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도심의 뒷골목인 후통은 민초들의 민낯을 그대로 간직한 채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 있다.
두 아이가 공을 찬다. 좁은 골목이다. 낡은 축구공은 골목길 양쪽 벽을 번갈아 부딪치며 두 아이 사이를 오고 간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이 한 발로 중심을 잡고 다른 한 발로 공을 차는 행위는, 네 발로 걷는 동물의 눈으로 보면 아마 기적 같은 일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한 발로 공을 찬다. 공을 차며 연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무엇이 아이들을 웃게 하는 것일까? 한 아이의 여동생은 함께 공은 차지 못하고 골목길 한쪽의 전봇대 뒤에 수줍게 서 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어린아이들이 저녁 무렵 골목길에서 마주 보고 공을 차며 노는 것을….
▶다스라 후통의 담벼락에는 예술적 그림도 품위있게 그려져 있다.
5월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도심에 위치한 뒷골목에서 두 아이가 공을 차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련한 기억이다. 세 살 차이의 형제는 용돈을 모았다. 자식이 많은 가난한 집안. 가끔 취직한 누님들이 슬쩍슬쩍 부모님 몰래 주는 용돈 정도였다. 청계천에 있던 중고 물품 파는 곳에 갔다. 당시 개발되기 전 청계천에는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고물상이 많았다. 모은 용돈으로 간신히 낡은 야구 글러브 한 개를 샀다. 오래되어 너덜너덜했지만 공을 받기엔 무리가 없었다. 형제는 날아갈 듯 기뻤다. 동네 골목에 마주 섰다. 그리고 야구공을 주고받았다. 야구 글러브가 한 개여서 형제는 번갈아 글러브를 손에 끼며 캐치볼을 했다. 미래 야구선수를 꿈꾸지는 않았지만 형제가 간직한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후통의 다양한 대문 장식
학원 다니기도 빠듯한 지금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저녁 무렵 골목길에서 공을 차지 않는다. 그 시간에 노는 아이들이 없을 뿐 아니라 공을 차고 놀 수 있는 좁은 골목도 없다.
물론 베이징의 아이들도 사교육 열풍에 잘 놀지 못한다. 그래서 베이징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정겹게 다가온다.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골목길에 퍼질러 앉아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아이들은 더 신난 듯했다.
▶후통의 다양한 대문 장식
골목마다 입구엔 유래 밝힌 설명문
베이징의 골목길을 살펴보기로 작정하고 비행기를 탔다. 20여 년 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겪은 생소한 경험이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공간 이동을 이끌었다. 그것은 바로 베이징의 좁은 골목길이었다. 당시 취재를 위해 베이징 시내를 걷다가 길을 잘못 찾아 들어간 골목은 미로였다. 그것도 아주 좁은 미로였다. 어떤 골목길은 몸을 옆으로 틀고 가야 할 만큼 좁았다. 대도시 베이징의 뒷골목이다. 특별히 그 골목길에는 별명이 붙어 있다. 후통(胡同)이라고 부른다. 일반 민초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거리다. 베이징에 사는 인민들의 일상적 삶이 지속적으로 유지된 공간이다. 베이징의 원형을 간직한 옛 골목인 셈이다. 원나라 시절부터 청나라 말엽까지 길게는 800년, 짧게는 15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후통의 담장 너머에 민초들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다.
후통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선, 발음이 ‘hottong’인 몽골어가 우물이라는 뜻이고, 우물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후통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당시 독특한 베이징의 골목길을 경험하곤 언젠가는 ‘베이징의 후통’을 차분히 즐기리라 다짐했다.
▶후통 근처의 베이징 오리전문점에서 시민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베이징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톈안먼 광장 남쪽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골동품으로 유명한 류리창과 이어진 베이징의 가장 큰 후통 지역인 ‘다스라(大柵?) 후통’에 스며들었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로 방범과 방화를 위해 큰 목책(木柵)을 세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골목마다 후통의 이름을 설명하는 설명문이 입구에 붙어 있다. 남화선(南火扇) 후통은 한때 도자기를 굽는 류리창에 장작을 공급하던 집이 많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대부분의 집에 베이징 시민이 산다. 대문에는 행복을 기원하는 복(福)자를 쓴 붉은 종이가 크게 붙어 있다. 빨래가 걸려 있고, 생활 쓰레기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붕의 기와에는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이끼가 남아 있다.
