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신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때문에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이것이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해낸 사람들이 있다. 2007년 창단한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은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문화예술단체다. 이들은 지난 11년간 전국 요양원과 교도소·복지관 등에서 70여 차례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무용 ‘진풍정(進豊呈)’, 발레 ‘코펠리아 프렐류드마주르카’를 재해석한 ‘프렐류드마주르카’, 한국무용 ‘사랑가’로 구성된 3개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완성하는 데 1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무용단원들은 지적장애 1~3급 판정을 받은 이들이다. 신체적 기량이 낮고, 언어장애도 동반한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물이다. 물론 과정 없이 그냥 얻어지는 결과물은 없다. 15명의 무용단원들은 매주 월요일, 2시간 30분 동안 전통 무용과 발레 등을 익힌다. 창단 이래로 연습실의 불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임인선 교수(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장, 대림대학교 스포츠지도과 교수)는 “10분짜리 공연을 준비하는 데 3~4년이 필요하다. 동작 하나 가르쳐줘도 금세 잊어버리니 수천 번씩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의 춤사위는 수많은 연습과 반복을 통해 비로소 새겨진 것이다. 장애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작은 몸짓에는 일반인이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어눌하고 서툴기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몸으로 표현하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게 관객들에게 전해질 때 어디서도 느낄 수 없던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세상을 향한 소통과 진정성을 담은 무용단원들의 몸짓은 희망과 감동을 전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인식 변화가 느린 답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임인선 교수는 말했다.
“자신의 순수한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무용의 본질이라면,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무용수들보다 더 솔직하게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신체로 표현합니다. 장애라는 장벽을 무용으로 뛰어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죠.”
10분짜리 공연준비에 3~4년
실제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노래를 부르지 않던 아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집 밖에 나서기를 두려워했던 아이가 스스로 연습가방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무용의 긍정적 효과를 확신하게 되었다. 임인선 교수는 서울대학교 장애아동 체육교실에서 10여 년간 무용교사로 재직하며 춤의 치유능력을 체감했다. 그래서 2004년 대림대학교 스포츠지도과 교수로 부임한 이듬해 대림대학교 장애아동 무용체육교실을 개소했다. 이것이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의 모체이다.
“40주 과정을 마치고 수료 기념으로 ‘사랑상’이라는 트로피를 만들어서 모든 아이들에게 전달했는데 받는 학생들마다 울었지요. 부모님들도 ‘졸업하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이 교실을 떠나면 아이들이 무용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을 테니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임인선 교수는 이를 계기로 2007년 3월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을 창단했다. 첫해 단원 20명을 뽑는 데 경쟁률이 3 대 1에 달할 정도였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대림대학교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학교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장애아동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한림관 체육관, 에어로빅장, 무도장 세 곳의 장소를 지원해 13년 동안 매주 월요일에 장애인 무용단, 특수체육단, 장애인 축구단이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또한 학교 자체에서 대림대학교 에이스 봉사단으로 활동해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의 역할은 교육과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예술적 재능을 발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무용단 창단 이후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수석무용수 조동빈 씨가 ‘장애인 문화예술 지도자 자격증’을 수료하기도 했다. 이것은 다른 발달장애 학생들에게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조 씨는 발달장애와 무릎과 발목에 심한 통증을 가지고 있지만 10여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해 많은 단원에게 모범이 되는 수석무용수였다.
“무용단은 장애를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아닌 다양한 재능과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자립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조동빈 선생에게 무용은 장애에 의한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은 장애인들에게 예술이라는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곳이다.
▶ 11년 동안 연습을 이어온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원들. 인고의 시간과 수많은 반복으로 완성된 춤사위는 아름다움을 넘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C영상미디어
무용은 가장 즐겁고 행복한 치유입니다
처음에는 엄마인 저도 ‘발달장애인도 무용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사례가 없었으니까요. 민선이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스물네 살이 되었는데, 그 모든 과정이 ‘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관악복지관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가 혼자 무대 위에 올라서 공연을 하다니요. 남들이 볼 때는 미숙하겠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요. 무용의 치유 능력을 다른 분들도 경험할 수 있게 앞으로 장애인 무용단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박민선(24)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원·
어머니 정영희(58)
체계적인 교육 가능한 예술학교 절실해요
장애인 무용수들은 엄마와 함께 2인 1조로 움직여요. 장애인 무용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죠. 저는 딸의 무용을 위해 인천 송도에서 안양까지 오가는데 그 이유는 하나에요. 공연을 하면서 소극적이던 딸의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무대에 서면서 자존감도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죠. 이런 교육을 받으려면 엄마가 스스로 정보를 알아오고 발로 뛸 수밖에 없는데, 장기적으로는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한 장애인예술학교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세희(17)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원·어머니 유숙(52)
예술 지원 정책, 더 확대되기를
매년 11월은 공모사업을 신청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달입니다. 무용단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열심히 기획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현실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사실 운영의 어려움으로 이사장이 사비로 충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정 안정을 원하는 것은 우리 단원들을 더 많은 공연, 더 큰 무대에 세워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무용단원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이를 위해 장애인 예술 지원 정책이 보다 확대됐으면 좋겠습니다.
최영선(37)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 사무국장
장애인도 예술가로 살 수 있는 세상 꿈꾸죠
장애인도 무용가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번은 무용단원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비누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야 한다며 무용단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10년 동안의 힘들었던 노력이 아까워서 만류했습니다. 그랬더니 부모님께서 “성인이 된 아이들이 이젠 스스로 살아갈 길을 가야 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부모님도, 듣는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속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가르친 것은 예술의 한 장르인 무용이었는데, 단지 레크리에이션이었나 하는 허탈감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장애인 앞에 놓인 현실에 속이 상했습니다. 이제 장애인에게도 단순 노동 이외에 다른 직업의 영역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국립발레단이 존재하는 것처럼 장애인 무용수도 전문적인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무대에서 국립발레단과 장애인무용단이 공존하면서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임인선(55) 대림대 스포츠지도과 교수·사단법인 필로스 하모니 이사장
공연 한 번이면 선입견이 사라져요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은 장애에 대한 선입견을 가장 손쉽고 빠르게 없앨 수 있는 단체 같아요. 봉사단으로 공연에 함께 갔는데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연습할 때는 이래서 무대에 올릴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 걱정스러운데, 막상 무대에 오르면 단원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의상과 음악, 조명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예술적인 감동이 전해지더라고요. 물론 각이 딱딱 맞지는 않아요. 같은 동작을 하는데도 누군 빠르고 누구는 느려요. 근데 그 일정하지 않은 불완전한 동작이 더 아름답고 변박 같은 예술 행위로 느껴져요. 그 불완전함이 주는 감동이 더 큰 것 같아요. 예술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면서 장애인에게 흔히 가지는 동정이나 연민, 편견 같은 게 눈 녹듯 사라지더라고요.
안태영(24) 대림대 에이스 봉사단 스포츠지도과
유민상(20) 대림대 에이스 봉사단 사회복지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