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부터 일주일여 동안 이어진 문재인정부의 첫 부처별 업무보고가 31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현황 보고와 지시 형식의 종전 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해 각 부처의 핵심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질의·토론하는 ‘쌍방향 소통’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누구나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새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가 고스란히 읽히는 대목이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내년 상반기 연대보증 전면 폐지, 창업자 육성”
▶ 문재인 대통령이 8월 25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
회 핵심정책토의에 참석해 밝게 웃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25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핵심정책토의 모두발언에서 “특별히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세 부처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다시 살려내야 하는 무거운 책임, 시대적 요구에 따라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는데 정말 잘해주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기재부가 경제 사령탑으로서 ‘사람 중심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큰 그림 속에서 성공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며 “일자리 추경을 편성해 신속히 집행하고 효과적인 부동산 대책을 세웠으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안착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충실히 준비해줬다”고 평가했다. 재원 대책과 관련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내년도 예산에서 11조 5000억 원에 이르는 고강도 지출 절감으로 새 국정과제에 대한 재원 대책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에 대해서는 “김상조 위원장이 사령탑을 맡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기관으로 우뚝 서고, 막힌 곳을 뚫어주는 ‘사이다’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하도급, 가맹유통의 갑질 횡포를 막는 등 갑을관계를 개혁하고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혁파하는 모습에 국민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소기업이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로 고통 받지 않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어주리라 믿는다”며 “불공정이란 적폐를 걷어내고 공정이 뿌리내리는 경제를 만드는 기수가 돼달라”고 당부했다.
금융위에는 카드 수수료와 최저금리 인하 등의 정책을 언급하며 “금융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주도 성장에도 금융위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도 창업하고 재기할 수 있는 금융정책도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재부는 업무보고에서 재원 확보를 뛰어넘는 재정혁신을 통해 새 정부의 정책을 구현하고 공공부문 효율성과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당장 올해 성과가 미흡한 사업에 대해 11조 원 수준의 양적 지출 구조조정, 융합예산 편성과 같은 질적 구조조정을 일부 추진할 예정이다.
또 고소득층, 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 등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23조 6000억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고, 일자리 확충 및 소득 재분배 기능 강화에 활용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재정사업 구조 개혁을 위한 강력한 질적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오는 2019년 예산안에 반영할 예정이다. 기재부는 국가와 지방 간 기능 재조정 및 지방 재정분권 추진 방안도 마련하려 한다.
혁신 성장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기재부는 창업 생태계 혁신, 혁신 성장거점 구축, 규제 혁신, 혁신 안전망 확충 등 4대 혁신 기반의 유기적 연계와 시너지 창출을 통해 우리 경제가 3%대 성장 능력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 및 생산 프로세스 혁신을 촉진하고, 정부의 지원체계를 개별 기업에서 생태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더불어 사람과 정보, 공간의 연결을 가로막는 규제를 전면 손질하고 혁신창업의 재도전이 원활하도록 위험에 대한 안전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업무보고 이후 토론에서는 세출 구조조정의 어려움과 국정과제 수행에 따른 지방비 부담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재벌 개혁과 갑질 근절을 중심으로 한 업무보고를 실시했다. 원칙 있는 재벌 개혁으로 재벌의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고, 갑을관계 개혁을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 공정위는 올 하반기에 규모와 관계없이 법 위반 혐의가 큰 기업집단에 대해 직권조사를 진행한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3월 말부터 총수가 있는 45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내부거래 실태를 점검하고 대대적인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직거래를 하다가 계열사를 끼워넣어 총수 일가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 이른바 통행세 수취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사익편취 규제 지분율 기준 강화, 자사주 등을 이용한 편법적 지배력 확대에 대해서는 국회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인적 분할 시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에 의결권 있는 신주가 배정되면서 지배 주주의 지배력이 자기 부담 없이 강화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대기업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하청업체로 하여금 자신들이 지정한 사업자와 거래하도록 하는 전속거래 구속행위도 금지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를 포함해 대기업과 2·3차 협력사의 공정거래 기반을 마련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만들어 10월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가맹·유통·대리점 분야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대책도 추진된다. 공정위는 가맹 필수품목 관련 의무 기재사항을 확대하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의 판매수수료를 공개하는 등 정보 공개를 강화한다. 이와 함께 가맹본부 오너리스크에 대한 배상책임 도입, 징벌적 배상제 확대와 같은 피해구제 수단을 확충할 계획이다.
금융위가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정책 어젠다는 크게 생산적 금융과 서민 금융이다. 먼저 금융위는 일자리 창출을 뒷받침하는 생산적 금융을 위해 연간 최대 7조 원의 연대보증을 면제하기로 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 이달부터 순차적으로 연대보증 폐지 대상을 확대하고 내년 상반기 안으로 전면 폐지를 추진한다. 이렇게 되면 2만 4000여 명의 창업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금융위는 보고 있다.
금융위는 생산적 금융을 위한 또 다른 과제로 4차 산업혁명 분야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을 현행 20조 원에서 2021년까지 40조 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 방안을 통해 1만 1000여 개 기업이 추가 자금 공급 혜택을 받고 6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전망이다. 금융 지원을 바탕으로 일자리 창출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별도로 금융권 자체의 일자리 창출 노력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업 진입장벽 완화, 핀테크 활성화 등 금융혁신을 통해 청년이 선호하는 양질의 금융권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서민 금융 지원은 ‘포용적 금융 3종 세트’로 구체화된다. 카드 수수료 인하, 고금리 부담 완화,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이 그 내용이다. 이를 통해 약 46만 소상공인이 연간 평균 80만 원의 카드 수수료를 절감하고, 최대 293만 명의 이자 부담을 연간 최대 1조 1000억 원 경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 연체자 약 214만 명의 경제활동 복귀 지원도 기대효과로 꼽혔다.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