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사람이 먹을거리가 농사나 땅, 자연과 상관이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면, 그는 일종의 문화적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 자연식 열풍을 가져온 배우이자 자연식 운동가 문숙 씨의 말이다. 자연식은 먼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자연식에서 흔히 말하는 ‘매크로바이오틱’은 ‘macro(큰)’와 ‘bio(생명)’, ‘tic(방법)’의 합성어다. 생명의 개념을 인간으로 한정짓지 않고 자연까지 넓힌다. 즉 모든 재료는 ‘완전한 하나의 피조물’이다. 때문에 모든 재료를 통째로 먹는다. 예를 들어 무는 뿌리만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무 잎에 포함된 칼슘은 뿌리의 네 배에 가깝다. 감자는 껍질에 알맹이의 네 배가 넘는 미네랄이 들어 있고, 사과의 껍질에는 과육보다 항암 효과가 높은 베타카로틴이 22% 많다.
또 자연식은 유기농을 기본으로 한다. 인공 조미료나 인공 감미료, 인공 색소를 쓰지 않아야 하고 공장식 농장에서 나온 생산품도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유전자 조작이 된 GMO 식품은 주의해야 한다. GMO 작물 제초제에 포함된 글리포세이트 성분은 WHO가 지정한 발암물질이다.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식용 GMO 곡물 수입국이다. 옥수수의 50%, 콩의 75%가 수입된다. 간장, 된장, 식용유 등에 이 곡물이 쓰인다. GMO가 들어간 음식을 피하려면, 유기농 제품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식단과 조리법에도 ‘자연스러움’이 필수다. 식단에서 중요한 건 밸런스인데, 산성과 알칼리성의 밸런스, 영양소의 밸런스, 또 신맛·짠맛·쓴맛·매운맛·단맛의 밸런스도 포함된다. 조리법에서는 끓이기, 굽기, 볶기, 데치기, 찌기 등의 균형을 본다. 조리법을 골고루 사용하는 게 좋지만 소화기관이 약한 노약자나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에는 긴 시간 푹 익힌 음식이 좋다. 몸의 기운과 자연의 리듬이 맞춰져야 한다.
자연식 단계는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해주는 ‘자연건강식’, 몸에 이상이 생겼거나 의학 치료를 받고 난 뒤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자연치유식’, 마음을 맑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켜 수행과 의식 향상에 도움을 주는 ‘젠푸드’ 등이다.
자연건강식
자연건강식의 기본은 기운을 맞추는 것이다. 음과 양의 조화를 맞추고 오행에 해당하는 각종 식재를 섭취한다. 몸은 자연스럽게 기운의 밸런스를 맞추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강한 수축의 기운을 지닌 짠 음식이나 육류를 먹으면 팽창의 기운을 지닌 단 음식이나 와인, 술 등을 찾게 된다. 이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단 음식을 계속 먹고 싶어 하는 중독 증상이 있다면 ‘끊어야지’라고 다짐하기보다는 팽창의 기운 반대쪽인 수축 기운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극팽창 기운을 가진 식품에는 약, 가공식품, 술, 설탕, 우유, 아이스크림, 빵, 흰 쌀밥, 흰 밀가루, 열대성 과일 등이 있다. 극수축의 기운을 가진 식품은 흰 소금, 육류, 달걀, 치즈 등이다. 때문에 양 극단의 음식보다는 중도 기운의 음식으로 몸의 평화를 찾는 게 자연건강식의 기본이다. 중도 기운의 음식에는 현미, 통곡물, 콩, 뿌리채소, 제철 과일, 해조류, 견과류가 있다.
자연건강식의 기본, 현미밥 짓기
1 현미 80%, 현미찹쌀 20%의 비율이 알맞다.
2 통곡물은 소화, 분해가 쉽지 않으므로 하루 정도 불리고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는다.
3 다시마 한 조각을 넣거나 소금을 약간 넣으면 쌀의 성분을 알칼리화하고 소화를 돕는다.
