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저절로 봄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평창에 들어서는 순간 잊고 있었던 ‘겨울왕국’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바로 그 자리에서 평창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펼쳐졌다. 지난 3월 11일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좌식 종목에서 우리나라의 첫 메달 소식이 들려왔다. 값진 동메달을 거머쥔 주인공은 장애인 노르딕스키 간판 신의현(38) 선수다. 신의현은 평창에서 총 6개 세부 종목에 출전했다. 평창올림픽에서 활약한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이 달린 거리를 훨씬 웃도는 경기를 치러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3월 1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영국 경기에 많은 관람객이 찾아 응원하고 있다. ⓒ연합
바이애슬론센터에서 관람객을 안내하던 자원봉사자가 신의현의 메달 소식이 들리고 나서부터 패럴림픽 경기를 보기 위해 평창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말을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바이애슬론센터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 늘어선 줄이 꽤나 길었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관객은 휠체어를 타거나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경기장에 들어서는 장애인이었다. 패럴림픽이 올림픽을 넘어선 모두의 축제라는 말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긴 행렬과 함께 움직이는 그들의 손에는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반다비 인형이나 마우스패드가 들려 있었다. 축제를 즐기러 가는 그들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제일 뒷줄에 앉은 북한 선수단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인공기, 한 손에는 한반도기를 든 선수단은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두 깃발은 열심히 펄럭였다.
3월 13일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에서는 우리 선수 세 명이 같은 자리에서 경기를 치렀다. 먼저 나선 선수는 평창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스키선수 중 최고령 선수로 이름을 올린 이도연(46)이다. 재활운동을 시작하면서 패럴림픽 선수가 된 이도연은 동·하계 종목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원더우먼’이다. 하계패럴림픽에서 사이클로 이름을 알리기도 한 이도연은 스키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번 평창에서만 크로스컨트리 스키, 바이애슬론 등 4개 종목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장 가득 메운 함성과 박수
눈앞에서 지켜본 바이애슬론은 텔레비전으로 본 것보다 훨씬 힘든 종목이었다. 순전히 팔 힘에 의지해 스키폴을 밀면서 앞으로 나아가 언덕을 완주하고 나면 바로 사격이 이어진다. 사격도 실수 없이 과녁에 명중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만약 사격에 실수가 생긴다면 사격 이후 주행거리가 한 발당 100m씩 추가로 늘어난다. 때문에 주행속도도 빨라야 하지만 사격하는 순간의 몰입도도 중요하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시종일관 거세게 부는 바람이 선수들에게 새로운 시련을 안겼다. 야외 경기장에 앉아 있는 관중들의 머리카락도 바람을 따라 마구잡이로 흩날렸다. 이윽고 사격에서 선수들의 실수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도연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사격에서 한 발을 놓친 데 이어 2~4번째 시도에서 두 발씩 놓쳐 추가로 벌주 7바퀴를 더 돌게 됐다. 이도연이 사격에 실패하면 객석에서 탄식이 터졌다. 하지만 관중들은 객석 앞으로 이도연이 지나갈 때마다 응원의 함성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도연의 팔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 게 보였다.
이도연이 추가 바퀴를 도는 사이 금메달이 가려졌다. 독일의 안드레 에스카우가 피니시 라인으로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들어서자 바로 옆에 앉은 독일 응원단의 함성이 터졌다. “안드레! 안드레!”를 외치는 목소리에서 환희에 찬 기쁨이 넘쳐났다. 에스카우가 금메달의 기쁨에 취해 있는 사이 피니시 라인으로 은메달을 다투는 두 선수가 들어섰다. 러시아 출신 패럴림픽중립선수단(NPA)의 마르타 자눌리나와 이리나 굴리아에바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피니시 라인을 넘었다. 자눌리나가 43분52초01로 굴리아에바(44분25초05)를 누르고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메달의 주인이 모두 결정된 순간에도 이도연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달려 완주에 성공한 이도연은 53분51초01을 기록해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메달권과 거리가 먼 성적이었지만 이도연이 피니시 라인에 들어서자 많은 관중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경기를 마친 이도연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성적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제가 잘하면 좋은데 솔직히 잘 못해요.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한 건데, 너무 성적이 안 좋고 내가 너무 부족한 게 많았어요”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대회이지만 이 역시 경쟁이다.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라면 누구나 신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으려 한다. 이도연의 눈물이 의미하는 것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애슬론 여자 좌식 10km 경기에 이어 남자 좌식 12.5km 경기가 열렸다. 이정민과 신의현이 스타트 라인에 섰다. 각각 29번과 35번 등번호를 단 이들이 스키폴을 휘젓자 조용했던 객석에서 다시금 환호가 터져나왔다.
