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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하는 엄마입니다. 6살, 3살 두 아이가 있습니다. 아, 2019년이니 이제 7살과 4살이 됩니다. 엄마의 손길과 눈길과 입맞춤이 많이 필요한 나이입니다.
저는 이제 41살입니다. 한 차례 직장을 옮겼습니다. 새로 일하는 직장에서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어쩌면 20대 후반 첫 입사 뒤 하던 인정투쟁과는 다른 종류의 능력(품이 넓고도 단호하며, 조직 관리를 잘하고, 일도 잘하는 그런 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척하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새 직장은 출퇴근 시간을 꼭꼭 지켜야 합니다. 이전에는 업무는 많지만 (자율) 출퇴근에 ‘납품’만 하면 되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출퇴근을 지키고 점심시간도 12~1시를 꼭꼭 지키고 맡은 일 납품도 잘해야 하는 어마무시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직장은 ‘어마무시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종종 친구들이 말합니다. ‘그게 보통 직장이야.’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 ‘그동안 안 그랬던 게 이상한 거야.’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출근은 정시에 하되 퇴근은 정시에 하지 못하다 보니 손길과 눈길, 입맞춤이 필요한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뽀뽀를 하려면 아이들은 도망가고, “안아줘” 하면 장난감 더미로 쑥 들어갑니다. 아이들과 살 부딪는 시간, 아이들과의 유대감은 완벽하게 정비례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땡볕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단풍이 참 예뻤던 것 같은 지난가을에는 단풍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서 베개에 머리를 붙였다, 아침에 눈곱 떼고 출근하기 위해 오전 8시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그야말로 몸이 쥐포처럼 납작해집니다. 이 모든 클리셰는 대한민국 ‘보통 사람’의 일상이고, 이걸 버티는 건 특별히 말할 만한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가끔 생각해봅니다. 버티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늘빛이 하루하루 어떻게 달라지는지, 오늘 바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부는지, 회사 뒷골목 화단엔 무슨 꽃이 피고 지는지 알면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들과 눈 맞추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게, 아이가 없는 사람도 ‘홀로’가 불안하지 않게, 그렇게 일과 일하는 공간이 설계되면 좋겠다고.
유연한 일터, 탄력적 일터. 이런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가까워지려면 결국 어딘가에서는 ‘고객’인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회는 누구나 ‘오늘’ 요청해서 ‘오늘’ 해결되길 기대하니까요. “이거 고장났는데 오늘 고칠 수 있을까요?” “김 대리, 이 자료 사장님이 요구하는데 오늘 퇴근 전까지 정리해줄 수 있겠어?” “지금 주문하면 오늘 받을 수 있나요?”
오늘이 내일로, 내일이 모레로 미뤄져도 우리 모두는 괜찮지 않을까요.
2019년의 하루하루는 버티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엄마이자 시민이고 싶습니다.
김희진 경기도 고양시 무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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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