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잔에 탈 때 통상적인 소맥 비율보다 소주를 많이 넣고 맥주를 조금 넣으면 꿀맛이 납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고 그냥 먹어보자 하고 마셨는데 꿀맛이 나더라고요. 아카시아꿀 맛이었어요.”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 같지만 지상파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젊은 여자 연예인이 한 얘기다. 그는 “소주 9에 맥주 1의 비율로 타야 하고, 마시는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소주잔에 소주를 먼저 따른 뒤 맥주를 살살 부어 한 번에 마셔야 합니다”라고 설명하며 직접 제조법을 보여줬다. 이 방송 이후 일명 ‘꿀주’라는 폭탄주 제조법이 애주가들 사이에서 화제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자리가 많아진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지나친 음주 탓에 사회적 폐해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음주운전이 대표적이다. 음주운전 사고로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보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야 ‘도로 위 살인 행위’로 인식되면서 국회에서 일명 ‘윤창호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지나친 음주는 간암과 위암 등 건강을 해친다는 점에서 자제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 지상파 TV에서, 그것도 가족이 함께 보는 저녁 시간대에 연예인이 인기 폭탄주 제조법이라며 시범을 보인다는 것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음주를 조장하고 심지어 미화한다는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소위원회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법정 제재(주의)’를 의결해 전체 회의에 상정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일부의 사례에 불과할까. 궁금해서 방송통신위원회 자료를 찾아봤다. 2018년 한 해 동안 방송에서 음주 조장·미화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제재가 30건에 달했다. 지난 2년간 연평균 3.5건(2015년 6건, 2016년 1건)에서 26건 이상 급속하게 늘어난 셈이다. 어떤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폭탄주를 만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재방송해 제재를 받기도 했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크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방송 과정에서 꼼꼼하게 심의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실 술은 ‘과유불급(過猶不及·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란 사자성어처럼 자신의 주량을 지키면서 가볍게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소년의 경우 술을 마시면 음주량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폭음하거나 감정이 폭발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게 요즘 세태다. 술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는 ‘동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방송은 음주와 관련해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다.
이현호 서울 동대문구 장안로
<위클리 공감>의 ‘감 칼럼’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바를 적은 수필을 전자우편(gonggam@hani.co.kr)으로 보내주세요. 실린 분들에게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