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은 4월 27일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의 큰 틀이 담긴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른 이행속도를 보이는 분야는 군사적 긴장 완화다. 특히 남북 정상이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해 함께 발표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는 여기에 힘을 실었다. 군사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에서 비교적 자유로워 남북 당국의 신뢰와 의지만 있으면 진척을 볼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행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중요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반 사업이나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모든 조치에서 군사 분야의 선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결코 쉽지도 않다. 합의 이행 과정에서 65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 속속 연출되고 있는 건 남북 분단이 만든 지난한 세월을 말해준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하 JSA)이 평화와 화합의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남북 군사당국이 가장 먼저 착수한 조치는 지뢰 제거 작업이다. 군은 10월 1일부터 JSA와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에 돌입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DMZ는 6·25전쟁 당시 격전지로 아직 수습하지 못한 남북 전사자 유해가 이곳에 남아 있다. 우리 국군 전사자 유해 200여 구를 포함, 해외 전사자 유해 등 총 300여 구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24일 DMZ 내 첫 유해가 발굴된 후, 두 달 사이 연이어 9구의 유해가 발견된 사실은 내년 4월부터 본격 진행될 남북공동유해발굴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 강원 철원지역 중부전선의 GP가 11월 15일 시범철수 되고 있다. 폭파되는 GP 왼쪽 뒤편에 철거 중인 북측 GP가 보인다. ⓒ뉴시스
JSA의 비무장 조치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남·북·유엔 3자는 10월 16일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JSA의 비무장화 논의를 위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10월 26~27일에는 JSA 내 지뢰 제거와 함께 화기·탄약, 초소근무 철수 등 상호 공동검증절차를 마무리했다. 경비근무도 조정되어 현재 JSA에는 남북 각각 35명의 비무장 인원만 상주하고 있다. 또한 남·북·유엔 3자는 11월 12일 JSA 내 감시장비(CCTV) 운용을 위한 실무협의를 열어 향후 상대 지역에서의 경비근무 수행과 방문객 자유왕래 보장을 위한 감시 장비 조정 문제, 상호 정보 공유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본 조치의 완료에 따라 JSA 내에서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도 머지않을 전망이다.
현재 화살머리고지 일대에는 도로 개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대 12m 폭의 비포장 전술 도로로 남북공동유해발굴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남북 도로 연결은 경의선·동해선 도로 이후 세 번째로 14년 만에 이뤄졌다.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 한가운데에 남북이 길을 연결하며 남북 인력이 조우하는 일도 있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가장 체감할 수 있는 지점은 11월 1일부터 일체의 적대행위가 멈춘 때다. 남북은 군사분계선(MDL),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하며 실시하던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했다. 지상에서는 MDL 5km 내 지역에서 포사격과 연대급 야외기동훈련이 전면 중지됐다. MDL 기준 남북으로 총 10km 폭의 완충지대가 형성된 셈이다. 서해 덕적도~초도, 동해 속초~통천 등 동·서해 NLL 일대에서는 포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이 중지됐다.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포신 덮개 설치와 포문 폐쇄 조치가 취해졌다. 공중에서는 MDL 상공 서부 40km, 동부 80km 폭의 비행금지구역이 만들어져 쌍방 항공기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차단했다.
NLL 일대 우발적 무력충돌 예방 강화
시범 철수하기로 한 감시초소(GP) 22개의 모든 화기·장비·병력이 11월 10일 완전히 철수했다. 남북은 GP를 철거하고 연말까지 검증을 완료할 예정이다. 단 22개의 GP 가운데 남북 각각 1개의 시설물은 역사적 상징성, 보존가치, 향후 평화적 이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보존하기로 했다. 남측은 동해안, 북측은 중부전선에 각 1개의 GP를 원형 보존하기로 했다.
남북은 11월 2일 제3국 불법조업 선박의 정보 교환을 재개했다. 2008년 5월 이후 10년 만으로 NLL 일대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을 사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남북은 2004년 열린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6·4 합의서’에 서명하며 국제상선공통망 운용, 제3국 불법조업 선박 정보 교환, 우발충돌방지망 운용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이 중 국제상선공통망은 지난 7월 1일부터 정상 운용에 들어갔다.
▶ 남북 공동한강하구 수로 조사가 11월 5일 시작된 가운데 인천 강화 교동도 북단 한강하구에서 남북조사단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11월 5일부터 착수한 한강하구 공동이용수역의 공동수로조사에 남북은 각각 10명의 공동조사단을 편성했다. 정전협정 65년 만에 처음 시행되는 조치다. 한강하구는 정전협정에 의해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을 허용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민감수역’으로 관리되며 항행 자체를 제한해왔다. 따라서 별도의 수로 측량, 해도 제작 등의 체계적 조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수로조사가 연말까지 완료되면 바닷물 깊이를 측정해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바닷길 지도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조사 지역은 남측 김포반도 동북쪽에서 교동도까지, 북측 개성 임한리부터 황남 해남리까지 70km에 이르는 수역이다.
한편 더 빠른 속도감이 요구되는 영역도 있다. 남북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이하 공동위)다. 공동위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7년 2차 국방장관회담에도 명시됐으나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공동위가 열리면 남북이 미래 군사 현안으로 제시한 군사훈련, 무력 증강, 정찰행위 중지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군사 신뢰 구축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공동위가 가동되면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조성 등의 논의도 탄력을 받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 주요 이행 현황
적대행위 중지 : 11월 1일부터 지상·해상·공중 적대행위 전면 중단
GP 철수 : DMZ 내 남북 GP 11개씩(22개) 철수, 각 1개씩 남기고 20개 폭파·철거
JSA 비무장화 : 남북 초소·화기·병력 철수, 감시장비 운용
DMZ 공동유해발굴 :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고지 지뢰 제거 및 도로 연결, 2019년 4월 본격 발굴 착수
서해 우발적 충돌 방지 : 국제상선공통망 가동, 제3국 불법조업 선박 정보교환 등
한강하구 공동이용 : 연말까지 공동수로조사 진행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운영 : 구성 협의 단계
평화수역·공동어로구역 :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