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아 긴 연휴가 시작되지만 국민 편의와 안전을 위해 쉬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품이 그리워도 현장을 지켜야 하는 군인과 경찰, 소방관, 기관사 방송인 등 명절 근무자는 의외로 많다. 본분에 충실하고자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을 미리 만났다.
대한민국 안전 지키는 독수리 오남매
“국민 여러분, 걱정 마시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 세종로에 있는 모 카페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제복을 입었다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365일 24시간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불철주야 본업에 매진한다는 점이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특별경호중대 특임대 김민욱(26) 상병, 수도방위사령부 7헌병대 제2순찰소대장 김유경(24) 소위, 종로소방서 숭인 119안전센터 유명균(31) 소방사, 대구 수성경찰서 형사과 강력범죄수사팀 조설(30) 순경, 인천해양경찰서 수사과 최일주(35) 경사가 그들이다. 남들 다 쉬는 추석에 제복을 벗지 못한 채 업무를 이어가는 그들이 추석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떤지 묻자 김유경 소위가 새삼스러운 질문을 한다는 듯 답했다.
“남들 다 쉴 때 일하는 게 싫으냐고요? 전혀요. 저희가 하는 일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인데 추석이라고 예외는 없죠. 특히 요즘 같은 안보 상황에서는 책임감이 더 커요. 별일 없이 추석 연휴를 무사히 보내려면 저희의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더 긴장하고 있어요.”
▶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명절에도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왼쪽부터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특별경호중대 특임대 김민욱 상병, 수도방위사령부 7헌병대 제2순찰소대장 김유경 소위, 종로소방서 숭인 119안전센터 유명균 소방사, 대구수성경찰서 형사과 강력범죄수사팀 조설 순경, 인천해양경찰서 수사과 최일주 경사 ⓒC영상미디어
긴 연휴를 맞아 긴장 태세를 유지하는 것은 군인만이 아니었다. 해양경찰, 경찰, 소방대원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런 명절 연휴에는 그간 자주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다 보니 술을 한잔씩 하게 된다. 그러나 한두 잔 마시다 만취 상태에 이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조설 순경을 비롯한 경찰 구성원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추석에도 상시 대기해야 한다.
“명절에는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보이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이 생겨요.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분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술김에 싸움이 벌어지면 당사자의 안전도 문제지만 주변에 있는 시민들의 안전도 지켜야죠. 연휴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서 경찰도 늘 긴장을 끈을 놓지 않은 상태로 있어요.”
소방대원이 보내는 명절은 어떨까? 유명균 소방사는 홀로 명절을 보내는 이웃의 이야기를 꺼냈다.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명절을 보낼 때 가족 없이 홀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이 119에 전화를 거는 경우가 많다.
“명절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119에 신고전화를 많이 걸어요. 119에 전화를 걸어서 병원에 데려다달라고 하시는 노인들이 있어요. 전화를 받고 출동해보면 딱히 아픈 곳이 있지 않은데 여기가 쑤신다 저기가 아프다면서 병원에 가자고 하세요. 가만히 신고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로우셔서 119로 전화를 건 경우에요. 얼마나 외로우면 저희를 다 부르셨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던 적이 있어요.”
유 소방사가 명절 근무를 하면서 겪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꺼내자 최일주 경사도 명절에 겪었던 일을 풀어냈다. 바다 위에서 발생하는 일을 전담하는 해양경찰은 명절에 경비함정에서 발생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섬에 사는 분은 병원을 가려면 육지까지 나가야 해요.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데 배가 끊긴 시간이면 해양경찰 경비함정을 타고 가기도 하죠. 그중에는 출산이 임박한 산모도 있어요. 섬에 사는 아이들 중에 이름이 해누리, 해우리인 아이들이 꽤 있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워낙 급박한 상황에는 경비함정에서 해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경비함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걸 기념해서 해경 마스코트 ‘해우리’ 이름을 붙이더라고요. 이런 이름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면 제가 그 아이를 받은 것처럼 반갑고 애틋하죠.”
