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인 3월 26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개헌안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발의됐다. 헌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발의된 대통령 개헌안은 주권자인 국민들이 그 내용을 충분히 주지할 수 있도록 20일 이상 공고되며, 아무리 늦어도 60일 이내인 5월 24일까지는 국회가 가결이든 부결이든 국회 의결을 해야 한다.
국회에서 가결이 되어야 국민투표에 붙여지며,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에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개헌은 확정된다. 필자는 이번 개헌안의 자문안을 만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음을 미리 밝힌다. 그렇지만 자문특위 위원으로서가 아니라 헌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개헌안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번 개헌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촛불혁명’으로 촉발됐다. 모든 혁명이 개헌으로 완성되듯, 이번에 개헌이 이뤄지면 개헌을 통한 ‘촛불혁명’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촛불현장에서 많은 국민은 일관되게 대통령과 국회라는 국민의 대의기관들이 다수 국민의 뜻을 국정운영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민의 뜻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국가의사를 결정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민들은 이들 대의기관들에 의해 줄곧 행해졌던 ‘대의제의 실패’를 문제로 지적했다. 그래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민의를 저버린 선출직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 요구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렸다. 이런 촛불현장의 목소리들도 이번 개헌안에 많이 반영됐다.
직접민주제 요소 도입 국민주권 강화
그 결과 첫째, 국민주권이 강화됐다. 국민이 직접 법률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뜻을 크게 거스를 경우 임기 만료 전에 파면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가 개헌안에 담겼다. 대의제의 실패를 보완할 수 있는 직접민주제적 요소로서 국민발안제와 국민소환제가 헌법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국민발안이나 국민소환과 관련해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의 뜻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그 구체적인 요건이나 절차는 법률에 위임하도록 했다. 헌법 본문 앞의 전문에서 민주 이념을 드러낸 역사적 사건으로 4·19혁명 이외에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이 추가됐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주권자인 국민이 불의한 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저항권의 근거 규정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추가로 더욱 강화된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민의에 의한 책임정치의 강화를 위해 대통령 임기도 5년 단임제에서 4년 연임제로 바뀌었다.
둘째, 기본권 규정들이 많이 신설되고 강화됐다. 1987년 이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대두된 새로운 기본권들인 정보인권, 안전권 등을 신설하고, 사회보장수급권이나 주거권, 건강권 등 복지사회의 사회권들이 구체화되고 강화되는 등 국민 기본권 보장도 확대됐다. 또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에 이르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일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했다.
즉 기본권의 성질상 ‘인간의 권리’로서의 성격이 강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등 대부분의 자유권들은 그 주체가 ‘사람’이 됐다. 그러나 국민주권주의를 구현하는 참정권이나 국민 세금으로 실현되는 사회권들의 주체는 여전히 ‘국민’으로 남겨두었다.
선거권과 관련해 현행 헌법은 선거 연령에 관한 규정이 없고 공직선거법에서 19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개헌안은 헌법에서 선거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낮춰 규정했다. 젊은 층의 선거 참여를 확대하고 투표율을 높여 국민들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줄이고, 선거에 젊은 층의 의사도 폭넓게 반영하기 위한 조치다.
재판청구권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로 바꿔 현행의 국민 참여 재판은 물론 배심제와 참심제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했다. 노동자의 노동권도 강화됐으며, 법률상에 규정돼 있던 ‘동일가치노동, 동일수준임금’의 원칙이 헌법에서 보장됐다.
문화와 관련해서는 제9조의 문화 조항이 “국가는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증진하고, 전통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로 바뀌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강조됐고, 전통문화도 계속 중시하면서 그 계승은 ‘발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했다.
경제민주화 위한 새로운 조항 신설
셋째, 경제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경제 조항들이 신설됐다. 경제민주화를 선언한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에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에서 “경제주체 간의 상생과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규정함으로써 경제민주화의 목적으로 경제주체 간의 ‘조화’와 함께 ‘상생’이 강조됐다.
토지공개념의 경우 현행 헌법에도 제122조에서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는 간접적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만, 더 명확한 토지공개념의 근거 규정으로서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러한 토지공개념의 헌법상 정신도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며, 토지공개념 자체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근간으로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상의 경제 질서를 넘어설 수는 없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의 사유재산제나 토지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부동산 입법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헌법재판소에 의한 위헌 결정이 날 수 있다. 경제적 약자로서 기존의 농어민, 소비자에 소상공인을 추가해 소상공인에 의한 국가의 보호·육성 의무를 추가했다.
넷째, 국가기관 간의 분권도 중요하지만, 중앙과 지방 간의 분권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에 지방분권에 대한 여러 헌법 조항들이 신설됐다. 우선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 대신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해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도 ‘정부’의 위상을 갖게 했다. 그런 맥락에서 지방정부의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이 강화됐다. 특히 자치입법권의 경우 현행 헌법에서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게 하던 것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개정해 자치입법권의 확대를 꾀했다.
수도 조항도 지방분권 강화의 맥락에서 신설됐다. 즉 제3조의 영토 조항에 제2항으로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수도 조항을 신설해 수도의 이전을 헌법의 개정이 아닌 법률의 개정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통일시대에 새로운 수도로의 이전을 용이하게 하는 의미도 지닌다. 또한 미래에 수도의 개념이 행정수도뿐만 아니라 문화수도, 해양수도 등으로 다양화됐을 때, “대한민국의 해양수도는 부산이다”, “대한민국의 문화수도는 전주이다”라는 식으로 다양한 수도를 법률로서 용이하게 규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성격도 지닌다.
다섯째, 대통령제 헌법의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더 원활히 작동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줄이고 국회의 권한을 일부 강화했다.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를 헌법에서 삭제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행사시 사면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게 했으며, 대통령의 조약체결권 행사에 국회의 사전 동의를 요하는 조약의 종류를 법률로써 정할 수 있게 확대했다.
또한 대통령 소속 하에 두던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명시했다. 이에 비해 예산법률주의 도입 등을 통해 재정과 관련한 국회의 행정부 견제권을 늘리고 9명의 헌법재판관 전원의 임명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게 하는 등 국회의 권한은 지금보다 강화했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당리당략이 아니라 또 한 번 광범위한 국민 여론 수렴을 통해 민의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서 국회의 개헌안에 대한 의결권을 엄중하게 행사해야 할 것이다.
임지봉│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