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남북은 6월 1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고위급회담을 열고 장성급 군사회담, 체육회담, 적십자회담 등 각 분야 회담 개최 일정 등을 담은 공동보도문에 합의했다. 이는 판문점 선언이 본격적인 이행 단계로 진입함과 동시에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의 바탕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북은 이날 공동보도문을 통해 “남북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히 열어나가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남북은 6월 14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할 장성급 군사회담을 개최한다. 판문점 선언에는 5월 중 군사회담을 열기로 명시돼 있으나, 고위급회담이 한 차례 연기되면서 불가피하게 6월로 미뤄졌다. 나흘 뒤인 18일에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체육회담이 열린다. 남북통일농구대회 일정과 2018 아시아경기대회 공동 참가를 비롯해 체육 분야 교류협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앞서 우리 측이 남북 체육회담 개최를 제의했고, 북측은 아시아경기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체육회담을 조속히 개최하는 데 동의했다.
6월 중 각 분야 회담 속도전
이산가족, 친척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적십자회담은 6월 22일 금강산에서 진행된다. 북측은 8·15를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준비 일정 등을 감안해 그동안 여러 차례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 금강산을 적십자회담 장소로 하자는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간 후속회담이 연이어 진행되는 중간에 6·15 남북공동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양측은 6·15 공동선언 발표 18주년을 의의 있게 기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문서교환 형태로 협의하기로 했다. 6·15 공동행사는 2008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돼, 이번에 성사된다면 10년 만이다. 언제, 어디서, 어느 규모로 치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측은 6·15 공동행사가 정부·정당·민간단체·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참여 아래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반면 북측은 당국·민간·정당·사회단체·의회 등의 참여를 바탕으로 남측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6월 1일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공동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뉴시스
남북은 산림협력과 철도·도로 교통망 연결 등의 문제도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한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 문제를 협의하는 도로협력분과회의, 산림협력분과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다만 그 날짜와 장소는 향후 문서교환으로 확정짓는다. 올가을 북측 예술단의 남측 지역 공연과 관련해서도 실무회담을 통해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또 남북은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에 개설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실무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양측은 4·27 정상회담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번에는 그 장소를 더욱 구체화했다. 무엇보다 공동연락사무소 개소는 남북관계 제도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통일부 측은 “공동연락사무소는 당국자들이 상주하면서 상시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며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에 획기적인 조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측은 개성공단 내 시설이 상당 기간 사용되지 않아 개보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필요한 사전 준비를 거쳐 최대한 빠르게 개소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우리 측 사전점검단은 6월 15일 이전에 방북해 본사무소 개소 이전에 임시사무소를 개소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남북은 이 같은 판문점 선언 이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기 위한 고위급회담을 정례적으로 여는 것도 합의했다.
북미 대화 기대감도 상승
한편 남북 대화에 순풍이 이어지면서 북미 대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북미정상회담이 당초 예정됐던 6월 12일 오전 10시(한국 시간)에 열린다. 장소는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 일정과 회담장까지 확정되면서 6·12 북미정상회담은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취소를 선언한 이후 위기를 맞았던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본궤도에 오른 셈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북미정상회담은 이전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북미정상회담 공식 일정을 밝히며 ‘첫 회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회담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 번에 해결하고 싶지만 협상이란 게 때때로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며 이후 회담 개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현지 언론도 그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6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에서 후속 회담 개최지로 마라라고 리조트를 제안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라라고는 ‘겨울 백악관’이라고도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리조트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의 회담이 진행된 적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외에도 지난 65년간 정전 상태인 한국전쟁에 대한 종전 문제도 논의하겠다고 밝혀, 남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지 그리고 그곳에서 종전선언이 나올 수 있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외교부에 따르면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비롯한 10명 규모 당국자들은 6·12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싱가포르에 파견될 예정이다. 외교부는 7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구체적인 회담 진행 방식이 발표되진 않았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외국 정상들과 해온 정상회담 관례 등에 비춰볼 때 이번 북미회담 또한 단독정상회담에서 확대정상회담 순서로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더불어 회담에서 논의될 핵심 의제에 대한 조율은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중심으로 막바지까지 진행될 전망이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