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내 인생은 개 같을 것 같습니다. 새해 머리부터 왜 부정적인 말을 하냐고요? 아닙니다. 아주 좋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말에서는 ‘개’ 자가 붙은 것 치고 좋은 게 없지요. 개살구, 개떡, 개죽음, 개꿈, 개고생처럼 말입니다. 그런데요, 스웨덴에서는 ‘개 같은’이 좋은 뜻으로 쓰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스웨덴 영화 ‘개 같은 내 인생’(1985)을 떠올려보세요.
영화는 열두 살 사내아이 잉그마르의 성장통을 보여줍니다. 아빠는 지구 반대편에 일하러 가셨고 엄마는 병들었지요. 방학이 되자 사랑하는 엄마와 강아지를 떠나 삼촌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가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음습한 엄마 집과 달리 삼촌 집은 화사합니다. 북유럽의 쓸쓸한 늦가을 풍경과 푸른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목가적인 여름 풍경처럼 대비가 확연합니다.
영화에서 ‘개 같은’은 나쁜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은 분명하죠. 영화에는 두 마리의 개가 등장합니다. 잉그마르가 키우는 개 ‘싱킨’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개 ‘라이카’가 바로 그들입니다. 라이카는 모스크바 거리를 떠돌던 유기견이었습니다. 러시아 우주과학자의 눈에 띄었지요. 그리고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로 떠났습니다. 최초로 지구 궤도에 오른 생명체가 되었지요. 잉그마르는 싱킨을 떠나면서 라이카를 떠올립니다. 라이카가 우주에서 홀로 떠돌면서 느꼈을 두려움과 고독을 걱정한 것이지요. 라이카는 발사된 지 수 시간 만에 스트레스와 열을 이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싱킨도 잉그마르가 떠나 있던 사이에 외롭게 죽어갑니다.
영화가 말하는 것은 뭘까요? 잉그마르나 라이카, 그리고 싱킨의 삶은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행복과 슬픔이 반복되는 삶의 조건은 우리가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말합니다. 이럴 때는 아침이 올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삶의 무게는 다시 깃털처럼 가벼워진다고 말입니다.
‘58년 개띠’라는 관용구가 있습니다. 대략 100만 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이 58년 개띠인 것처럼 느껴지는 데는 슬픈 배경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장하면서 고교평준화, 유신, IMF 외환위기를 정면으로 겪어야 했지요. 하지만 이 세대들은 주어진 삶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극복하신 분들입니다. 시대의 악조건을 이겨내면서 우리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오신 58년 개띠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1958년에서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아 다시 무술년(戊戌年)이 되었습니다. 또 황금개띠입니다. 2018년 개띠들의 인생은 어떠할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들의 삶도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도 ‘18년 개띠’라는 관용구를 만들어내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동갑 친구들일 겁니다. 18년 개띠도 58년 개띠만큼이나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개망나니, 개수작, 개나발 같은 말은 우리가 개를 그다지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때 생긴 말이지요. 애견인 천만 시대를 사는 오늘날에 사용하기에는 적당한 말은 아닙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개-’라는 접두사를 긍정적으로 쓰고 있지요. ‘개이득’, ‘개좋다’, ‘개맛있다’처럼 말이죠. 올해의 ‘개 같은 내 인생’이 무척 기대됩니다.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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