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걸작으로 불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은 현재 전세계에 캐스팅 된 6개의 조각이 있다. 자코메티의 손길이 그대로 묻어 있는 오리지널 석고 조각의 유일한 원본이 최초로 한국에 입성했다.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이자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이 한국 최초로 열린다. 여러모로 스케일이 큰 전시다. ‘걸어가는 사람’의 유일무이한 원본 석고상과 자코메티의 유작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로타르 좌상’을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작품의 액수도 기록적이다. 1000억 원이 넘는 유일한 조각상인 ‘걸어가는 사람’을 포함한 이번 전시는 국내 전시 역사상 가장 큰 작품 평가액인 2조 1000억 원의 규모를 갖췄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은 피카소의 기록을 깨며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다.
가까운 일본에서 한차례 전시가 열린 적은 있지만, 자코메티 작품이 아시아에서 선보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코바나컨텐츠’의 윤혜정 큐레이터는 북핵 문제 등 국제 정세의 다양한 변화로 작품이 들어오지 못할 뻔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전시를 본격적으로 진행한 것이 2017년 10월경인데, 당시 프랑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측에서 전시 기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문제 삼았다. 조각 전시의 경우 작품 운송 시 생길 수 있는 변수 때문에 해외 전시를 꺼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국제 정세라는 외부 요인까지 더해져 입장을 바꾼 것이다. 다행히 위기가 잘 정리돼 전시가 가능해졌지만, 그만큼 쉽지 않게 진행된 전시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 이번 첫 한국특별전은 자코메티의 ‘예술로서 세상과 사회의 정신을 깨울 수 있다’는 치열한 고뇌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C영상미디어
전시 섹션은 ‘자코메티의 연대기’, ‘초기 작품’, ‘모델을 선 지인들’, ‘걸어가는 사람’, ‘자코메티의 작업실’로 크게 나눠져 있다. 최초로 공개되는 대작 이외에도 초기 시절부터 말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작업한 작품이 116점 공개되는 만큼 꼼꼼하게 구성돼 있다. 막역한 사이로 지낸 사무엘 베케트의 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미술 작업도 눈길을 끈다. 조각 작품은 어렵다고 인식하는 관람객을 위해 작품마다 관련 스토리를 친절하게 소개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자코메티는 모델들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존재에 대한 물음과 답을 이야기한다(위).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아네트 흉상을 관람하고 있다(아래). ⓒC영상미디어
‘모델을 선 지인들’ 섹션을 통해서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비롯한 인생까지 엿볼 수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한 모델인 그의 남동생 디에고, 연인이었던 모델 이사벨, 아내 아네트,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사랑에 빠진 38세 연하의 연인 캐롤린, 유작의 주인공인 사진작가 로타르까지. 그의 시선이 머문 사람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인 철학자 친구인 야나이하라 이사쿠의 작품도 눈에 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자코메티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죽음에 대한 관점이 남달랐다. 이탈리아 여행 중 누군가의 죽음을 우연히 목격한 이후로 그의 화두는 늘 죽음에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유작인 ‘로타르 좌상’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는 자신을 빚듯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그는 “삶은 생각보다 더 허망하고 덧없는 꿈”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시의 대미는 ‘걸어가는 사람’이 장식한다. 침묵과 묵상의 방으로 만들어져 있다. 별도의 홀로 구성된 공간은 방석이 마련돼 있어서 명상하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걸어가는 사람’은 실로 대단하다. 부스러질 것같이 약한 형체를 가지고도 걸어가려는 고집, 구부러지기는 해도 절대 부러지지 않고 나아가려는 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벗 삼아 두 눈을 부릅뜬 채 심연을 응시하는 슬픔 속 인간의 위대함이 보인다.
그리고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남긴 ‘시선’이 그곳에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라는 예술가의 시선이 던진 깊은 사유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전시다.
▶ 1, 2, 3 작업실에서 일본인 철학자 친구야나이하라 흉상을 작업하는 알베르토자코메티(1960) 4 파리의 한 카페,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일본인 철학자 친구 야나이하라의 모습을 아내인 아네트가 촬영했다.(1960) 5 스튜디오 앞마당에서 그의 작품 ‘키 큰 여자 IV’와 함께(1960) 6 작업실에서 담배를 물고 앉아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1950) 7 두상(자크 뒤팽의 책, 알베르토 자코메티, 마그 에디션, 1962의 표지를 위한 프로젝트), 1960~1962년경, 종이 위 연필 8 바뱅 가의 술집 셰자드리엥 III, 1961년경, 석판화 ⓒ코바나컨텐츠
전시 정보
일시 4월 1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요금 성인(만 19~64세) 1만 6000원, 청소년(만 13~18세) 1만 원, 어린이(만 7~12세) 8000원, 특별요금 6000원(만 7세 미만 미취학 아동, 만 65세 이상,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국가유공자 본인)
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동절기, 11월~2월), 오전 11시~오후 8시(하절기, 3월~10월)
문의 02-532-4407
임언영│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