4 생강을 한두 조각 넣으면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도 쉽게 소화할 수 있다.
5 압력밥솥을 이용해 45분에서 1시간 정도 서서히 익힌다.
6 밥이 다 된 뒤에도 10~15분 정도 기운이 가라앉을 때까지 놓아두었다가 뚜껑을 연다.
자연치유식
자연치유식은 자연건강식을 기본으로 한다. 치유식은 해독식으로 시작한다. 현대인들은 공기부터 생활환경, 먹거리 등 많은 독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먼저 독을 빼내는 절차가 필요하다. 우리 몸은 자체적으로 몸의 독소를 배설하는 기능이 있지만 이를 활성화하는 게 먹거리다. 몸 안에 독소가 흡수되는 걸 최소로 하면서 해독기능을 높이는 음식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의 매크로바이오틱 전문가이자 <유카의 해독요리>를 펴낸 이와사키 유카는 해독식을 통해 아토피성 피부염을 치료했다고 말한다. 그는 오염된 미각은 ‘맛이 더해지거나 맛이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느낀다고 지적한다. 첨가물과 화학조미료,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져서다. 진짜 ‘맛이 있는’ 음식은 재료가 가진 원형 그대로의 풍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치유식의 기본은 채식 위주로, 양념을 적게 하며, 담백한 저염식에 설탕을 넣지 않은 음식이어야 한다.
혈관 해독음식, 양파단호박수프
1 유기농 단호박과 고구마, 양파를 준비한다.
2 단호박을 깨끗이 씻어 살짝 익힌 뒤 꼭지를 자르고 반으로 잘라 호박씨를 긁어낸다.
3 단호박과 고구마, 양파를 잘게 썬다.
4 프라이팬에 양파와 코코넛오일을 넣고 볶다가 양파 색이 투명해지면 단호박과 고구마를 넣고 볶는다. 볶으면서 죽염소금으로 간한다.
5 채소가 익으면 물을 자작하게 부어준다.
6 중불에서 20분 정도 익힌 후 핸드믹서로 갈아준다.
7 파슬리와 후춧가루를 뿌린다. 기호에 따라 올리브유를 넣어도 좋다.
젠푸드
젠푸드는 깨달음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음식이다. 중추신경과 마음을 안정시켜주기 때문에 사찰이나 수도원에서 먹는 음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운은 높지만 소화하기는 쉽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으로 구성된다. 때문에 젠푸드에는 육식이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음식 만드는 과정 자체를 또 하나의 수행으로 여긴다.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식재료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여법(如法)이란, ‘바른 도리에 들어맞다’는 뜻인데 이는 음식에도 통한다. 때문에 음식을 먹기 전에,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자연의 수고와 농부의 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다. 채소의 경우 파나 마늘처럼 향이 지나친 오신채도 되도록 쓰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 때도 버려지는 건 최소화한다. 표고버섯 밑동은 모아뒀다가 졸여 먹거나 국물을 낸다. 바람이 든 언 무도 말렸다가 ‘언무구이’라는 별식을 해먹는다.
집에서 해먹는 사찰음식, 팽이버섯삼색밀쌈
1 팽이버섯은 흐르는 물에 씻어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은 후 밑동을 자른다.
2 무순은 깨끗이 씻는다.
3 백년초와 치자는 잘 씻어 반으로 가른 후 각각 믹서에 물 1/2컵을 넣고 곱게 갈아 체에 걸러 즙을 받는다.
4 통밀가루는 3등분으로 나눠 각각의 즙과 함께 고루 섞은 후 체에 거른다.
5 약한 불에 팬을 달군 후 기름을 약간 두르고 얇은 종이로 기름을 살짝 닦아낸다. 기름을 많이 두르고 부치면 속재료를 넣었을 때 잘 말리지 않는다.
6 팬에 반죽을 떠놓고 수저 뒷부분으로 원을 그리듯이 펴며 밀전병을 부친다.
7 완성된 밀전병에 팽이버섯과 무순을 넣고 말아 양념장과 함께 낸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