명절에 집에 얼굴을 못 비추면 가족들이 서운해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다들 입을 모아 “가족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저는 무도 특채로 경찰이 됐어요. 경찰이 되기 전에는 태권도 선수여서 늘 합숙생활을 하느라 집에서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뵌 적이 별로 없어요.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부모님도 어느 정도 체념하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제가 걱정할까 봐 말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제가 맡은 일을 누군가에게 떠넘길 수 없으니까 끝까지 완수해야죠.”
자리에 모인 사람은 대부분 미혼이라 ‘언제 연애해서 결혼하니?’ 하는 걱정 어린 소리를 듣는 때가 많다. 유 소방사가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자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미혼이라 그런지 ‘그 마음 나도 다 안다’는 듯한 시선이 오갔다.
“소방대원으로 근무한 지 2년째 접어들었어요. 저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요. 제가 언제 출근하고 언제 퇴근하는지 잘 모르실 정도죠.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걱정돼서 연애는 하고 있는지 이러다가 결혼을 못 하는 거 아니냐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시곤 해요. 그럴 때마다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있는데 믿지는 않는 눈치세요.”
가족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한 이들이 서로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근무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일주일에 비번이 몇 번이에요?” 같은 근무환경을 묻고 답하는 말이 오고가더니 어느새 업무 중에 협업을 했던 이야기로 흘러갔다.
“수방사 특임대는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는 유명 인사를 경호하는 업무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난 상황이라면 시민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군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경찰에 도움을 받을 때가 많죠. 경찰에 업무 협조를 요청할 때마다 늘 친절하게 잘 도와주세요. 저희 업무 때문에 밤을 새야 할 때도 함께 고생하기도 해요. 그럴 때 경찰에 전우애를 느끼기도 합니다. 늘 감사하고요.”
“경찰은 소방과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에는 집에서 자살시도를 한 여성의 신고를 받은 적이 있어요. 집 안에 들어가서 여성을 구출해야 하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구급대원과 함께 출동했어요. 소방에서 신속하게 문을 열어주셔서 경각을 다투는 사안을 무사히 넘기기도 했어요. 경찰 일을 하면서 다양한 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모두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니까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절을 기념해서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마지막은 서로에 대한 덕담이 오갔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기회로 군인, 경찰, 해양경찰, 소방 할 것 없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여느 때보다 긴 연휴다.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숨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어서다.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휴를 보내면 여느 때보다 더 훈훈한 마음이 오가는 추석이 되지 않을까.
장가현 위클리 공감 기자
서울교통공사 동작승무사업소 민용기 수석기관사
“시민들의 편한 귀향길을 돕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 민용기 기관사는 “선물 꾸러미를 가득 들고 다니는 승객을 볼 때 가족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C영상미디어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귀성객들은 한시라도 빨리 가족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며 지하철을 탄다. 그들을 공항, 기차역, 버스터미널 등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도록 해주기 위해 기관사는 전동차 맨 앞자리를 묵묵히 지킨다.
수도권 시민의 발이 돼주는 지하철은 천재지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약속된 운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약속은 명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34년 경력의 베테랑 민용기 수석기관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연휴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근무 스케줄을 받았다.
“이번에는 추석 당일인 10월 4일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열차 운행, 취침시간 등을 다 포함해서 10~12시간 정도 일을 하니까 추석 다음 날에 퇴근하겠네요. 그래도 이번에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추석 전날 내려가서 충북 옥천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 후 서울로 와서 일을 하면 되니까요.”
민 기관사의 말대로 이번 추석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명절 연휴 마지막 이틀간 지하철의 막차 시간을 2시간가량 늦추는 막차 연장운행을 서울시가 이번 추석에는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임시공휴일 지정과 한글날 덕분에 최장 10일간 이어지는 만큼 귀경객이 분산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엔 고작 ‘2시간’이겠지만, 늘어나는 시간만큼 휴일을 반납하고 일해야 하는 기관사도 늘어난다. 연장운행을 하지 않는 덕분에 예년보다 좀 더 많은 기관사가 쉴 수 있게 됐다.
