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은 많은 장면들을 남겼다. 양 정상이 백두산을 함께 등반하는 장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을 때 21발의 예포가 발사된 장면 등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다. 벌써 세 번째인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은 그동안 신뢰가 많이 쌓였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군사 분야에서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다.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에 합의했으며,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나가기로 했다. 또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기로 했다. 이는 지상과 더불어 해상과 공중 영역에까지 해당된다. 양측은 또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에 합의했으며, 서해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외에도 양측은 경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안으로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으며,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사업을 조건이 마련되는 대로 정상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내 착공식으로 한정한 점, 조건이 마련돼야 정상화한다는 점 등은 남북한 간 경제협력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리기 전에는 본격화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 측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남북관계와 비핵화 간의 속도 조절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북미 간 정체 상황을 협상 모드로 진전
이번 정상회담이 이 같은 성과를 낳았지만 비핵화 부문에서는 여전히 엇갈리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점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그는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아가기로 확약했습니다”라고 직접 언급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이번 회담으로 북미 간 정체됐던 협상이 재개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북미회담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무산으로 한동안 정체됐다. 당시 북미 양국은 서로에게 먼저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라고 줄다리기를 하는 입장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선(先) 핵신고서 제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폐쇄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북한은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명의의 서한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시켰다. 이 같은 북미 간 정체 상황을 다시 협상 모드로 바꿨다는 것은 이번 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성과로 보인다.
그렇다면 향후 북미 간 협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의 입장, 즉 북한 내 모든 핵능력 신고서를 먼저 제출하는 것은 북한의 안전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체제안전보장책을 부여받고 북미관계에 신뢰가 쌓이기 전에 모든 핵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고 있다. 이 경우 미국이 북한 내부 핵시설의 위치와 핵능력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만일 향후에 북미 간 핵협상이 중단되고 미국의 대북군사옵션이 고려될 경우 미국은 어느 곳을 타격해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북미 간 입장 차이는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미 노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주장하는 미국 입장과는 달리 북한은 합의문에 ‘완전한 한반도의 비핵화’를 명기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선(先) 핵신고서 제출과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핵폐기에 대한 북한의 반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북미 간 협상에서 북한 비핵화 방식은 작년부터 계속 변화해왔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주장해왔으며, 북한은 동시적 이행을 주장했다. 즉, ‘신고-사찰-불능화-폐기’라는 단계를 거쳐야 북한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 보좌관은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했는데, 이는 북한 비핵화의 모든 단계를 거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해법이었다. 즉, 1~2년 내에 북한의 CVID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고, 사찰 이후 북한 내 핵시설을 미국 영토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위 선반출(front-loading) 방식이었다.
종전선언을 둘러싼 딜레마
그러나 북한은 계속해서 동시적·단계적 비핵화 해법을 주장했으며, 북한의 주권과 체제보장을 이유로 선 핵신고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주장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CVID 대신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즉, 북한이 수용을 거부하는 핵신고와 불가역적 핵폐기를 의미하는 CVID 대신, 검증에 초점을 두는 FFVD를 요구한 것이다.
이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북미 간에는 다시 협상이 진행됐으며, 초점은 북한이 주장하는 종전선언에 대한 대가로 미국이 무엇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 대신에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쇄를 요구했으며,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후 발생한 북미 간 협상 정체 상황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노력으로 재차 재개됐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천명했다. 틀어진 북미 간 협상을 본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북한이 미국에게 성의를 보이는 조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미래의 핵능력이 아닌 현재의 핵능력이다. 추가적으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이 6·12 북미정상회담의 정신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항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합의했다.
소위 ‘상응하는 조치’가 종전선언이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은 정치적 종전선언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북미 간 전쟁이 종식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상호 간 적대관계가 청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상호 간에 군사적 옵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게 대북정책의 옵션을 제한하게 된다. 만일 북한이 비핵화 트랙에서 벗어나게 되면, 미국은 이미 종전을 선언한 상태에서 대북 군사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잃게 된다.
또한 정전 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생긴 유엔사령부의 존립도 위기를 맞게 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는데, 미국으로서는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되면 아시아 전략에 큰 손해를 입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 유지되고 있는 막강한 전력의 유엔사 후방기지 역시 존립할 이유를 잃게 된다.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전쟁 이후 1950년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 1588호에 의거해 설치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경우 이를 기반으로 새로이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해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시도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아시아 지역 미국의 군사능력 축소를 가져올 수 있는 종전선언이 부담스럽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한 대가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영변 핵시설 영구적 폐기가 등가성이 있는지도 고려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양국이 북한의 특정한 핵시설과 특정한 무기시스템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언급했다. 북미 양국은 두 시설의 폐기에 사찰단이 참관하는 것과 추가적인 무기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양측은 어느 정도 합의점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10월 중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에서는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영구폐쇄 플러스알파가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첫 단계 비핵화 회담의 성과로서는 괜찮은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를 중간선거 이전에 자신의 성과로 과시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첫 성과가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될 것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