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중화장실의 청결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중화장실의 위상이 높아진 데는 숨은 공로자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매일 열 시간씩 수시로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청결을 유지하려 애쓰는 화장실 관리인 덕분이다.
ⓒC영상미디어
“화장실에서 청소하시는 키 큰 남자분,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란 피우는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환경반장님이 잘 해결해주셨습니다.”
중부고속도로 통영 방향에 있는 이천휴게소에는 한 달에 한 번 고객의 소리함에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직원에게 ‘이달의 우수사원’ 상을 수여한다. 이영환(62) 씨는 이천휴게소에서 이달의 우수사원으로 가장 많이 선정된 직원이다. 1993년 이천휴게소 공사 현장에서 건설자재를 나르는 일꾼에서 이천휴게소 환경반장에 이르기까지. 24년을 한자리에서 근무한 이 반장은 이천휴게소의 살아 있는 역사다. 고향 충주에서 단돈 5000원 들고 올라와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게소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이 반장은 오로지 자식들을 잘 키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긴 세월을 버텨냈다. 그런 그도 화장실 관리인이라는 직업이 처음부터 달갑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요즘에야 화장실 관리인, 지역 관광산업 일꾼으로 불리면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처음 작업복을 입고 화장실에 섰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 속상했죠.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일을 시작하니까 한 달 만에 곧 익숙해졌어요. 화장실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거나 변기 청소를 할 때도 맨손으로 막 할 정도로요. 나중에는 그게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24년간 화장실 및 이용객 에티켓도 변화
이 반장은 긴 시간 화장실에서 세월을 보내며 공중화장실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담배연기 자욱했던 공중화장실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고, 화장실 내 쓰레기통이 사라지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화장실에 변화가 찾아올 때마다 이용객의 에티켓도 달라졌다. 그 변화 과정에서 여러 상황을 겪기도 했다. 화장실이 금연 건물로 정해졌을 때는 많은 사람의 항의가 빗발쳤다. 요즘은 화장실에서 자취를 감춘 쓰레기통 때문에 볼멘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다. 변기에 휴지를 흘려보내야 하는데 습관처럼 쓰레기통을 찾다가 화장실 바닥에 던져버리는 사람이 종종 있다.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진 휴지들을 줍느라 허리를 펼 새가 없지만 이 또한 금연 때처럼 새로운 화장실 문화가 정착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만하다.
이 반장이 정말 바쁠 때는 휴가철과 명절이다. 휴게소는 화장실에 급한 일을 해결하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럴 때면 화장실 앞에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갈 정도. 이용자가 평소의 몇 배가 되다보니 신경 써야 할 점도 많다.
“휴가철이나 명절에는 민원도 많아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그런 때는 특히 더 신경을 쓰지만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세요. 화장실에서 냄새가 난다,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해요. 그런데 몸이 생각처럼 안 따라주는 게 힘들더라고요. 나이를 먹으니까 예전보다 동작이 느려져서 스스로 답답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이 반장이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서일까. 이천휴게소(통영 방향)는 한국도로공사가 선정한 ‘2016년 상반기 우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로 선정됐다. 이천휴게소는 수도권에 있는 휴게소 중 유일하게 상을 받은 곳이다.
이천휴게소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긴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축하할 일이 또 생겼다. 간밤에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꿈을 꾼 터라 ‘오늘은 특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출근한 아침, 이 반장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행정자치부에서 그를 공중화장실 최우수관리인으로 선정해 장관 표창을 받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표창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으니 인터뷰 내내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제 생애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이죠. 24년간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한 점을 보상받은 것만 같았어요. 살면서 장관상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정말 큰 경사고 자랑거리죠. 보는 사람마다 잔치 한번 하라고 하는 통에 밥도 많이 샀죠.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어느덧 예순이 넘은 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굴하지 않고 휴게소를 지킨 이 반장에게 언제까지 화장실 관리인으로 일할 생각인지 물었다.
“휴게소 환경팀 중에서 제가 제일 어려요.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도 다들 정정하게 일하고 계세요. 그분들만큼은 일해야죠. 쉬는 날에도 집에 있으면 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자리에서 계속 환경팀장으로 일하고 싶어요.”
전국 공중화장실 우수관리인 선정 제도는
행정자치부는 화장실문화시민연대와 공동으로 ‘제십8회 전국 우수화장실 관리인’을 선정했다. 전국 곳곳에 있는 공중화장실 우수관리인을 찾아 노고를 치하함으로써 화장실 관리인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영환 이천휴게소 환경반장, 김영언 경기도 장애인복지회 수원시지부 관리인, 이평중 서울 메트로 환경부장, 유혜영 한국철도공사 대리, 정승철 목포시 환경보호과 주무관, 원성재 안성시 자원순환과 주무관 등 최우수관리인으로 선정된 여섯명은 행정자치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우수관리인으로 선정된 백7십4명은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대표상을 수상했다.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