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 29일 만에 전격 회동… 판문점 선언 이행 재확인
“만나자”, “좋다”… 격식보다 실용에 방점
▶ 5월 26일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남북정상이 앞으로의 남북관계와 회담 결과를 시사하듯 환한 웃음으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청와대
모든 게 파격이었다. 대신 격식도 의전도 간소했다. 공식 수행원도 최소화한 소탈한 만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월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회담을 가졌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후 꼭 29일 만이었다. 회담은 지극히 실용에 방점을 뒀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마주 앉으려면 긴 시간 동안 어려움이 있는데 필요할 때 이렇게 연락해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가 될 것 같다”면서 회담에 임했다.
이번 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요청으로 하루 만에 진행됐다.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든 격식 없이 만나자고 한 첫 정상회담의 약속이 실현된 셈이다. 5월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무산을 언급한 데 이어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공개된 시점이었다. 북미 정상은 회담 진행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성사 여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불투명했다. 문 대통령은 길잡이 역할에 다시 나섰다.
▶ 1 5월 26일 개최된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친구 간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회담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다음 날인 5월 27일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만큼 양측이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했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할 경우 북한과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을 실천할 의지가 있다는 입장을 서로에게 전달했다. 이어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위한 우리의 여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긴밀히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2 회담이 끝난 후 남북 정상은 붉은색 카펫이 깔린 길을 따라 걸었다. 현관 좌우에는 북한군 병사들이 도열했다. 3 이번 정상회담은 형식보다 실용적 관점에서 진행됐다. 회담 테이블에 남북 정상 외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만이 배석했다. 4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을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
중재는 다시 한 번 힘을 발휘했다. 북미는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고 북미정상회담 6월 12일 개최를 목표로 속도를 냈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와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판문점 통일각에서, 조 헤이긴 미국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북한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싱가포르에서,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뉴욕에서 일정과 의제를 중심으로 실무회담을 진행했다. 북미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도 줄어들었고 회담 무산에 대한 우려도 불식됐다.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이행에도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남북은 6월 1일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고 군사당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연이어 갖기로 했다. 또한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면서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서로 통신하거나 만나 격의 없이 소통을 이어가기로 했다.
남북 정상의 두 번째 만남은 허심탄회한 대화로 채워졌다. 대화 테이블에도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만이 배석했다. 요청 하루 만에 이뤄진 급작스러운 만남은 소탈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의전 차량으로 맞이해야 하는데 잘 못해드려 미안한 마음”이라며 “앞으로 좋은 열매를 키워 가을에 평양에 오시면 대통령을 성대하게 맞이하겠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평양에 방문해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남북 정상이 이렇게 쉽게 ‘만나자’, ‘좋다’ 해서 만났다는 것도 남북 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위원장도 “우리가 다시 한 번 재확약하고 이런 위기 상황에도 마음이 가까워지는 것이 평양과 서울이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라며 만남의 의미를 높이 샀다. 실질적 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마다 책임과 본분을 다하자고 했다. 남북관계도 국제사회도 모두 연결된 사안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회담의 본질은 북미관계의 중재 외에도 두 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의 책임 있는 이행 자세를 보여주는 데 있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며 “북미정상회담까지 예정돼 있어 이를 통해 평화 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가 아주 높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에서 김 위원장의 인기와 기대가 높아졌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 안 된다”라며 “자주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한곳에 앉아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약속 이행에서 아주 중요한 실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조미정상회담이라는 중요한 회담을 앞둔 시기에 함께 협력해나가는 그런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오늘 만남이 뜻 깊다”면서 북한을 예우하는 자세도 보였다. 아울러 남북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대감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전한 5월 27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신속하게 개최했다. 상임위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하며 우리 정부 차원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아울러 판문점 선언이행이 더 탄력 받는 계기가 됐으며 남북 정상 간의 신뢰를 보다 돈독히 하는 데도 크게 이바지했다고 진단하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고위급회담 개최 등 후속조치 방안을 논의했다.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