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하던 11월 첫째 날, 충남 홍성군 남당항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이름처럼 대나무가 우거진 죽도(竹島)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해 천수만 한가운데 위치해 1개의 유인도와 11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죽도는 전체 면적 15만 8640㎡(약 4만 8000평)에 60여 명의 주민이 전부인 작은 섬이다.
죽도 주민들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바다가 허락한 시간에 기대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한창 주꾸미 잡기에 여념이 없는 때였다. 주민들이 이른 아침부터 조업에 나선 터라 죽도 마을은 고요했다. 이따금 바람이 불면 파랑이 일렁이고 사각사각 소리 내는 대나무의 몸부림뿐, 자동차도 한 대 없는 마을은 극도의 한적함을 자아냈다.
▶ 충남 홍성군 죽도 마을 ⓒC영상미디어
소나무 4만 1000그루 맞먹는 이산화탄소 감소 효과
불과 3년 전만 해도 죽도는 지금의 풍경과 완전히 달랐다. 작은 마을은 늘 소음에 시달렸으며 마을 전체에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전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육지에서 기름을 실어와 디젤발전기 세 대를 24시간 가동했기 때문이다. 기름을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기름이 유출된 일도 있었다. 죽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는 주민 이인화(70)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디젤발전기 때문에 마을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슈. 이 동네에 새조개가 많은디 밤에 외지 배가 와서 훔쳐가도 발전기 소리가 하도 커서 배 엔진 소리가 들렸간? 그렇다고 전기를 안 쓸 수도 없잖슈. 냄시는 또 어떻고? 노상 기름 냄새를 달고 살았제. 육지에서 기름 가져오다가 양식장도 다 베렸제.”
▶ 태양광 전자광고판에 죽도 관광 안내가 나오고 있다.
죽도가 평화를 찾은 건 2015년. 충청남도와 한화그룹이 죽도를 태양광 융복합 사업지로 선정하면서부터다. 정부·지자체와 한화그룹이 총 26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무공해 전력을 생산하면 더 이상 디젤발전기는 필요 없었다. 자연 에너지는 무한했고 작은 섬에도 공평했다. 충청남도는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죽도가 전력을 자체 생산해 에너지 자립 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 효과로 디젤발전 비용 연 8000만 원을 아끼면서 소나무 4만 1000그루 식재에 맞먹는 이산화탄소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견은 갈렸다. “디젤발전기 소리 없이 밤에도 조용히 자고 싶다”, “전기가 끊기지 않고 들어왔으면 좋겠다”와 같이 변화를 원하는 반면 “디젤발전기가 있는데 굳이 태양광발전을 해야 하나”, “텔레비전 켜는 데 깨끗한 전기가 무슨 상관인가?”처럼 무관심한 경우도 있었다. 사업추진단은 수차례 공청회를 가지며 에너지 전환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이후 죽도에 태양광발전 201kW, 풍력발전 10kW가 지어졌다. 주간에 피크전력을 저장했다가 야간에 방전하는 900kW급 에너지저장장치(ESS)도 갖췄다. 900kW는 죽도 주민들이 하루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태양광 패널은 죽도신재생에너지발전소에 198kW, 마을회관 옥상에 3kW 설치했다. 10kW 규모의 풍력발전기는 언덕에 세워져 섬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바람이 불면 풍력발전기가 쉼 없이 돌아갔지만 가까이 다가서야 ‘쉭- 쉭-’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죽도 발판으로 태양광-ESS 융복합 시장 확대
죽도 전력수급을 관리하는 죽도신재생에너지발전소에 들어서자 에너지관리시스템(EMS) 화면이 발전전력과 부하 등을 실시간 나타내고 있었다. 정오가 조금 안 된 시각, 태양광발전의 ‘현재 유효전력’이 부지런히 상승하고 있었다. 오후 2~3시면 태양광 충전이 완료된다. 죽도의 에너지 자립률은 78%. 죽도의 햇빛과 바람으로 자체 생산하는 비율이다. 햇빛과 바람이 좋은 봄·가을은 80~90%를 기록하는 반면 일조량 편차가 심하고 전력 수요가 큰 여름·겨울은 50~60%를 보인다. 흐린 날씨나 야간의 부족한 전력을 채울 때는 디젤발전기가 그 자리를 보완한다. 송진우 죽도신재생에너지발전소 부소장은 “에너지 자립을 표방하는 다른 섬들이 자립률 50% 내외를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78%는 상당한 수치다. 죽도가 가장 높다”고 자랑했다.
