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나는 패션과 유행에 민감한 10대, 열여덟 살 소년이다. 유독 옷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던 중학생 시절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모델’이 됐다는 점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 변화의 시작은 2016년 3월 서울패션위크 런웨이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를 비추는 조명과 가슴을 치는 커다란 소리 그리고 양옆으로 길게 늘어앉은 수많은 사람들, 그 사이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늘 꿈꿔오던 데뷔 무대, ‘모델 한현민’으로서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무대 뒤편에서부터 심장이 요동쳤지만 긴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최대한 침착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내 심장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했던 우려는 괜한 기우였다. 심장박동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관람객들 소리조차 큰 무대를 메운 음악에 묻혀버렸다. 덕분에 떨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정면 카메라만 응시한 채 걸었다. 20초 남짓한 워킹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날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데뷔와 동시에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가히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상혁 디자이너 쇼 무대의 첫 모델은 나였다. 모델에게 쇼의 포문을 연다는 건 그 쇼의 메인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 쇼는 모델로서 첫발을 뗀 내게 주어진 엄청난 기회였고 모두에게 ‘모델 한현민’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실 모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마냥 옷을 좋아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 옷들을 직업으로 삼을 수 없을까.’ 고민 끝은 모델이었다. 목표는 ‘3년 안에 반드시 데뷔하자’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려면 학원 수강이 필요했지만 너무 비싼 가격 탓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모델 워킹을 익히고 여러 잡지를 뒤적이며 선배 모델의 포즈를 배우는 등 스스로 학습 과정을 거쳤다. 모델처럼 자세를 취한 일상을 찍어 SNS에 게재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걸까. 현재 소속사인 에이전시 대표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만나자마자 걸어보라고 하더니 선뜻 계약을 제안했다. 이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진짜 모델이 됐고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때론 차가운 시선을 받아온 내게 이 모든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나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남들보다 까만 피부가 당연하지만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을 때가 있었다. 가슴 시린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제 나의 무기이자 강점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2017년 미국 <타임> 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들 수 있었던 것 또한 다른 피부색을 가졌지만 더욱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나만의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계무대에서 피부색은 더는 고유성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앞으로 나는 세계무대로 꿈을 펼쳐 나가보려 한다. 도전을 계획 중인 2019 파리패션위크는 그 세계무대 중 하나다. 이 무대에 오르게 되면 한국 남자 모델로서는 최연소다. 데뷔 날 한상혁 디자이너가 내게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네가 가장 먼저 나가 빛을 발휘해라.” 그 한마디를 되새기며 세계무대에서 조명 받는 나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오늘도 다짐한다. 목표한 꿈을 향해 항상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이 되자고.
한현민│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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