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4월 11일 오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북한의 전략 도발과 미국의 군사행동론으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까지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2018년 2월 북한 선수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마침내 1년 전인 4월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10년 반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남북 정상은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의지를 담은 ‘4·27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4·27 판문점 선언은 적대하던 북·미 관계가 개선되는 실마리가 되었다. 마침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려 북·미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의 내용을 담은 ‘6·12 북미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이는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이후 계속됐던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9·19 평양선언’이 채택되고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재천명했다.
‘빅딜’ 이전에 비핵화 협상 가능성도
하지만 70년간 쌓인 한반도 냉전의 더께는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을 몇 차례 한다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북 관계의 일정한 진전에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그만큼 평화 정착도 늦어지고 있다. 9·19 평양선언 때 약속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도 무산되었고, 2월 27~28일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양측의 입장만 확인한 채 합의서 채택이 불발되었다. 그런 가운데 다행인 것은 비핵화 협상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어느 측도 파국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공조를 재확인하고 비핵화 협상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서둘러 워싱턴을 방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4월 11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빅딜을 논의할 때”라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다양한 ‘미니딜’이 단계적이고 부분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고 밝혀 빅딜 이전에 비핵화 협상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 전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대북 제재에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길 원한다”며 ‘비자’ 문제를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비자 문제는 미국 인도적 지원단체들의 방북 제한을 풀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연장선에서 제재와 무관한 범위 안에서 금강산 관광의 재개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에 재미교포를 포함시킬 방침이기 때문에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계기로 미국 국적 재미교포들의 금강산 방문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금강산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이견이 극적으로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4월 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경제제재 해제에 집착하지 않는다”면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5일 한 모임에서 “(3차 정상회담으로) 빨리 갈 필요가 없다”면서 올바른 비핵화 거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엇갈린 반응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의 입장을 보면 적어도 연말까지는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핵분열물질 생산과 핵탄두, 탄도미사일 제조는 중단하지 않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한미 군사연습은 계속 중단하겠지만, 북한의 전략 도발이 없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만족한 채 북핵 문제를 다른 국내외 현안들의 뒤로 미뤄두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6월 G20 회담 동북아 정세 가를 분수령
이처럼 북한과 미국이 엇박자를 내는 상황이 방치된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요원해진다. 미국은 경제제재로 북한이 손들고 나오길 기다릴지 모르겠지만, 북한은 강화된 핵무력 역량을 바탕으로 내년 한국의 총선과 미국의 대선 국면에서 전략 도발을 재개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들 것이다. 그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 협상의 중단을 선언하고 다시 대북 군사행동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정세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지금 우리에게는 8개월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4월 25일 푸틴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5월 일본을 국빈 방문한 뒤 서울을 방문할지 주목된다. 미·중 무역협상의 타결 직후에 시진핑 주석이 평양과 서울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6월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아베 총리가 참석해 여러 정상회담이 열려 동북아 정세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방미 성과를 바탕으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호응한다면 대북 특사를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언제 화답할지 알 수 없으나, 경제 총력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도 남북대화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추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준비 태세다. 우리 정부는 북·미 사이에서 양측 입장을 중재하려고만 해선 안 된다. 양측을 설득하고 견인해낼 수 있는 창의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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