또 다른 선수는 관객
▶ 1 3월 15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대한한국 대 캐나다 경기에서 관중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이정민은 독특한 이력으로 화제가 된 선수다. 이정민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길랑바레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아 전신마비 증상을 겪고 난 후 장애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여느 비장애인 못지않게 안정적이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를 졸업하고 영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며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했다. 그랬던 그의 인생에 스포츠가 들어선 것은 한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예능에서 조정을 보고 무작정 배우고 싶었던 이정민은 미사리 조정장을 찾아가 배우기 시작했고 그 길로 장애인 조정선수가 됐다.
조정선수로 활발히 활동하던 그는 조정 비시즌에도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노르딕스키를 배우고 패럴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날 경기에서 이정민은 사격에서 총 다섯 발을 놓쳤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는 동안 순위를 유지하며 좋은 경기를 펼쳤다. 10위권 안에 들겠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효율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를 마친 이정민은 “오늘은 속도를 내는 것보다 사격이 중요했어요. 사격이 네 번 있는데 놓치면 벌주가 있어서 중간중간 완급을 조절해 사격을 잘 맞추는 게 관건이었어요. 내가 노련하지 못해 경기를 잘 풀지 못했지만요.” 경험을 쌓으면서 하나씩 끌어올리는 게 이 스포츠의 묘미”라고 소감을 밝혔다.
▶ 2 신의현이 바이애슬론 남자 12.5㎞ 좌식 경기에서 역주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3 3월 14일 정선알파인센터에서 열린 알파인스키 남자 회전 시각장애 경기에서 가이드 러너 유재형(앞)이 황민규를 인솔하다 피니시라인 부근에서 넘어지자 황민규가 달려가고 있다. ⓒ연합
메달 기대주 신의현은 뛰어난 주행능력이 돋보였다. 신의현이 객석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유독 열심히 플래카드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그의 가족이었다. 온 가족이 목이 터져라 신의현의 이름을 외쳤다. 그 소리를 들은 건지 스키폴을 쥔 손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 쭉쭉 뻗어가는 신의현의 스키 플레이트는 사격에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격구간에서 1~4발을 모두 명중했지만 마지막 한 발을 놓쳤다. 두 번째 사격구간에서는 앞선 실수가 생각이 났는지 다소 주춤거리더니 1~2발을 놓쳤다. 세 번째는 적중시켰다가 다시 네 번째, 다섯 번째 탄을 놓치면서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벌칙주로를 일곱 바퀴나 뛰고도 5위를 기록했다. 사격에서 실수를 줄였다면 충분히 메달을 노리고도 남을 성적이라 더 아쉬웠다. 피시니 라인에 들어선 신의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눈이 녹아서 경기가 쉽지 않았지만 선수들 모두 같은 조건이라 그냥 제 실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들어가서 더 반성하고 남은 경기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 어린이 관중들이 선수들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C영상미디어
이날 경기장에는 바이애슬론에 출전한 선수들 외에 또 다른 선수가 있었다. 바로 객석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객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관객을 꼽자면 강릉에서 온 초등학생들이었다. 목이 터져라 “한국 파이팅!!!”을 외치는 아이들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한국 선수들 파이팅!’, ‘선수들 엄지 척’이라 적힌 플래카드를 쉬지 않고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외국인들에게도 신선하게 비쳤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관람객은 아이들에게 카자흐스탄 국기가 새겨진 핀을 나눠주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같이 사진을 찍자는 외국인도 있었다. 경기장 안에서는 장애를 극복한 선수들의 투지가, 경기장 밖에서는 나이와 국적의 경계가 허물어진 뜻깊은 순간이었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