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손님 정신’이란 강의를 들었습니다. 주인이 아닌데 주인처럼 살지 말고 대신 손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주제넘게 주인 행세를 하기보다는 손님답게 사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질문을 들으니 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그 책의 핵심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쓸데없이 열심히 사느라 스트레스 받지 말고 대충대충 살아라, 그럼 마음도 편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그런 종류의 책이 요즘 넘쳐납니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 때문에 이해는 갑니다.
오늘은 ‘주인 정신’과 ‘손님 정신’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지요. 우리 아파트에서 경비 아저씨의 비중은 높은 편입니다. 경비 아저씨가 누구냐에 따라 주민들 삶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그동안 수십 명의 아저씨를 보았습니다. 옛날 아파트라 주차를 도와주는 일의 비중이 높습니다. 주차 공간이 늘 부족해 차를 빼고 주차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는 경비 아저씨에게 많은 것을 의존합니다.
규정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다
회사 일도 그렇습니다. 큰 회사는 보통 역할과 책임(R&R, role and responsibility)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일을 그런 규정으로 다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큰 역할과 책임이 무언지 규정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 일은 알아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규정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떤 태도로 할 것인지입니다.
핵심은 주인 정신입니다. 주인처럼 일하라는 것입니다.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아니,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처럼 일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은 주인처럼, 객은 객처럼 일해야 한다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난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일의 주인인지 하인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내가 이 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주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조직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고 그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면 그는 이미 주인입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늘 한 발 빼고 있습니다. ‘주인도 아닌 내가 설칠 일이 뭐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넋을 놓고 있다가 누군가 지시할 경우 비로소 한다면 그 사람은 완벽한 하인입니다.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하고, 찾아서 하고, 상사가 내게 무엇을 기대할까를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면 그는 이미 주인입니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조직에서 인정받고 조만간 진정한 주인이 될 것입니다.
어차피 할 일, 빨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 할 일이면 내가 하는 것이 좋습니다. 뒤처져서 하는 것보다는 앞장서서 하는 게 즐겁습니다. 야단맞고 하는 것보다는 일찍 일하고 거기에 대해 칭찬받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게 그렇습니다.
등산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등산을 즐겁게 하는 방법 중 하나도 앞장서서 가는 것입니다. 뒤처지면 힘듭니다. 앞장서서 간다고 빨리 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뒤에 간다고 천천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비슷한 속도로 똑같은 길을 갑니다. 하지만 느끼는 강도와 느낌은 아주 다릅니다. 앞에 가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그래서 초보자를 앞에 세우고 숙련자는 맨 뒤를 따라갑니다.
마라톤도 그렇습니다. 42.195km를 뛰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처음 뛰는 사람이나 여러 번 뛰어본 사람이나 다들 힘듭니다. 그런데 앞서 있는 사람은 덜 힘들어 보이고 뒤에 처진 사람일수록 더 고통스럽게 보입니다. 시켜서 하는 일은 재미없습니다. 알아서 하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내가 의견을 내서 하는 일은 신이 납니다. 마지못해 등 떠밀려 하는 일은 지루합니다. 내가 일의 주인이 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됩니다.
논쟁을 하기보다 시간에게 묻는다
난 쓸데없는 논쟁을 싫어합니다. 논쟁으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도 없고 누군가를 이긴다고 그가 내 말을 들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입니다. 난 논쟁 대신 신에게 묻기를 택하는 편입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신은 시간입니다. 시간이 모든 걸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주인 정신이 좋은 사람은 주인처럼 살면 되고 손님 정신이 끌리는 사람은 손님처럼 살면 됩니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명확해집니다. 주인 정신으로 사는 게 좋은지, 손님 정신으로 사는 게 좋은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난 주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혹 내 선택이 잘못돼도 난 불평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한근태_ 핀란드 헬싱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리더십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기업 경영자, 청년들을 상대로 리더십과 성공 노하우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세리CEO의 북리뷰 칼럼을 15년 넘게 연재했고 《DBR》 <머니투데이> 등에 칼럼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누가 미래를 주도하는가> <한근태의 인생 참고서> <경영의 최전선을 가다> <청춘예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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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