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정책의 장기 시간 지평을 어렵게 한다. 집권 초기 전임 정부와 다른 정책을 입안하면, 5년 내에 소기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정책성과 조급증은 지지 세력은 물론 반대 세력에게도 제도가 만드는 병이지 싶다. 예를 들어 일자리 창출의 결과가 초단기적 통계를 둘러싼 쟁투로 나타나곤 한다. 국내 정책보다 5년 단임제의 한계가 나타나는 분야는 대북 정책을 포함한 대외 정책이다. 정부가 선한 의도로 상대 정부들에 접근하더라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임기 내의 성과보다도 5년을 넘어서는 시간 지평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의 후반기에 합의된 외교 안보 문서는, 정권의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사문화되기도 한다. 2007년 10월 노무현정부가 북한과 함께 만든 10·4공동선언이 대표적 사례다.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주요 내용으로 했던 이 남북 합의는 이명박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실행 초입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한반도 평화 미래 예시하는 요소들
노무현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문재인정부는 집권 1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고,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2018년 3월 한국의 대북 특사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 북미정상회담이 북미의 격한 말의 공방으로 위기에 처하자,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개최되어 북미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리기도 했다.
6월 12일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70여 년의 적대 국가인 북한과 미국이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의 건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란 세 원칙에 합의했다. 9월 19일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이 군사적 적대를 해소하는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에 합의했고,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미래 구상을 공유했다. 그리고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실행계획을 만드는 장으로 희망되었던 하노이 회담은 합의문 없이 끝났다.
남북, 북미정상회담만으로 정리한 재개된 한반도 평화과정은 몇 가지 법칙을 내장하고 있다. 이 법칙들은 한반도 평화과정의 미래를 예시하는 요소들이다.
첫째, 한반도 안보 딜레마의 탈출을 위해 한미의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서로 중단하는 약속의 지속이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만든 강릉 가는 KTX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2015년 1월부터 북한이 주장해온 이른바 쌍중단을 사실상 수용했다. 한반도 평화과정의 재개를 알리는 일방적 포용이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었지만, 북미는 쌍중단을 재확인했다. 만약 이 약속이 파기된다면, 한반도 평화과정은 파국으로 갈 수 있다. 2018년 5월 맥스 선더 한미 연합공중훈련이 개시되자 남북, 북미 관계가 갈등 국면에 진입했었다.
둘째, 평양은 베이징을 경유해 서울과 워싱턴을 만나고 있다. 북한판 균형외교라 부를 수 있는 행보다. 판문점 선언이 있기 약 한 달 전인 2018년 3월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북제재의 실질적 주체이자 미중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방문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전인 2018년 5월 북중정상회담이 있었고, 싱가포르 회담 직후인 6월 19일 3차 북중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19년 1월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했고 직후인 1월 7일 중국으로 갔다.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을 위한 다자 협상, 한반도 비핵화의 ‘연구 조종’, ‘조선 측의 합리적인 관심사항’인 대북제재 등이 북중정상회담의 의제들이었다. 북한은 중국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끊임없이 소환하고 있다. 만약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사실상의 북중동맹 복원의 상징적 행위가 될 것이다. 반면 판문점 선언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통화는 있었지만, 2017년 12월 이후 한중정상회담은 개최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 사람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4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3월 1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흔들림 없이 이어져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한겨레
결렬된 하노이 회담의 성과
셋째,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는 미중 패권경쟁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곳들이다. 북한과 특수한 경제 관계를 유지했던 싱가포르는 남중국해 분쟁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아세안 의장국가였다. 미국과 전쟁을 한 베트남은 현재 친미 국가이고 북한은 미국-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에 파병을 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을 관통하는 기차 행군을 했다. 중국의 편의 제공이 없다면 불가능한 공연이었다. 북미정상회담의 장소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가 담긴 곳들이었다.
넷째,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참여국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 평화과정에서 배제된 국가들로 러시아와 일본이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대북제재의 해제에 한목소리를 내면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매개로 북한을 견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도 예정되어 있는 상태다. 반면 일본은 한반도 비핵화를 최대한 넓게 정의하며 자국을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탄도미사일까지 한반도 비핵화에 포함시키려 한다.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일본의 대미외교, 대북외교에 한국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감소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일관계의 악화는, 일본에게 북일관계 개선에 대한 유인을 제공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서 중국과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일본의 외교 행태 또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 재편의 한 변수다.
다섯째, 이 법칙들의 와중에서 한반도 평화과정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역할은 한반도 갈등의 당사자인 한국이 자임하고 있다. 당사자이면서 중재자라는 모순적 역할이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후 여섯 번의 한미정상회담과 스무 번의 정상 통화를 했다. 한국 정부가 편향적 중재자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미국의 의도가 한반도 평화과정에서 관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과정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를 둘러싼 양 정상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 결국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 즉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해나갈 용의가 있다”가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미국 측 주장으로,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다. 한반도 평화과정이 장기의 시간 지평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핵심 쟁점에 대한 북미 정상의 토론 자체가 긍정적 성과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일곱 번째 한미정상회담의 개최가 발표되었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영변을 포함한 모든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핵기술, 핵투발 수단의 폐기와 생화학무기의 해체까지 포함된 포괄적인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를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북한은 남북이 합의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첫 단계로 하여 민수경제와 관련된 대북제재의 해제, 그리고 북한의 목소리로 직접 확인은 안 되지만 미국이 한미동맹에 근거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의 폐기와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권 확보를 포함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하노이 회담에 임했던 듯하다. 북미의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를 둘러싼 간극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하노이 회담이었다.
북미 차이 극복할 수 있는 대안
4월 11일 개최 예정인 한미정상회담에서는 한국 정부가 북미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한반도 평화과정의 기획자로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북한은 1월 신년사에서 “제재와 압박”이 계속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일곱 번째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과정의 지속 여부 때문에 간과할 수밖에 없었던 원론인 핵심 쟁점의 정의들을 기획해야 한다. 첫째,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정의다. 힘에 기초한 평화인가, 아니면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인가다. 둘째, 협상이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정의다. 북미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의 모색이다. 셋째, 비핵화와 군사적·외교적·경제적 상응 조치가 담긴 평화체제의 교환 단계들에 대한 정의다. 한반도 평화과정에는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남북미중의 적대와 탈냉전시대 한반도 핵문제가 얽혀 있다. 이 세 정의가 동시에 협상의제가 되는 이유도 한반도 평화과정의 특수성 때문이다. 4월 11일의 한미정상회담이 동북아의 정상외교가 교차할 2019년 4월을 잔인한 달로 만들지 않으려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는, 실패하곤 하지만 가질 수밖에 없는, 희망적 사고와 함께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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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