골목길 입구의 잡화점 앞에는 노인들이 앉아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유리창 안쪽에는 할머니가 어린 손주에게 정성껏 맛있는 밥을 먹인다.
▶저녁 무렵 후통의 모습
1702년 문 연 약국, 수백년 된 건물 원형 그대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며 이곳의 상당 부분 후통이 사라졌다. 도시 정화라는 명목으로 강제 철거된 것이다.
▶난뤄구샹에는 매일 엄청난 수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한족이 몽골족의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명나라 시기에 베이징에는 모두 400여 곳의 후통이 있었고, 명나라를 이은 청나라 때는 1000여 곳의 후통이 존재했다고 한다. 중국의 개혁개방 직후인 1980년대에는 3600여 곳까지 늘었으나 중국 정부는 2008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후통을 흉물로 여겨 대대적인 정리 작업을 펼쳤다. 후통은 이제 1000여 곳만 남아 있다. 후통에 있던 옛 주거지가 낙후했고, 공동 화장실 등의 전근대적인 생활시설은 현대화 바람을 타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 후통의 소멸에 제동을 건 이가 바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 주석은 아버지가 공산당 혁명 원로로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최초의 국가 지도자다. 시 주석의 이름인 근평(近平)도 예전엔 베이핑(北平)이라고 불렸던 베이징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는 2014년 베이징의 후통을 돌아보면서 개발보다는 보존을 지시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삶을 아끼듯이 역사 문화유산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런 발언 이후 일방적인 후통 철거는 중단됐다. 베이징시 정부는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하며 보존하고 있다. 수백 년 된 골목과 건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거쳐 카페, 레스토랑, 부티크, 골동품점, 게스트 하우스 등으로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다스라 후통 골목에서 어린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고 있다.
다스란 후통 근처에는 유명한 베이징 오리구이 전문점인 취안취더(全聚德)와 유명한 약국 퉁런탕(同仁堂) 등이 있다. 한국인들이 베이징 가면 꼭 들러 편자환 등을 샀던 퉁런탕은 1702년 개업했으니, 이 동네의 골목길은 그야말로 베이징 일반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다스라 후통에 새겨진 예술적 부조
호젓한 옛 골목길 정취는 이젠 옛말
다음 날 후통의 탐색은 톈안먼 광장 북쪽에 위치한 우다오잉(五道營) 후통으로 이어졌다. 이곳은 서울로 치면 북촌 한옥마을에 비유할 수 있다. 주로 명나라 시절부터 조성된 골목으로 고급스러운 집들이 많다.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좁은 골목이지만 주말에는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웨딩 촬영을 하는 신혼부부,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로 붐빈다. 담장 너머 집 마당에서는 동네 노인들이 마작에 열중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통가옥에 창문과 간판만 새로 단 것 같은 카페에서는 향긋한 차향이 새어 나온다.
▶저녁 무렵 후통의 입구에서 노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지막으로 간 후통은 난뤄구샹(南?鼓巷). 가장 번화하고 현대식으로 상업화된 후통이다. 베이징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가장 크며, 관광객도 가장 많은 후통이다. 베이징에서 골목길 관광을 활짝 연 후통이기도 하다. 800년 전 원나라 시절에 조성된 원대의 건축양식을 구경할 수 있고,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평일에도 발걸음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이 붐빈다.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들어선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리다 보니 먹고 즐기는 지역으로 변했다. 호젓한 옛 골목길의 정취를 맛보려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는 것이 좋을 듯했다.
▶후통에서 보이는 집안의 모습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베이징의 후통은 언제까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옛길이 개발 광풍 속에서 사라진 서울에 비하면 베이징의 뒷골목은 아직도 정겹게 존재한다. 베이징 민초들의 민낯을 그나마 유지한 채….
글 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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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