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기라고도 하고 올갱이라고도 한다. 민물에 사는 작은 고둥이다. 자연계에서 가장 닮은꼴은 달팽이다. 하지만 빛깔은 그보다 까무잡잡하고, 체구는 그보다 늘씬하며, 껍질은 그보다 두껍고 투박하다. 하천 바닥을 뒹구는 이 잘디잔 생명체가 유명해진 것은 식재료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다슬기를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장소는 (개천이 아니라) 식당이다. 흔히 부추나 아욱 등과 어우러져서 어떤 이에게는 입맛을 돋우지만 어떤 이에게는 거슬릴 법한 은근한 비린내를 풍기는 그것은 뚝배기 그릇에 도도하게 담겨 등장한다. 소복하게 담긴 비취색 속살들이 마치 보석처럼 영롱하다.
같은 대상을 부르는 조금 덜 알려진 이름도 있다. 고둥(경남), 고디(경북), 골팽이(강원도), 대사리(전라도) 등이 그것이다. 모두 다슬기나 올갱이에 비하면 지명도에서 한참 밀린다. 물론 이 두 낱말도 언어적 위계 차이가 엄연하다. 다슬기는 우리나라 전역을 커버하는 표준어지만, 올갱이는 충청도라는 지역적 울타리를 기반으로 삼는 사투리다.
보통 이런 경우, 시간이 갈수록 언중(言衆)의 선택은 표준어 쪽이 되기 쉽다. 대중매체의 선택을 많이 받는 단어로, 젊은 세대의 언어 선택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갱이와 다슬기의 경쟁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슬기의 위협(?) 속에서도 올갱이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다슬기를 누르고 대중매체의 선택을 받는 경우까지 늘어났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가장 일반적으로 꼽는 이유는 이것이다. 충청도식 다슬기해장국(된장국)이 서울 등 대도시 외식업계에 가장 먼저 그리고 널리 알려졌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잘 유지한 덕이다. 이제는 다슬기가 표준어임을 아는 사람조차도 다슬기해장국을 지칭할 때는 (느닷없이) ‘올갱이해장국’을 입에 올릴 정도다. 이유를 물으면 “입에 익숙해져버려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애초에 다슬기보다는 올갱이가 지칭하는 대상의 언어적 표현으로서 우수했기에 이런 역전이 일어났다는 추측이다. 생각해보라. 이 파르스름하고 꼬들꼬들하며 큼큼하고 쌉쌀하면서도 토속적인 고소함을 갖춘 생명체를 가리키는 단어로서, 둘 중에 무엇이 더 적합한가?
다슬기는 어감은 사랑스럽지만, 올갱이가 가진 토속적인 까끌까끌함이 부족하다. 올갱이에 비하면 너무도 매끈매끈하고 세련된 자형(字形)의 소리를 가졌다. 반면에 올갱이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 동그랗게 오므라지는 입술 모양까지 임자 만난 듯 제격이다. ‘올’ 하고 입술을 둥글게 모으게 만들더니, 이어 ‘갱’ 하고 코맹맹이 소리가 달짝지근하게 비강(鼻腔)을 파고든다. 중간에 들어앉은 ‘ㄱ’ 소리는 또 어떤가. 치근거리며 씹히는 올갱이 알의 거칠거칠한 식감을 빼닮지 않았나. 요는, 글자의 생김새며 청각 인상 그리고 발음할 때 입술 모양에 이르기까지, 다갈색 껍질 속에 들어앉은 요 똬리 모양의 파르스름한 생명체와 착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충청도 사람도 아니면서 왜 다슬기를 올갱이라고 부르냐는 친구를 위해 대답 삼아 이 글을 썼다. 친구야, 나도 올갱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까지는 다슬기라고 불렀단다. 하지만 올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자 이 녀석이 뇌수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더라.
나는 올갱이와 다슬기의 승부가 시간이 갈수록 올갱이에게 유리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표준어로서 국어사전에 등재될 날이 오리라 점친다. 내 예상이 과연 맞을까. 그런 마음으로 올갱이와 다슬기의 경쟁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구승준 번역가·칼럼니스트
구승준 번역가·칼럼니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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