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2020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되었다.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소 변화가 있겠지만 제출된 정부 예산안의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도 2019년에 이어 적극적 재정정책의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2020년 총수입 규모는 약 482조 원으로 전년 대비 1.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 수입은 약 292조 원으로 0.9% 정도 감소하고, 세외수입은 사회보장성기금 수입 증가에 따라 4.8%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총지출은 약 513조 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9.3% 증가한 수준이다. 재정수지는 2019년보다 적자폭이 커져 국내총생산(GDP) 대비 3.6%로, 국가채무도 2019년보다 증가한 GDP 대비 39.8%로 예상된다.
2020년 정부예산에서 나타나는 분야별 재원 배분을 살펴보면 보건복지 분야에 사용되는 예산이 가장 커서 181.6조 원 정도로 전년 대비 12.8% 증가한다. 그중 일자리 분야의 지출은 25.8조 원으로 전년 대비 21.3%로 큰 폭의 증가가 예정되어 있다. 전년 대비 예산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로 전년 대비 27.5% 늘어난다. 그 외에 두 자리 숫자의 전년 대비 증가율을 실현하는 분야는 환경,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로 각각 전년 대비 19.3%, 17.3%, 12.9% 증가할 예정이다.
장기적 경제체질 개선 및 성장동력 확충
세계경기의 부진, 미중 무역갈등의 심화, 일본의 수출규제 등은 우리 경제에 불리한 대외 경제여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20년 예산안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이런 불리한 대외 경제여건을 상쇄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체질 개선 및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활용할 것을 밝혔다. 조속한 자립이 필요한 핵심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지원을 우선 강화하고, 인공지능(AI) 사회로 전환을 위해 핵심 인프라(Data-Network(5G)-AI) 및 3대 핵심산업(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 차)에도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2020년 정부예산에 대해 두 가지 방향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충분치 못하다는 시각이 있고, 일부에선 지나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후자는 재정건전성의 우려를 내포하는 관점이다. 우선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향후 인구구조의 변화만으로도 재정이 취약해질 것이므로 추가적인 재정 확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8년의 재정이 실질적으로 매우 긴축적으로 운영되어 국민경제 체계 안에서 정부 부문의 역할이 경기를 다운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고 2019년 재정 기조도 매우 소극적인 수준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0년 예산안에서 제시하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 수준은 2018년의 긴축재정에서 비축된 재정 여력을 활용해 그해에 수행한 경기 수축적인 정부의 역할을 제자리로 돌리는 역할을 하는 정도다.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대외 경제여건과 경기침체 초입의 거시경제적인 상황을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자면 정부가 8월 29일 제시한 2020년 예산안보다 훨씬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2020년 정부가 택한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관점의 비판을 의식하고 적절히 안배한 내용이라고 보인다.
흔히 하는 오해와 달리 재정건전성 유지와 적극적 재정정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우리가 처한 저성장 환경에서 현재와 같이 건전재정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조세수입 증대와 국가부채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사회 인프라 투자 등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고 권고했다. 효율적인 공공투자는 국민경제 전체의 생산능력을 증대시키고, 정부의 잘 고안된 R&D에 대한 투자나 조세지원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아동복지 증대나 노동시장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노동 공급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재정지출 확대로 경제성장률이 제고될 경우 오히려 재정수입이 증가해 재정건전성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재정의 적극적 역할에 필요한 재원을 경제성장률 제고로 모두 확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노동, 복지, 교육에 대한 지출을 위해 조세부담률 제고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복지 분야의 지출에는 양면적 재정확장 정책이 적절하고 단기적 경기대응을 위한 지출, 공공투자 지출은 일면적 재정확장이 더 나은 대안이다. 이자율이 명목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상태에서는 재정적자가 정부부채 비율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재정적자, 즉 일면적 재정확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2000~2018년에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과 명목성장률의 차이는 평균 2.2%포인트였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평균 1.04%, 통합재정수지 흑자는 GDP 대비 평균 1.1%였다. 관리재정수지 측면에서는 재정적자를 적절한 수준으로 활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통합재정수지 측면에서 보면 재정적자가 유리한 경제적 상황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정 건전성–적극 재정정책 충돌하지 않아
한편 양면적 재정확장에서 요구되는 조세수입 확보를 위해 세정개혁 및 세제개혁이 필요하다. 조세수입의 확보는 세제개혁 이전에 조세감면의 간소화, 세무행정 개혁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이것이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정개혁과 함께 자산소득, 법인소득에 대한 과세 정상화, 소득공제제도 개편, 환경세 강화 등 공정한 과세를 통해 적정한 수준의 세입 확보가 가능하도록 하는 세제개혁도 이루어져야 한다.
강력한 수요 창출을 통해 경제를 견인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는 선제적 뉴딜정책도 방안이 될 수 있다. 경기침체기에 국민경제에 효용을 제공할 수 있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투자, 국내관광과 연계성이 높은 전국적인 생활환경개선사업 등 새로운 지출 분야의 창출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는 시기에는 노동시장이 뉴딜적 투자를 필요로 할 개연성도 높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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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