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 원장(오른쪽)과 도널 드트럼프미국대통 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1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만났다.│한겨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뒤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어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고 발표되었다. 이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진 지 260일 만의 일이다.
김영철 당 부위원장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후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이는 1992년 1월 김용순 당 국제부장이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을 만나 ‘통일 뒤에도 지역의 세력 균형과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이래 북한 측이 미국에 전달한 첫 번째 발언이다.
대북제재 완화 첫 협상카드로
그동안 북미 간에 협의됐던 내용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표의 발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비건 대표는 1월 31일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전쟁은 끝났다”면서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 정권의 붕괴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2월 11일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과 “12개 이상 문제에 대해 논의했고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월 13일 미 CBS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목표’라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처음으로 협상카드로 제시했다. 2월 14일 미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한국전쟁의 공식 종식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왔다면서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반도 안보 메커니즘, 평화 메커니즘의 창설에 관해 얘기했다”고 밝혔다.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1차 회담 때보다 진전된 비핵화 합의문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협상 초기에 일괄타결-일괄조치의 접근법을 내세웠다가 안 되자 부분적으로 단계적 접근을 수용하면서도 선(先)비핵화-후(後)상응조치의 입장을 견지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 동시행동적 조치’라는 접근법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결국 지난 1월 31일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원칙을 제시해 양측의 접근법이 매우 가까워졌다.
‘싱가포르’ 4개 항 바탕 12개 항 협의
지난 2월 6~8일 평양 방문에서 비건 특별대표가 김혁철 대표와 협의만 했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한 주 앞두고 다시 만나 본격 협상을 갖고 합의문 조율에 들어갈 것이다. 비건 대표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 항에 기초해 12개 항목을 협의했다고 한 것을 볼 때 이번 ‘하노이 공동성명’에서는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항목을 담은 포괄적 합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다만 현재 논의 수준으로 볼 때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상응조치 전 과정의 이행계획을 포함한 일괄타결(package settlement)과 같은 ‘빅딜’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핵 위협의 본질인 과거 핵을 빼고 미래 핵과 현재 핵만 포함시키는 합의에 머무는 ‘스몰딜’은 국내외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빅딜이 아니라고 ‘실패한 회담’ ‘절반의 성공인 회담’이라는 평가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스몰딜에 머문 것을 ‘성공한 회담’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2차 북미정상회담이 안고 있는 제약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성공한 회담’이 되려면 어디까지 합의를 도출해야 할까? 성공한 회담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로 가기 위한 ‘길목’이 확보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비핵화의 핵심은 과거 핵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전히 불신의 골이 깊은 미국과 북한이 어떻게 과거 핵으로 가는 ‘길목’에 합의하느냐가 회담 성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영변 핵시설+α 폐기·검증 등 예상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동시행동적 접근법과 미국이 새롭게 제시한 동시적·병행적 접근법을 결합한다면,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과거 핵으로 가는 ‘길목’을 담는다면 포괄적 합의에 부분 타결을 이룬다고 해도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의 ‘길목’에 대해 비건 특별대표가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포괄적 신고의 시점을 포함한 실무협상의 로드맵을 명확히 할 것을 현신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협의되거나 제시된 것을 볼 때 이번 합의문에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 항을 구체화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하노이 공동성명’에 담길 한반도 비핵화 부분을 예상해본다면, △이미 파괴된 풍계리 핵실험장의 전문가 검증 및 전문가 입회 아래 동창리 해체의 이행계획 △상응조치를 전제로 한 영변 핵시설+α 폐기·검증의 세부 이행계획 합의 △포괄적 신고의 시점을 포함한 실무협상의 로드맵에 관한 약속 등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지금 국제사회는 오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일괄타결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포괄적 합의와 과거 핵을 포함한 부분타결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진전은 가능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가 평화로운 한반도와 번영된 북한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