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정 의사
天宮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 半月이
고요히 대지 우에 빗칠 때
우리 집 뒤에 잇는 논 가온대는
뭇 개구리 소래 맛처 노래합니다.
이 소래 들을 때마다
넷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떠러집니다.
미지의 나라로 떠나신 언니
개구리 소래 듯기 조화하드니
개구리는 노래하건만
언니는 이 소래 듯지 못하고 어듸 갓을까!
‘개구리 소래’, 박차정 지음
▶동래여고 근처에 있는 박차정 의사상
부산 동래읍 복천동에서 출생해 동래일신여학교 29회 졸업생이었던 박차정(1910~1944). 그녀가 지은 시 ‘개구리 소래’는 세상을 떠난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글이다. 내용 중에 ‘이 소래 듯지 못하고 어듸 갓을까!’라는 물음은 사랑하는 언니를 향한 그리움과 국권을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대한 상실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되고 지역의 대표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웅으로 바라보는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가 이전에 그 시대를 견뎌낸 소녀이고 어머니이고 아버지였다.
▶경상남도 밀양에 있는 박차정 의사 묘소
중앙 근우회 주요 인물로 떠올라
박차정은 국권을 상실한 충격에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부친 박용한과 기독교에 심취했던 모친 김맹련의 차녀로 태어났다. 동래 성결교회 교인이었던 모친은 5남매를 홀로 키워야 했다. 목회 활동을 하며 항일운동을 했던 큰오빠 박문희와 신간회와 의열단으로 활동한 둘째 오빠 박문호, 그리고 교사였던 언니 박수정과 의료사업가 동생 박문하와 함께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영남 최고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인 일신여학교에서 주체 의지와 항일 의지를 키워나갔다. 일신여학교는 부산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옥고를 겪은 선배들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심순의, 김반수, 박순천, 김응수 등 선배들은 부산 3·1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신여학교 졸업생들은 부산, 경남 지역의 교육기관에서 활동하며 존재감을 나타냈는데, 지역 교류를 도모하거나 항일운동에도 나섰다. 박차정은 일신여학교 교지 <일신(日新)> 2집에 ‘철야(徹夜)’라는 자전적 소설을 게재해 감수성 풍부한 소녀의 시각으로 조국 현실을 직시하기도 했다. 시 ‘개구리 소래’와 수필 ‘흐르는 세월’ 등을 통해 또래 소녀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려 했던 노력은 이후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에서 소신 있는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박차정은 조선소년동맹 동래지부 회원, 근우회 동래지회 활동 등 지방 활동을 시작으로 중앙 근우회의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거침없는 발언과 올곧은 의지, 그리고 항일운동 집안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 항일운동이 서울을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되자 시위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어 수차례 검거되었다. 그리고 일제의 경계가 삼엄해지자 둘째 오빠의 권유로 중국으로 망명해 의열단 활동을 시작했다. 의열단 활동을 통해 1935년 6월 창당된 민혁당의 부녀부 주임, ‘남경조선부녀회’ 활동, 만국부녀회 대표로 참석했고, 임시정부 특사로 파견되었다.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박차정 의사 생가
가명 ‘임철애’로 대일 선전방송
박차정의 또 다른 이름은 ‘임철애’다. 일제의 감시가 삼엄하고 독립운동가 검거에 혈안이 되었던 시기에 박차정은 임철애라는 이름으로 대일 선전방송 및 잡지 글을 기고하는 등 끊임없이 항일 투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1939년 10월에 결성된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의 수장이 되어 여성 항일투사 22명을 양성하는 리더로 활약했다. 필자가 한국광복군 가운데 여성 광복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박차정 이름은 다시 확인되었다. 1942년 한국광복군 창설 과정에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결성은 여성 광복군의 합류로 이어졌다.
▶밀양에 있는 박차정 의사 묘소에 고교생들이 푯말을 만들어놨다.
한국광복군에서 여성 광복군 대원들은 주로 초모 활동, 선전 활동, 정보 활동, 심리작전 활동, 의무대 활동을 하거나 격전지에서 정찰 및 첩보 활동, 특수 활동 등을 수행했다. 또 임시정부 요원으로 교차 활동 또는 후방 지원 활동을 하는 등 정규군 대원으로서 적진의 전방과 후방에서 활동했다. 조선의용대 출신 여성 광복군을 살펴보면 총사령부(김정숙), 제1지대(김상엽, 김기숙), 제3지대(조명숙), 기타(박차정, 장수정, 이화림, 한수은) 등 8명이 확인된다. 그중에서 박차정은 김원봉의 처이자 부녀복무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던 박차정은 민족해방운동과 부녀해방운동을 동시에 추구한 ‘개구리 소래’ 소녀였다.
심옥주_ 전 부산대 조교수이며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 국회인성교육실천포럼 자문위원, 여성독립운동학교 대표다. 제15회 유관순상을 수상했으며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추진위원회 위원, 국가보훈처 사료수집 전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알리다> <윤희순 평전> <윤희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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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