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성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무엇이 포용적 성장인지, 이것이 소득주도성장을 대체하는 개념인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포용적 성장은 다수의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성장을 말한다. 국내총생산(GDP)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성과가 다수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으로 확산되는 성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장이론은 과거의 성장 방식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오스트리 국제통화기금(IMF) 조사국 부국장은 “불균형의 확대가 성장의 수준과 지속성을 위협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분배 효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IMF는 차별 없는 기회의 제공, 성장과실의 중하류층으로의 환류, 금융의 포용성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노동기구(ILO),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도 GDP 중심으로 한 성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포용적 성장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으로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은 포용적 성장을 ‘다수의 사람들이 경제적 기회와 번영을 향유하는 형태의 성장’이라 정의했다.
포용적 성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펼쳐진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일상)이란 환경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기되었다. 2011년에서 2016년까지 5년간 GDP는 연평균 1% 이하의 성장에 그쳤고, 중위소득(전체 국민의 소득 중 가운데에 있는 소득)은 연평균 2.4% 하락했다. 저성장이 구조화됐을 뿐 아니라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고용과 분배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과거의 경제성장 모델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새로운 성장모델로서 포용적 성장이 대두된 것이다.
포용적 성장이 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단지 한 나라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국가 내에서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은 단순히 그 국가 내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업과 경제적 양극화는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유럽 각국에서는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사건은 세계적 차원의 개방경제체제 자체를 위협한다. 한 국가 내부의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경제를 악화시키는 정책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포용적 성장과 관련해서 최근 국내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것이 기존의 소득주도성장 개념을 대체하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논란이다.
지난 5월 이후 최저임금의 급속한 상승에 따른 효과를 놓고 사회 내 갈등이 증폭되었다. 반대 진영에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오히려 저소득층을 어렵게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5월에 발표된 2018년 1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가 논란이 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1분위(하위 소득 20%) 가구의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소득은 계절적 요인이 있기 때문에 3개월간의 소득을 전년 동기와 대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또한 통계 자체가 지닌 문제점도 있었던 것으로 추후에 지적되었다.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 후임으로 등장한 윤종원 경제수석이 일성으로 포용적 성장론을 강조했다. 이제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가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하고 포용적 성장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게 된 것이다.
‘더불어 잘사는 사람중심경제’와 같은 궤
최근 대통령의 발언을 살펴보면 포용적 성장론은 문재인정부가 지난해부터 제시한 ‘더불어 잘사는 사람중심경제’의 정책 기조와 그 궤를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인 ‘더불어 잘사는 사람중심경제’는 일자리 중심·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3개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포용적 성장정책은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주요 선진국들과 국제기구가 함께 동의하는 새로운 성장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길게 내다보면서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마련해가는 데 주력해나갈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또한 “신자유주의는 배제적 성장이고, 성장 수혜층이 소수에 그치고 다수가 배제되는 구조에서는 경제가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살펴보면 대통령이 말하는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성장론을 대체한 것이라 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말한 포용적 성장론은 새 정부의 새로운 성장론은 과거의 성장론(신자유주의적 성장론)에 비해 국민 다수에게 포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과거의 대기업 중심, 수출 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국민 다수의 삶의 개선으로 나타나는 데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이것을 바로잡는 게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동일한 경제적 성과에도 국민 다수의 삶은 개선될 수도 있고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경제정책 제도와 구조를 제대로 설계해서 GDP라는 성과와 국민의 삶의 질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의 과정과 그 결과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건강한 중산층을 육성하고 빈곤과 사회적 소외를 줄이게 되면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지게 된다.
세계경제포럼의 포용적 성장론에 따르면 경제성장과 발전이라는 것을 목표로 할 때 GDP는 그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정책과 제도를 설계할 때 GDP 못지않게, 노동생산성이나 고용률, 건강 수명 등에 동일한 수준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성장과 발전뿐 아니라 포용성이라는 가치를 병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위 가계소득의 개선, 빈곤율과 소득 지니계수, 그리고 자산 지니계수의 개선을 구체적인 정책목표로 제시해야 한다.
포용적 성장에 관한 논의는 단지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란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환경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기업의 이익 추구 목표와 상충된다는 오랫동안의 믿음이 도전받고 있다. 지속가능투자라는 큰 흐름 속에서 투자자들은 기업이 그들의 환경과 사회를 위해 그리고 지배구조 속에서 책임성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최고홍보관리자 겸 최고지속가능관리자 오드리 최는 “기업이 포용적 성장을 하는 것은 단지 사회적으로 좋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모건 스탠리의 지속가능투자연구소는 기업경영에서 포용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사에서 피고용자가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임금과 복지 혜택은 공정해야 한다. 일자리가 안정되고 다양성과 워라밸(일과 가정의 균형)이 보장돼야 한다. 일하는 환경이 좋은 포춘 100대 기업의 경우 동종업계 경쟁자들에 비해 주가도 2.3~3.8% 높다.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디자인과 광고 그리고 가격을 책정하는 것도 포용 성장과 관련이 있다. 중저가 보급형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저소득 소비자들이 금융, 의료, 기타 서비스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 그들이 살 수 있는 가격의 저렴한 생산물을 만드는 것은 기업의 재부적 성과에도 도움이 된다.
포용적 성장은 모두를 포함하는 성장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성장에 이바지하고 그 결과를 향유하는 포용적 성장이 필요한 때다. 성장 과정과 결과에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해야만 성장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
김용기│아주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