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축산업계 최대의 난제이자 관심사가 되고 있는 질병이 있다. 감염되면 거의 100% 폐사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돼지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이다. 현재까지 사용 가능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감염되거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주변의 돼지들을 모두 살처분 해야 근절이 가능한 악성 전염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돼지와 야생멧돼지 등 돼지과 동물에만 감염되고 그 이외의 동물이나 사람에서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약 100년 전부터 아프리카 지역에 발생하고 있는 일종의 풍토병으로서 1960년대와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유럽으로 유입된 질병이다. 두 차례 모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선박에서 나온 잔반이 질병의 유입원으로 작용했다. 선박에서 조리하고 남은 감염 돼지의 고기가 포함된 음식물 쓰레기를 항구 주변 양돈장의 돼지에 먹인 것이 원인이었다. 1960년대에는 포르투갈, 스페인 등으로 유입되어 30년 이상 존속하다가 1990년대 말에야 겨우 근절이 되었다. 2007년에 다시 동유럽의 조지아 공화국으로 유입되기 전 까지는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에서만 유일하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근절되지 못하고 풍토병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야생맷돼지 통해 바이러스 국경 간 이동
2007년에 동유럽으로 유입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이후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주변국에 확산되어 근절되지 못한 채 서유럽 쪽으로 계속 전파하고 있다. 2018년 헝가리와 불가리아에서 발생한 데 이어서 9월에는 벨기에까지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현재 유럽에서 러시아를 포함해 총 12개국에서 발생했다. 2018년 한 해에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11개 국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건수는 사육돼지 1449건, 야생멧돼지 5403건으로 확인되었다.
2007년에 유입된 이래 유럽에서 이 질병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주로 야생멧돼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국경 간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프랑스, 독일, 벨기에는 유럽의 주된 돼지고기 수출국가로서 바이러스 유입으로 인해 양돈 산업에 불러 올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크게 우려해 왔다. 결국 벨기에로 바이러스가 유입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독일로 들어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에서는 야생멧돼지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2018년 겨울 전례 없이 많은 수(83만 6865두)의 야생멧돼지를 사냥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42% 증가한 수다. 야생멧돼지 서식 밀도를 줄이려는 노력 외에도 감염된 야생멧돼지로 인한 질병 유입을 막기 위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발생국과의 국경에 울타리를 세우고 있다.
중국 유입으로 세계적인 식량난까지 우려
러시아 및 유럽의 국가들이 10년 이상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고투하고 있을 때 국제식량기구(FAO) 등 국제기구는 이 질병이 아시아, 특히 전 세계 돼지의 반 이상을 기르고 있는 중국으로 유입될 것을 우려해 왔다. 중국에서 이 질병이 발생한 적이 없어 질병대응능력과 경각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에 유입될 경우, 단백질 공급원인 돼지고기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식량난까지 올 수 있다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FAO는 2014년 7월부터 18개월 간에 걸쳐 ’기술협력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통해 질병 발생시 중국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진단 및 방역역량 강화를 지원한 바 있다.
이후 중국 정부도 가상 시나리오를 통한 모의 훈련 등 질병 유입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2018년 8월 초 동북 지역의 요녕성(선양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인됐다. 중국 농업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록 최초 보고는 8월이었지만 최소 몇 개월 전인 3월부터 이미 중국 북동부의 길림성 지역이나 러시아 국경과 연접한 흑룡강성 지역에 이 바이러스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원인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 분석결과 러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 국경지대에서는 양측의 사람과 물자의 왕래가 빈번하다.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생산국인 동시에 최대 소비국인 중국에서 사육되는 돼지의 수는 2016년 약 4억 5700만 마리로 집계되었다. 비록 최근에 대규모의 전문화된 공장형 사육이 점차 확대되고는 있으나 중국의 돼지 사육구조는 아직도 소규모 사육이 일반적이다. 중국 양돈농가의 수가 6000만 가구인데, 이 중 소규모(30두 미만) 농장이 전체 양돈농장의 52%에 달한다. 이러한 양돈농가는 돼지 질병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 차단방역이 안될 뿐 아니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낮다. 이러한 돼지 사육 시스템과 2000km 이상 장거리로 돼지를 수송하는 관행 탓에 중국 내에서 바이러스 확산 속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 2018년 8월 최초 보고 이후 2019년 2월 8일 현재까지 약 6개월간 공식적으로 총 100차례 발생이 보고됐고 100만두 이상이 살처분 됐다. 전국의 28개성·4개직할시 중 21개성·4개직할시로 전파가 확산돼 하복성과 산동성을 제외하고 돼지가 있는 지역의 거의 대부분이 감염된 상태이다.
중국 넘어 동남아와 국내까지 확산될라
문제는 중국에서 그치지 않고 인접국인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태국과 같은 중국 접경지역의 동남아 국가들과 우리나라에 까지 질병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018년 9월 7일자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FAO 수석 수의관인 후안 루브로스는 “돼지고기는 아시아 국가의 음식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교역과 소비가 많기 때문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식품의 이동을 통해 바이러스가 인근 동남아 국가들과 한국에 전파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대로 1월 15일 결국 몽골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2월 8일 현재 5건이 발생해 총 2394두의 돼지가 살처분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구제역이나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여러 가지 불리한 환경 조건에서 생존력이 매우 강하다. 최소한 70℃ 이상에서 30분 정도 가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어떤 조건에서도 바이러스가 쉽게 사멸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단 이 바이러스가 유입돼 자리 잡으면 바이러스 제거가 매우 어려워진다. 러시아와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그렇듯 중국에서도 쉽사리 이 질병이 근절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유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사람은 가장 중요한 바이러스 전파 요인 중의 하나이다. 중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럽의 발생국 등에서 햄, 소시지 같은 돼지고기 산물을 들여오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해 위험물질에 대한 수입금지, 탐지견, X-ray 검색 등 공항만 국경 검역을 강화하고 대국민 홍보 및 교육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결국 농장 내 질병 유입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차단방역에 달려있다. 농장 차단방역을 위한 기본 수칙을 잘 지키고 고열 외에 특별한 증상 없이 폐사하거나 복부, 사지말단부에 충·출혈 소견을 보이며 폐사하는 돼지들이 발견되면 가축방역당국에 즉각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향미 농림축산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 수의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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