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이유 <오피스>
<오피스>는 2015년에 개봉한 직장 공포영화다. 식품회사를 배경으로 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동지옥이 되어버린 회사의 참상이 드러난다. 영화는 드라마 <미생>에서 제기되었던 인턴제도의 문제점을 비롯해 사내 왕따, 과잉경쟁, 과잉억압 등 살벌한 직장문화를 보여줄 뿐 아니라,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보았던 폐쇄적인 공동체에서 미쳐가는 약자들의 모습을 담는다.
1. 야근과 경쟁으로 미쳐가는 사무실 호러
영화는 멍한 표정으로 전철을 타고 귀가한 김 과장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TV를 보는 가족들에게 그는 갑자기 망치를 휘두른다. 일가족 몰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은 김 과장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형사들은 회사에서 김 과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다. 한결같이 아무 문제가 없는 성실한 직원이었다는 말에,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낌새를 감지한 형사는 인턴사원인 이미례(고아성)를 따로 불러 묻는다. 김 과장이 “눈치 없이, 자기 일만 혼자 열심히 하는 인간”이 아니었냐는 형사의 질문에 이미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회사 CCTV를 확인한 경찰은 김 과장이 회사로 들어오는 장면만 찍혔을 뿐, 나가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족을 때려죽인 살인마 김 과장이 회사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오싹한 추측과 회사에서 김 과장을 보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 하지만 경영진은 수사보다는 직원들의 입단속에 급급하다. 엽기적인 가족 살해자가 식품회사의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 이미지가 추락할 것임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같은 부서 직원들은 사건의 충격과 공포를 제대로 느낄 짬도 없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성실하게 혼자 일을 처리해오던 김 과장이 인수인계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 그 업무를 누군가가 떠맡아야 한다. 살인마보다 무서운 일폭탄이 떨어진 셈이다. 위에서는 입단속을 하느라 직원들의 규율을 강화하고, 형사들이 들락거려 분위기도 뒤숭숭한 가운데, 업무 과부하로 인해 사무실의 긴장은 극도로 높아진다. 이런 와중에 직원들이 이상한 장소에서 하나둘 변사체로 발견된다. 사무실의 공기는 공포와 불안으로 폭발 지경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에 휩싸인 사람은 가장 불안정한 신분인 인턴사원 이미례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부서에 고스펙의 새 인턴사원이 발령을 받자 초조감에 빠진다.
형사는 김 과장이 사건 직전에 부당해고 통지를 받았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김 과장과 이미례를 기본축으로 부당해고, 사내 왕따, 인턴제도 등 불합리한 노동문제들을 잘 보여준다. 특히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밤중에도 불려 나오기 일쑤며, 주말에도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과잉노동의 실상이 리얼하게 담긴다. 홍 대리는 “내가 회사를 죽으려고 다니는지 살려고 다니는지 알 수 없다. 병 걸릴 것 같다”며 토로한다. 이미례를 비롯한 수많은 청춘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어엿한 대기업의 정규직 사원이지만, 그들의 일상은 노동지옥에 빠진 일개미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영화는 빈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하고 있을 때 목덜미를 스치는 선득한 느낌이나, 등 뒤에서 나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찔한 공포를 생생히 전한다. 또한 파티션으로 가려져 반만 보이는 사무실의 책상들, 잠시 담배를 피우려 머무는 비상구, 혼자 울기 위해 가는 화장실 등 직장인들이 매일 접하는 일상의 공간들을 서늘한 공포가 서린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그리고 이미례가 느끼는 열패감과 절망을 통해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공포를 환기시킨다. 야근을 하던 김 과장이 서랍에서 꺼낸 칼자루를 이미례에게 건네며, “잡고 있으면 묵주처럼 편안해진다”고 말하는 장면은 아무리 노력해도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테러리즘을 통한 파국을 상상하며 위안을 삼는 피폐한 노동자의 내면을 드러낸다.
2.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과로사회’다. 끊임없는 야근과 성과에 대한 압박, 그리고 고용불안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지난해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대 노동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법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 중이며,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이전 법으로는 주 5일 기준으로 52시간을 근무하고 주말에 하루 8시간씩 16시간을 추가 근무해도 괜찮았지만, 개정법에 의해 주중과 주말을 합쳐 최대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면, 기업들이 기존의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26만 6000명을 추가 고용하고, 법정공휴일을 유급휴무로 전환해야 되므로 연 12조 1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의 약 70%를 중소기업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을 덜기 위해 50인 이상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시행하고, 5인 이상 사업장은 2121년 7월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또한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특별 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하는 예외 규정을 두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분명 환영할 만한 조치다. 그러나 마음껏 환영하기 꺼려지는 것은 기업들이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은 단축되었지만,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즉 기업이 노동강도를 높여 동일한 양의 업무를 제한된 시간 안에 마치도록 강제하고, 근무시간 중 태만한 직원은 없는지 감시와 규율을 강화한다면,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김 과장이 사라진 후의 사무실처럼 불안과 공포가 공기를 가득 채우는 노동지옥이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대중문화 평론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고, 보건정책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2002년에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등단한 후 <한겨레>, <창비 어린이> 등 많은 매체에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해왔다. 텍스트의 사회적인 의미에 주목하고 여성, 장애, 노동, 아동, 외국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