송순 할머니 ⓒC영상미디어
김송순 할머니는 1950년 홀로 고향 함경남도 북청을 떠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 모두 고향에 남겨둔 채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지 68년이 흘렀지만 김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너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며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다른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겪고 있는 애절함보다는 나은 형편이라고 했다. 10여 년 전 친동생이 북한 고향에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이지만 동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 가슴 한곳을 억누르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동안 알지도 못했다”며 “이들이 보냈을 힘든 세월을 생각하면 늘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10년 전 처음 고향에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며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가 막혔지요. 동생이 보내준 편지를 보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계속 흘렀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동생이 보낸 편지로 처음 알게 됐는데 제 마음이 어땠겠어요. 형제들도 다 세상을 등지고 동생 한 명 살아서 가족이며 고향 이야기를 그렇게 편지에 적어 보내준 거예요. 그 편지를 잡고 있는 손이 너무 떨려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김 할머니는 곧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신문과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기대와 바람, 그리고 걱정과 아쉬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후 혹시라도 ‘북한에 남겨진 가족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과 기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게 되면 수많은 실향민과 이산가족들에게 또 다른 아쉬움과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제 나이 이제 90입니다. 68년 전 헤어진 동생과 하룻밤만이라도 얼굴 맞대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70년 가까운 시간 떨어져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족이 만나는 자리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고, 경계해야 하고, 묻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나눌 수 없다면 68년 만의 만남이 더 큰 아픔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김 할머니는 실향민, 이산가족의 아픔을 생각하는 결정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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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