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하는 새 4월로 쑥 들어섰다. 일 년 중 4분의 1이 훌쩍 지나가버렸다니, 마치 시간의 가속페달에 발을 올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럴 때면 밑도 끝도 없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조리게 된다.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은, 어쩌면 숙명적으로 반복되는 생의 나태를 인지한 충격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4월이면 빼놓을 수 없는 행사가 있었다. 만우절이랍시고 두 학급의 아이들이 작당해 교실을 통째 바꿔치기하던 시절이야 수십 년 전 옛일이건만, 이맘때면 내 거짓말에 깜빡 넘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생각나긴 한다. 평소 장난기라곤 하나 없던 내가 건넨 과자를 의심 없이 당신 입에 넣고 바사삭 깨물었던 선생님. 크래커 두 쪽 사이에 머시멜로우 크림처럼 보이게 치약을 듬뿍 발라두었으니, 그 싸하고 아린 맛이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봄빛 완연해지는 이맘때쯤에 꼭 치러야 하는 야외 행사로는 봄나물 채취가 있다. 어려서는 소쿠리를 가득 채워 할머니나 엄마의 칭찬을 듣고 싶었다. 차츰 쌉싸래한 봄나물 향을 알고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강가로 언덕으로 쑥과 냉이를 캐러 다녔다. 내 손으로 마련한 식재료가 저녁 밥상에 오를 때의 뿌듯함이란.
음식에 관한 기억은 평생 가는 법이다. 그 습성이 오래도록 남아 지금껏 봄기운이 올라오면 직접 쑥을 뜯어 맑은 장국을 끓인다. 그래야 제대로 봄 치레를 한 것 같다. 흙내 머금은 쑥국을 건너뛰면 그해 봄은 중대한 과정 하나를 생략한 것처럼 허전하고 싱숭생숭하다. 조리법이야 누가 모를까.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고 날콩가루 버무린 쑥을 넣어 한소끔 부르르 끓인 쑥국만으로도 입맛이 개운해진다.
4월의 하이라이트는 색감이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수록 꽃보다 잎이 보인다”는 어른들의 말이 시시하게 들렸다. 언젠가부터 나도 여린 잎에 더 눈이 간다. 3월은 아직 쌀쌀하고, 5월은 너무 환하다. 내겐 4월의 햇빛과 공기가 적당하다. 황사다, 초미세먼지다, 바깥나들이가 무섭긴 하다만 집 안에 나를 감금할 수는 없잖은가. 다행히 소나무 숲에 폭 싸인 왕릉이 집에서 가깝다. 배낭을 챙겨 연둣빛 봄의 기미를 탐사하러 집을 나선다. 준비물은 대충 뭉친 주먹밥 몇 알, 커피와 생수 그리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식물도감.
쉬엄쉬엄 두 기의 왕릉 주위를 돌고 나서 걸음을 쉰다. 숲의 은밀한 속살거림이 나를 에워싼다. 더없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의 4월과 어떤 이들의 4월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예전과 다른 4월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윤곽 흐린 슬픔이 찾아온다. 불현듯, 그야말로 불현듯.
슬픔 가운데 가장 큰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테다. 생명의 부활이 봉쇄된 그들의 4월에 봄의 부활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첫 문장은 그들에게는 아주 작은 한숨, 아주 작은 비명에 불과하리라.
일 년 내내 ‘4월’을 살고 있는 이들의 슬픔이 조금씩 조금씩 견딜 만해졌으면 좋겠다. 제발, 누군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무례하게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려나, 생명의 봄이지 않은가.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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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