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19일 발의돼 1년이 지난 2017년 11월 24일 가결된 법안이 있다. 인재(人災)로 희생된 피해자를 지원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해 다시는 유사 재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참사법」이다. 먼저는 사건의 진상규명, 결국은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참사를 다룬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다. 이 법안의 제정 의미는 크다. 불과 얼마 전까지 참사의 피해자들은 담장 밖에서 눈물로 호소해야 했다. 이제는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안에 있게 됐다.
제도가 작동하려면 인력이 필요하다. 지난 3월 29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회적 참사 특조위)의 1차 위원회가 열렸다. 위원장으로 임명된 장완익 변호사는 앞서 1기 세월호 특조위에도 참여한 바 있다. 당시 특조위에는 여러 한계점이 있었다. 먼저 정부 파견 공무원이 사실상 특조위를 담당해 독립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기간도 단축됐다. 당시 정부는 2015년 1월 1일을 활동 개시 기준으로 정하고 2016년 6월 30일 조사 활동을 강제 종료했다. 정부 부처의 협력을 받는 것도 난항이었다. 무엇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완익 사회적 참사 특조위 위원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4월 18일 특조위 사무실에서 장완익 위원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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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별조사, 침몰 원인 규명부터 시작
세월호 참사 4주기입니다. 여전히 많은 진실이 수면 아래 있습니다. 진상규명에서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침몰의 원인을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왜 구조하지 못했는가 또는 구조하지 않았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침몰했는가를 보면 좀 더 명확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후 맞춰지는 조각들이 있습니다. 현재 활동 중인 선체조사위원회가 그 부분을 밝히기 위해 노력 중이고요. 곧 세월호를 직립으로 세울 예정이라고 하니 원인 조사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침몰 이전부터 징조가 있었다면, 그 징조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광범위하게 봐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세월호의 운항 기록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도 많은 관객이 관람하고 있고, 침몰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설들에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지요?
특조위의 조사뿐 아니라 민간에서 제기하는 여러 의견들도 폭넓게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가설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으면 논란이 됩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위원장 인사 말씀에서 ‘피해자들은 민원인이 아니라 참사의 당사자이자 특별조사위원회의 또 다른 구성원’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호의 경우 이제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들은 4년 동안 세월호만 바라보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모든 걸 바쳤습니다. 이분들이 가진 자료와 지식이 전문가 수준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사고의 당사자들입니다. 이들을 배제하고 논의를 진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특조위 조직에는 지원소위원회도 포함돼 있습니다. 특조위의 역할에 유사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담겨 있고요. 참사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대응 매뉴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7시간뿐 아니라 청와대의 7시간, 해경 지휘부의 7시간도 특조위의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했는데요.
대통령이 제대로 된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 시간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도 조사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와대는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구조의 주체였던 해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참사, 21세기에 남은 20세기의 숙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역시 특조위가 규명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1994년 가습기 살균제가 도입된 터라 피해의 규모와 진상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국가에 피해 사실을 알린 분들과 실제로 지원에까지 이른 경우가 차이가 있습니다. 원인이 다층적이기 때문이죠. 긴 시간 고통을 받은 만큼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분이 없도록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어느 한쪽도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려고 합니다. 진실이 드러나지 않으면 생명 경시로 인한 참사는 또 발생할 것이고, 평범한 우리 중 누군가가 또 다른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가 될 겁니다.
특조위 이전에도 제주 4·3 사건 재심청구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진상규명,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 활동 등을 이어왔습니다.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공권력에 의해 피해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저는 1994년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우연히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법조인이 적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활동을 이어오게 됐고요. 제가 학부에서는 언어학을 전공했는데 대구가 고향이다 보니, 아무래도 음성학 쪽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신 억울한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데는 재주가 있었던 거 같아요. 이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듣고 반성해야 다시는 억울한 일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게 교훈이고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참사’는 왜 일어난다고 보십니까.
20세기에 한국은 전쟁을 겪고 폐허가 된 땅에 원칙을 세우기도 전에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원칙보다 이윤을 추구했습니다. 생명을 경시하게 됐고 국가와 기업이 앞장서 진실을 은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쌓인 오류가 ‘사회적 참사’가 됐다고 봅니다. 21세기에는 20세기가 남긴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기억하는 것이죠. 2003년 2월 18일에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지하철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193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2014년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기억해야 한다”고요. 기억해야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