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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가 수험생이 되면 대학 입시에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아내는 아이들의 수능시험 백 일 전부터 시험 당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절에 가 부처님께 좋은 성적을 내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장기간에 걸친 기도라 너무 힘들어 쓰러질 수도 있다는 나의 만류에도 아내는 백 일간 꼬박 삼수생 딸과 재수생 아들을 위해 왕복 3시간 거리의 통도사를 오갔다.
정말 말이 백일기도이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아내가 백일기도에만 정성을 쏟다 보니 자연히 집안 생활에 균열이 왔지만 내가 참고 해결해나갔다. 때로는 너무 열성적이어서 아내가 밉고 내 사람 같지 않게 여겨졌으나 기왕 시작한 일 중도에 그만두게 할 수도 없었다. 일요일이 되어도 아내는 일찌감치 절에 가버리고 아이들도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된다며 독서실이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래서 휴일이면 종일 나 혼자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마다 허전하고 공허해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아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자식 잘되라고 하는 일이니 굳이 만류나 포기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아내도 보름을 남기고는 기진맥진한 모습이 역력했고 건강에도 조금씩 무리가 왔다. 하도 애처로워 그냥 집에서 조용한 시간에 기도하라고 말해도 기어코 절에 갔다. 나는 ‘저러다 드러눕지나 않을까, 자신의 건강도 좀 챙겨야 할 텐데’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걱정이 쌓여갔다.
수능시험 당일에도 진땀을 뻘뻘 흘리며 앓으면서도 시험 시간에 맞춰 기어이 부처님 앞에 가 절을 올렸다. 그러나 수능시험이 끝나도 아내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시험 결과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기도만 올렸다. 수능 성적 발표날에도 덤덤한 표정으로 절로 향했다. 마치 마음이 속세를 떠나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수능 성적이 발표되었다. 결과는 아주 만족할 점수는 아니지만 그 정도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길 정도였다.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한 덕도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수고했다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아내의 모습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발견했다. 평소에는 성적이 기대 이하면 질책이나 꾸중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보통 사람의 마음을 벗어나 불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초연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기도를 마치는 날, ‘정말 수고했어. 잘 견뎌내고 잘해냈어’라며 아내의 손을 잡고 위로했더니 감격해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아내의 끈질기고 정성스러운 기도 덕분에 딸과 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일차적으로는 아이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아내도 백 일이라는 긴 시간의 정성으로 톡톡히 한몫을 했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것은 위대한 어머니의 힘이었다. 만약 내가 백일기도를 했다면 일주일도 못 가 도중하차했을 텐데 아내는 약한 몸으로 오로지 자식 잘되라는 일념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참아가며 목표한 백 일을 다 채우고도 합격자 발표날까지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여성이 육체적으론 연약해 보여도 마음을 혹독하게 다지면 남성보다 더 강인하다는 것을 느꼈다.
우정렬 부산시 북구 화명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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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