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어느 문명에서나 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천사나 그와 유사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천사와 유사한 존재로 선녀가 있다. 무지개를 길 삼아 하늘과 땅을 오가는 선녀를 통해 우리 조상은 저 하늘의 세계를 엿보곤 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 존재는 원천적으로 서양 종교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가 하는 일이나 지위, 생김새 따위가 명료하게 정리된 것은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중동지방에 뿌리를 둔 서양 종교를 통해서였다. 종교마다 천사의 지위나 생김새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천사가 신의 사자나 수호신 역할을 한다는 데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천사가 하늘에 있는 신의 뜻을 전하므로, 화가들은 천사를 그릴 때 한 쌍의 날개를 단 남자와 여자가 하늘하늘한 흰옷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 그리곤 했다. 처음에는 천사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비롯한 날개 달린 신들을 모델로 그렸다. 그리스 신화에는 날개를 단 신이 많이 나오는데, 니케와 더불어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이리스’, 사랑의 신 ‘에로스(큐피드)’ 등이 대표적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때 이 신들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조각이 훗날 화가들이 천사를 그리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에로스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아기 천사의 원형이 되었다. 에로스는 널리 알려진 대로 화살을 쏘아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신이다. 에로스는 그리스와 로마 미술에서 어린이나 아기의 모습으로 즐겨 묘사됐는데, 바로 이 날개 달린 그리스의 아기 신이 기독교의 천사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천진난만한 사랑의 장난꾸러기가 천사의 대열에 들어감으로써 천사는 보다 인간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자연히 아기 천사는 모든 천사들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존재가 되었고, 많이 그려질수록 이전부터 인기가 있던 에로스와 형태상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침내 에로스와 아기 천사를 함께 아울러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푸토’라고 불렀다. 까짓 것, 에로스여도 좋고 아기 천사여도 좋다는 것이다. 그만큼 둘이 똑같이 사랑스럽다는 의미였다.
▶ 라파엘로, ‘시스티나의 마돈나’, 1513년경, 나무에 유채, 265x196cm, 드레스덴 회화미술관
라파엘로가 그린 ‘시스티나의 마돈나’(1513년경)에서 우리는 그 사랑스러운 천사를 만나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두 사람의 성인이 마리아와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리고 있다. 천사는 맨 아래쪽에서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이 두 천사는 워낙 유명해 유럽의 달력이나 엽서, 관광 상품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얘기인데, 사실 두 천사가 그림에 들어감으로써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매우 푸근하고 생기 넘치는 그림이 됐다. 생각해보라. 두 천사가 그림에서 빠졌다면 ‘시스티나의 마돈나’는 거룩하고 경건한 느낌만 두드러져 매우 딱딱한 작품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심부름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가히 놀고 있는 아기 천사들 때문에 그만큼 친근감이 넘치고 재미있는 그림이 되었다. 이렇게 천사는 어디를 가나 늘 평화와 행복을 안겨준다. 천사를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게끔 말이다.
▶ 루벤스, ‘화환과 푸토에게 둘러싸인 성모자’, 1620년경, 오크목재에 유채,185x210cm, 뮌헨 알테피나코테크
아기 천사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한 작품 가운데 루벤스의 ‘화환과 푸토에게 둘러싸인 성모자’도 매우 인기 있는 걸작이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가운데 있고 꽃이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꽃 주변을 에워싼 아기 천사들이 서로 어울린다. 통통한 몸매의 아기 천사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꽉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운데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가 실제 사람이 아니다. 액자가 둘러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성모와 아기 예수는 그림으로 그려진 존재다. 그러니까 성모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천사들이 꽃다발을 가져와 그 주위에 두른 것이다. 실제 성모와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처럼 그림 속의 성모와 아기 예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천사들은 기쁘고 즐겁다. 아마 아기 천사들은 자신들과 같이 어리고 착한 아기 예수를 친구처럼 가깝게 느꼈을 것이다.
그림 속 아기 예수의 모델은 화가 루벤스의 둘째 아들 니콜라스다. 자신의 아들이 아기 예수처럼 또는 천사처럼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크기를 바라서 이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이 그림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든 루벤스에게는 아들이 천사였다. 참고로, 꽃 부분은 루벤스가 직접 그리지 않고 얀 브뢰겔이라는 화가에게 부탁해 그리도록 했다. 얀 브뢰겔은 꽃을 그리는 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던 화가였다.
어른들은 어린이를 보면 천사 같다고들 한다. 그렇게 천사처럼 예뻐하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어린이들에게 떠맡기곤 한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으로 인해 어린이가 영혼에 상처를 입어도 어른들은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이 그림에서는 다친 천사를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먼저 돌봐주고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천사 노릇 하기가, 또 어린이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위로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고도 애처롭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미술 담당 기자를 거쳐 학고재 관장을 지냈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내 마음속의 그림>,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이주헌의 아트카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