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 바람으로 생긴다. 지구가 도는 한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무한한 파도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파력 발전이다. 비케이다이나믹스(BKdynamics) 송승관 대표는 파도처럼 멈추지 않았다. 수년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파력발전기 ‘웨이브 쉬림프’를 개발했고 새롭게 열리는 세계 파력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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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필요한 물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육지에서 공급받는다.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육지에서 전력을 끌어오거나 디젤발전기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 육지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건 비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력 공급 의무를 갖고 있어 매년 적자를 보면서도 도서 지역에 전력을 공급한다. 최근에는 섬 자체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비율을 늘리고 있다. 에너지자립섬 프로젝트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때 섬에서 이용 가능한 재생에너지원이 또 있다. 바로 파력이다.
송승관 비케이다이나믹스 대표는 파력발전기 ‘웨이브 쉬림프’를 개발했다. 송 대표는 이와 같은 파력발전기가 확대되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관광섬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가 파력 발전에 심취한 건 2011년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가 발단이었다. 과학고를 나와 대학원에서 물리학,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 부품을 연구하며 파력 발전에 푹 빠졌다. 수년간 연구하고 졸업 후에도 사비를 들여가며 연구를 이어갔을 정도다. 거친 파도와 태풍에도 견딜 수 있고 지속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실패를 거듭하며 새우 모양의 ‘웨이브 쉬림프’를 만들었다. 연구자는 창업가가 됐다.
국내 파력 시장은 거의 전무하다. 개발 업체도 손에 꼽는다. 해외 사정도 비슷하다. 영국, 덴마크 등 몇몇 나라가 주도하고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송 대표는 “태양광·풍력은 기술개발이 거의 마지막 단계로 정책적 과제만 남은 상태다. 반면 파력 개발은 초기 단계로 연구자로서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같다”며 파력 시장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파력 시장이 저조한 건 기술과 비용 때문이다. 바다에서 이뤄지는 파력 발전은 생산 전력을 육지로 끌어와야 한다. 송전 케이블을 설치하면 발전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육지 인근에 놓는 파력발전기가 개발되며 케이블 비용은 줄였지만 파도가 얕아 전력 생산량이 적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송 대표는 이 점에 착안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만든 전력을 바다에서 사용하자. 전 세계적으로 해상 전력 솔루션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잡아끌었다.
▶ 1 인공 파도로 파력발전기 '웨이브 쉬림프’를 시범운영하는 모습 2 외해양식장에 ‘웨이브 쉬림프’를 설치한 조감도 ⓒ비케이다이나믹스
부유식·소형 발전기 ‘웨이브 쉬림프’
섬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것 외에도 파력 발전의 잠재성을 가진 시장이 곳곳에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해양식장’이었다. 외해양식장은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연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며 양식하는 어업장이다. 사람이 자주 가는 대신 저장한 먹이를 자동으로 주고 조류, 수온, 사육 상태 등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때 전력이 필요한데 파력발전기를 사용하면 바다에서 발생한 전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영국은 이미 파력 발전으로 외해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해수담수화, 잠수함 초음파 탐지 등에 파력 발전이 활용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송 대표가 바라보는 파력 발전의 또 다른 가능성은 해상 풍력기의 발전이다. 바람이 불어야 파도가 치듯 바다 위 풍력과 파력 발전이 동일한 환경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해상 풍력 주변에 파력을 함께 설치하면 전력 생산에 시너지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해상 풍력은 2030년경이면 육상과 해상의 비율이 1 대 1까지 확대될 것으로 분석되는 만큼 파력 발전도 함께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의 유망 파력발전기 업체가 바다 위에 태양광과 파력발전기를 결합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해상 풍력과 파력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소형일 때 가능하다. 기존 파력발전기는 크기가 수십 미터에 달할 만큼 대형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개발 비용도 증가했다. 또 거친 태풍에 견뎌야 하는데 큰 외형은 파손될 확률이 높았다. ‘웨이브 쉬림프’를 소형으로 제작한 이유다. 작게 만들어서 생존을 높이는 전략이다. 바다 밑에 거치식으로 만드는 대형 파력발전기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웨이브 쉬림프’는 부유식으로 제작했다.
‘웨이브 쉬림프’는 효율성도 높였다. 파도가 칠 때 높은 지점을 마루라고 한다. 마루와 마루 사이를 주기라고 하는데 불규칙해 보이는 파도에도 평균 주기가 있다. 장주기, 단주기에 따라 발전 장치 크기도 변해야 적절한 출력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런데 ‘웨이브 쉬림프’는 3~8초 사이의 장·단 주기를 모두 흡수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장주기의 파도가 치는 수심이 깊은 곳에서도 견딜 수 있다. ‘웨이브 쉬림프’ 1기당 생산하는 전력은 15KW(킬로와트). 4인 가구 기준으로 5~7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만약 해상에서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면 병렬 이용도 가능하다.
파력 발전은 종합 학문이다. 전기, 해양, 조선, 물리, 공학 등이 결합돼 있다. 다양한 영역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개발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송 대표가 연구자로서 걸어온 길도 한몫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아이디어 싸움이다. 중소기업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했다. 또 “개인의 아이디어가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확대되고 있다”고 했다. 3D 프린터 발전으로 자신이 연구를 시작할 때보다 부품 개발 비용이 1/10 정도 낮아졌고, 최근 전산유체역학 역시 발전해 시뮬레이션 장벽도 낮아졌다고 했다. 일반인이 활용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그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기술창업 지원을 세분화하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는 정부·기업 차원에서 M&A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케이다이나믹스는 한국전력공사 에너지 스타트업으로 선정돼 1억 원의 창업자금을 지원받고 해외 업체와 MOU를 맺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는 물론 관광섬, 외해양식장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파력 발전 시장이 확대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낼 기업, 비케이다이나믹스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