2010년 추석 연휴 첫날 근무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내려가려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날따라 서울에는 가을비답지 않은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끝내 신용산역이 침수돼 지하철 4호선 서울역~사당역 구간이 3시간 정도 전면 운행 중단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민 기관사는 비상근무에 들어갔고 가족들만 기차에 올랐다. 이때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가족들과 함께 귀성길에 올랐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시민을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연휴가 시작되면 역과 열차에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요. 한복을 곱게 입고 다니거나 선물 꾸러미를 손에 가득 들고 다니는 분들이 많아요. 표정도 다들 밝고 행복해 보여요. 그런 모습을 보면 명절이 실감나면서도 가족들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죠.”
오랜만에 한곳에 모인 형제, 부모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거나 예쁜 한복을 입고 온 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고 싶은 게 솔직한 속마음일 터. 하지만 민용기 수석기관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관사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남들처럼 명절에 쉬지도 못하고 일하지만 우리 기관사들은 직업적 자부심이 있어요. 시민의 귀향길을 돕기 위해선 누군가는 열차가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도록 일을 해야 하잖아요. 편한 귀성·귀경길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죠. 이번 추석에도 승객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안전하게 운행하겠습니다.”
tbs교통방송 공혜림 기자
“귀성·귀경객의 생생한 목소리를 발 빠르게 전하겠습니다”
▶ 공혜림 기자는 이번 명절 취재에는 운동화를 신고 나갈 생각이다. 좀 더 많이, 빨리 뛰기 위해서란다. ⓒC영상미디어
tbs교통방송은 명절 연휴 동안 전국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추석 교통 특별생방송을 진행한다. 현장 취재와 시민 인터뷰 등 귀성·귀경길 풍경을 담는 취재까지 더해져 교통 종합 정보를 발 빠르게 제공한다. 이번 추석 연휴는 역대 최장 기간인 만큼 방송 기간도 예년에 비해 길다. 특집 방송은 5일 동안 24시간 생방송으로 전파를 탈 예정이다.
명절에 돌입하기 한 달 전부터 방송국은 만반의 준비를 한다. TV·라디오국과 교통정보센터 간의 협업을 통해 방송이 효과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 리포터와 원활한 방송 연결을 위해 진행 상황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리고 혹시 모를 기계 고장을 대비해 점검하는 등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방송국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인다. 이제 입사 4개월 차인 공혜림 기자 역시 처음 맞이하는 추석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저는 보도국 기자로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에게 취재한 최근 이슈를 전달하고 있어요. 추석 특집 생방송이 시작되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 나가서 현장을 생중계하고 귀성길에 나서는 시민들과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또 연휴 기간 동안 방송될 기획 리포트를 제작 중이기도 하고요. 시민들의 눈과 귀를 대신하는 만큼 막중한 책임을 갖고 방송에 임해야죠.”
선배들의 특집 생방송 경험담을 들으면 솔직히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TV 뉴스와 달리 라디오는 기자 목소리에 모든 걸 의존해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청취자의 귀에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평소에도 목소리 톤과 발음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매시간 생방송으로 연결되는 만큼 목에 무리가 갈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추석 명절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며 공 기자는 눈을 반짝였다.
좋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많은 사람을 만나야
“역이나 터미널에는 고향으로 떠나거나 역귀성으로 도착한 시민들로 가득할 텐데요. 그분들의 넉넉하고 푸근한 표정을 보다 보면 기자라는 직업을 떠나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풍성해질 것 같아요. 현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궁금하고요. 그 내용을 청취자에게 전해드릴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해요.”
평소에 시민 10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 그중 1~2명이 응해준다. 방송에 나갈 수 있는 대답을 찾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고 묻고 거절을 당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번 명절 방송은 바쁘게 움직이는 귀성·귀경객에게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평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나서 생생한 목소리를 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 취재에는 편한 운동화를 신고 나갈 생각이다. 좀 더 많이 걷고, 좀 더 빨리 뛰기 위해서 말이다.
이선희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