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창업 3년 이후 스타트업 생존율은 38%다. 미국 스타트업의 40%는 ‘NO market needs’ 즉 수요가 없어서 망한다. 창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이 지점이다. ‘고객에 대한 경험’. 만약 이 부분에 경험이 많은 선배가 함께한다면 어떨까. 선배는 고객에 대한 정보가 많고, 후배는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성하다면 이 둘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시니어의 경험과 주니어의 열정과 패기를 한데 모은 곳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세대융합창업캠퍼스다. 서울에서는 여의도 르호봇 블록큐브에 자리하고 있다. 르호봇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지명이다. ‘장소가 넓다’는 뜻으로 이삭이 판 세 번째 우물이다. 이삭은 이 세 번째 우물에서 비로소 적들에게 우물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땅을 넓힐 수 있었다.
르호봇 블록큐브는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 힘을 다한다. 먼저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여기에서 창업의 씨앗을 배양해 키워낸다. 이때 전 세대가 융합함으로써 시대를 아우르는 기업가 정신이 심겨지고 오래 상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영화 ‘인턴’에서 경험 많은 70세 인턴과 패기 넘치는 30세 CEO의 협업을 기억하면 쉬울 것이다. 르호봇 블록큐브의 김영록 센터장은 “우리는 계속 시작하고, 계속 도전하고, 계속 개선하며, 계속 창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고경력 퇴직자와 비전 있는 청년을 매칭하는 멘토링 풀(pool)을 운영 중이다. 르호봇 비즈니스센터에 입주한 기업 4100개 중 61%가 이미 중·장년층 사업가다. 이 네트워크는 전국 대학으로도 이어진다. 블록큐브센터에서 시작한 ‘시간’ 팀은 ‘시와 시 사이’라는 뜻의 문학 애플리케이션 창업팀이다. 1993년생인 스물여섯 대표부터 1971년생인 마흔여덟 개발자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하고 있다.
사람답게 사는 법 함께 고민해요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대학원을 갈까 창업할까 고민하다가 문학 콘텐츠를 다루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창업한 이유는 결국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예요. 우리 팀원들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을 서로 고민합니다. 때문에 ‘시간’에서는 문학과 다양한 콘텐츠 유형의 연계 또는 기술과 예술의 접점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여러 해결책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저희 애플은 2016년에 개발했는데요. 일상에서 문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시 낭독 프로그램과 인디 뮤지션과 함께하는 시와 BGM의 콜라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어요. 이런 콜라보는 2030 세대를 위한 공연으로 이어졌고요. 세대융합형 창업팀인 만큼 10년 이상 경력을 지닌 개발자와 이제 갓 졸업한 팀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문화와 문학이 과소평가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아무래도 애플리케이션은 기술 기반 산업이라 기술력이 중요하게 평가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알맹이인 콘텐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를 평가할 때 소셜 벤처의 개념을 넓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기업의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중·장기 멘토링도 확대되었으면 좋겠고요. 빠르게 변하는 사회일수록 변하지 않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인문학의 중요성은 더 커지리라 믿어요.
강지수(26) 대표
딸이 아빠가 하는 일을 좋아해
2016년 저에게는 망원경보다는 나침반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20년 가까이 다양한 조건과 환경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었지만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있었죠. 스타트업, 오픈소스, 클라우드 등 개발자의 환경은 바닥부터 변하고 있었고,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시립대 스타트업 네트워크에서 지금의 강지수 대표를 만나게 되었고요. 제가 지향하는 방향과 맞아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개발을 오래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습니다. 시간팀과 함께하면서 ‘나만의 시간과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나만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건 기분 좋은 경험입니다. 조금씩 내 것이자 우리의 것을 만들어가고 있고 그 결과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줍니다. 우리 딸이 지금은 아빠가 하는 일을 알고 있고 그 서비스를 좋아해주는 것도 큰 변화죠.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두세 배는 늘었고요. 무엇보다 장년 인재들은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들의 생계 걱정 없이 젊은 인재들과 함께 성공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런 세대융합 사업은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 서로에게 많은 부분을 나누어주고 또 배울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짧은 지원 기간과 일률적인 지원 방식이 아쉽습니다. 이번에도 청년 기업인이 장년 기업인의 급여지원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4대 보험 비용이 높게 책정돼 부담을 가졌을 텐데, 이런 경우 4대 보험비를 낮춰주거나 일부 지원을 해주는 혜택을 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최지훈(48) 개발팀장
창조적인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워
저는 개발자로서 ‘프로그래밍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왔어요. 기술을 통해 어떤 효용을 얻을 것인가가 중요하니까요. 자연스럽게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창업팀에 관심이 갔습니다. 저 역시 문학과 음악을 좋아했기에 이런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을 눈여겨봤죠. ‘시와 시 사이, 시간’은 문학 콘텐츠와 저작권 관리 서비스를 기본으로 하는 기업입니다. 시간팀의 기업 문화를 한 문장으로 말하면 ‘따로 또 같이’일 것입니다. 시간팀은 같이 일하는 동시에 개인이 일하는 방식 또는 생활방식을 존중합니다. 옛날과는 다른 형태의 기업 문화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즐겁고 또 제가 그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개발자로서 그동안 공부한 것을 실무에 적용해보고, 개발자 간 협업을 경험하면서 한층 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정부 지원금에 대한 과도하게 엄격한 절차를 다듬으면 더 좋은 기업에 더 많은 지원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찬(29) 개발팀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일하고 싶어
이미 구축된 사회 시스템에서, 주어진 삶의 방식대로 살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 창업팀에 합류했습니다. 회사의 브랜딩 방향을 고민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이 지점부터 시작합니다. ‘이미 있는 방식대로 하지 말자’. 그러다 보면 발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에서는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제화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창업’의 개념과 창업의 성공, 성과에 대한 깊고 넓은 기준 폭이 있으면 좋겠어요. 스타트업을 심사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개별 아이템에 같은 기준점을 적용하는 심사, 검열은 마치 비가 오기 전에 튼튼한 지붕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쓸모없으니 일단 보기 좋은 정원을 가꾸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희는 비가 새지 않는 지붕, 튼튼한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희서(26) 브랜드 디자인
스타트업, 다양한 지원 방식 필요
처음엔 BGM 작곡으로 참여하면서 ‘시간’을 알게 됐어요. 함께하면서 팀에 애정이 생겼고, 뮤지션을 섭외하거나 공연 기획에서 음향을 책임지고 설치하는 것 등 전에부터 해보고 싶던 일들을 할 수 있어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창업의 큰 즐거움인 것 같아요. 꽉 짜인 틀 안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어서 ‘시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창업은 이전에 있던 기업과는 다른 스타트업이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채로운 스타트업에 비해 지원해주는 형식이나 지원받는 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양식은 일률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양한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성장하는 만큼 지원 방식도 촘촘하게 바뀌어 시대에 맞춰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지명(26) 콘텐츠 매니저
유슬기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