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 선수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3년 차 현역 선수다. 지난 시즌까지 누적된 출전 상금만 10억 원이 넘는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매주 열리는 경기에 참가하면서 학교는 어떻게 다니느냐는 질문에 ‘공부는 끊었다’고 짧게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이 전도유망한(고등학교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되었다) 어린 선수가 학창 시절 내내 체육특기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해 상상했다. 정작 선수 자신은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회원 자격을 획득해 정규 투어에 출전하는 이 모 선수는 이 바닥에선 성공 사례에 속한다. 매주 골프 대디와 함께 학교가 아닌 필드로 향하는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은 꿈에 그리던 KLPGA 1부 투어 경기에 출전해보지도 못하고 선수 생활을 접는다. 직업선수가 되어보지도 못한 채 바로 전직 선수가 되는 것이다.
자식에게 올인한 부모 삶도 함꼐 피폐
선수라는 험한 길에 접어들었다가 인생이 접힌 선수들뿐 아니라 제2의 박세리, 제2의 박인비를 꿈꾸며 딸에게 올인했던 부모(대개 아버지)의 삶도 함께 피폐해진다.
양 모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만 했다. 집 안에서도 공을 몰고 다니고 밤에 공을 안고 잘 정도로 축구가 좋았다. 심지어 게임도 축구 경기만 한다.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한국에 와서도 ‘당연히’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주위 권유에 따라 축구 명문 ??공고에 입학한 그는 무조건 뛰기만 하는 훈련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새벽에도 오후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주야장천 뛰기만 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왜 뛰는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감독에게 달리기 훈련의 이유를 물은 그는 그 후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년 동안 투명인간 생활을 하다 학교를 자퇴한 후 독립클럽 소속으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3부 리그 형들과 가끔 경기를 한다.
낮에는 학원에서 어학을 공부하면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아무리 또래 선수보다 기량이 월등해도 정상적(?)인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그가 청소년대표나 국가대표에 발탁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공부 끊고 훈련 쳇바퀴, 비극으로 끝나기도
위에서 소개한 사례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유난히 위험 부담이 큰 운동선수라는 길을 선택한 소위 학생 선수들에게는 흔하디흔한 보편 서사다. 공부를 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혹독한 훈련에 시달리는 삶. 여기에 비정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성폭력, 부상과 경기 성적에 대한 압박까지 견뎌내야 한다.
소질이 있어 일찍 두각을 보였고, 그렇게 좋아서 시작한 운동이 결국 애증의 대상이 되는 반복적인 비극이 주위에 적잖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체육 개혁을 위한 시도들이 없진 않았다. 그간의 노력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비정상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육특기자 제도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여러 층위에 존재해 어느 한 부분의 개선만으로는 전체 시스템의 개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가 지금까지 개혁 시도들과 다른 지점은 학교 스포츠의 어느 한 부분만 고치는 게 아니라 전면적, 종합적, 유기적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정상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스포츠혁신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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