▶ 1 바람이 불자 10kW급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2 죽도신재생에너지발전소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3 송진우 죽도신재생에너지 발전소 부소장이 발전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4 피크 전력을 저장했다가 야간에 방전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5 주민 이인화 씨가 태양광 해충포집기 앞에서 웃고 있다. ⓒC영상미디어
태양광과 풍력발전에서 생산하는 전력만큼 디젤의 사용량이 줄었다. 죽도의 에너지 자립률이 78%이니 그만큼의 기름 사용이 줄어든 것이다. 기름 비용도 줄었다. 주민들은 기름 사용이 줄어든 만큼 전기요금 혜택을 원했다. 충남과 홍성군은 고민했다. 주민들에게 편익을 나눠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미래를 선택했다. 이에 송 부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전기요금 혜택을 주민들에게 돌려줄 수도 있었죠. 그런데 전기요금이라는 게 낮아질수록 사용량이 덩달아 늘어나게 돼 있어요. 불필요한 전력 사용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죠. 대신 기름 사용에서 절감한 비용을 유지·관리에 사용하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어요. ESS 평균 수명이 6~10년, 설치비용이 약 4억 원임을 감안할 때 교체시기를 대비해 절감 비용을 비축하는 거예요.”
주민들의 전기요금은 그대로였지만 비용으로 상정할 수 없는 소음·공해 등을 감안한 편익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설명이다. 죽도의 에너지 전환 실험이 지속되리란 추측도 가능케 했다. 죽도의 에너지 자립률이 높은 수치를 보이며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한화그룹은 태양광-ESS 융복합 수출로 시장을 넓혔다. 세계 각국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고 있는 점을 공략한 것.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태양광 셀·모듈 판매 시장을 점령했다.
식수 문제도 해결, 재생에너지가 삶을 바꾸다
죽도는 친환경 청정섬의 표상이 됐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깨끗한 에너지가 더해진 이미지 효과 덕분이었다. 자연스레 죽도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많아졌다. 대나무 숲에 탐방로를 조성하고 섬이 훤히 내다보이는 조망대를 설치했다. 관광객도 재생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폐교의 공터를 캠핑장으로 바꿔 태양광 전자광고판, 와이파이존, 해충포집기 등을 뒀다. 이제 하루 수백 명이 죽도를 찾는다. 민박과 식당의 매출이 덩달아 증가했다. 주민들은 마을기업을 구성해 매점 등을 운영하며 부가소득을 창출했다. 온통 바닷일에 매달려 생계를 꾸려가던 때와 다른 모습이 하나둘 연출됐다.
태양광·풍력 에너지는 죽도의 삶을 바꿨다. 주민 육태일(49) 씨는 “예전에는 디젤발전기가 고장 나면 고칠 때까지 전기를 못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금은 전기가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디젤발전기의 전력 공급이 고르지 않았던 탓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여자들 삶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김치를 노상 담갔는데 지금은 김치냉장고를 쓸 수 있으니까 1년에 한 번씩 담가도 된다”며 웃어 보였다.
전기만이 아니다. 섬의 가장 큰 문제인 물 걱정도 덜었다. 현재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바꾸는 해수담수화 시설에 죽도 전력의 약 45%가 사용되는 실정. 디젤발전기를 사용할 때도 담수화 과정은 거쳤지만 비용과 오염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식수를 구하기 위해 기름을 사다 태우는 셈이었으니. 지금은 태양광에서 만든 전력으로 바닷물을 식수로 바꾼다. 손빨래를 하고 있던 한 주민은 “섬에서는 물 잘 나오고 불 잘 들어오는 게 최고”라며 호스에서 콸콸 나오는 물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주민 이인화 씨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배터리(ESS) 용량을 더 크게 해서 태양전력을 저장하고 디젤을 아예 안 쓰면 좋겠는디, 곧 그렇게 되겄제?”
죽도는 더 이상 전력에서 소외받지 않는다. 재생에너지가 섬 주민들의 에너지 복지를 높인 셈이다. 탄소 배출 제로를 지향하는 죽도, 앞으로는 에너지 자립 100%를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