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시 외항로 ‘창원금속공업’ 개발팀 김진국 차장(왼쪽)과 이정권 본부장이 국산 인증부품 1호 싼타페(TM) 펜더를 들고 있다.
전북 군산
5월 16일 전라북도 군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 ‘시민과 함께하는 자립도시 군산’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2018년 한국지엠(GM) 군산공장 폐쇄 등 군산 산업은 위기를 맞았지만 최근 곳곳에서 희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자립도시 군산’이라는 표현처럼 다시금 일어서는 군산 산업·경제 현장을 살펴봤다.
번화가로 손꼽히는 군산 수송로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군산국가산업단지(이하 단지)로 향하자 기계만 덩그러니 남은 공장들이 보였다. 2018년 5월 한국지엠이 폐쇄된 후 단지 주변 대다수 협력업체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근처 한 공업사 초입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확 띄었다. ‘4월 11일, 국산 인증부품 1호 싼타페(TM) 펜더 첫 출하!’ (주)창원금속공업(이하 창원금속)에 걸린 현수막이었다. 창원금속은 한국지엠 폐쇄 등으로 큰 위기를 맞은 군산 자동차업계에 ‘대체부품(인증품)’ 사업 영역을 해법으로 제시해 화제가 되고 있다.
1995년 설립한 창원금속은 한국지엠 1차 협력사로, 2018년 5월 한국지엠이 폐쇄되면서 여느 협력업체들처럼 직격타를 맞았다. 사업을 철수하기보단 그간 쌓아온 핵심 역량을 발휘해 새 사업 영역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이정권 본부장은 “어려운 시기에 이종선 대표가 힘든 결정을 했다”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중 우리가 가진 핵심 역량이 뭘까 생각해보니 유휴설비가 있고, 연구개발 전문인력이 있다는 점이 보였다”고 했다. 2018년 3월 전라북도 출연기관인 자동차융합기술원에서 열린 대체 인증부품 세미나에 참가하며 대체부품 분야로 방향 전환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북 군산시 외항로 ‘창원금속공업’ 초입에 걸린 현수막
중고차 수출단지와 연계 땐 시너지
대체부품이란 자동차 제조사에서 출고한 자동차에 장착된 부품과 성능·품질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부품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수입 자동차, 국산 자동차 할 것 없이 자동차 수리 시 고가의 OEM 부품만을 사용해 수리비와 보험비 증가로 소비자 부담이 가중돼왔고, 중소 부품업체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에서는 대체부품 인증제도가 매우 활성화돼 있다.
2015년 1월 대체부품 시장을 활성화해 소비자의 차량 수리비와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국내 부품산업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인증제도’가 도입됐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대체부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인증기관(한국자동차부품협회)이 대체부품을 심사해 성능·품질이 OEM 부품과 거의 유사함을 보증하는 제도다. 2017년 9월 국토교통부는 국내 완성차업체와 디자인 보호권 관련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자동차 수리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범퍼, 펜더 등 외장 부품에 설정된 완성차업계의 디자인권(보호기간 20년) 탓에 국내 부품업체들이 대체부품 생산을 주저해왔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도 움직였다. 인증품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소비자가 인증품을 선택해 수리하는 경우, OEM 부품 가격의 일정분(25%)을 현금으로 환급하는 보험상품(특약)을 2018년 2월 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창원금속은 대체부품 분야에 뛰어들어 국산차로는 최초로 현대 싼타페(TM) 모델의 전방 좌·우 펜더에 대한 인증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시험을 통해 기술력이 입증됐고, 품질 또한 OEM 부품과 비교할 때 동등함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후 창원금속은 국산차 제2호 자동차 인증품으로 현대 그랜저(IG) 펜더도 출시한 상황이다.
▶최근 새만금개발청과 전라북도는 새만금 부지에 건설 예정인 태양광 발전사업의 약 30%가 주민 이익 공유 사업으로 실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본부장은 “대체부품의 생산과 사용이 활성화하면, 자동차 수리비와 보험료가 줄어 소비자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부품업체는 독자적인 자기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1, 2, 3차 협력업체는 기존 설비와 연구개발 역량 등을 바탕으로 대체부품 시장에 더욱 효율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군산뿐 아니라 전라북도 내 자동차 부품 관련 업체의 매출 증가, 고용 창출도 기대해볼 수 있다. 금형, 가공, 도장 등 관련 산업과 생태계 구축으로 연관 산업의 성장도 가능해진다. 2022년까지 군산항 인근 임해 업무단지에 7만 평 규모로 조성할 예정인 중고차 수출 복합단지와 연계할 경우 시너지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부품협회 자료에 따르면 65조 원 규모(2014년 기준)의 북미 대체부품 시장의 99%를 대만 제품이 점유한 상황에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기회도 엿볼 수 있다.
군산 지역 자동차 관련 협력업체들은 대체부품 시장으로 함께 변화를 모색하려는 분위기다. 3월 28일에는 전라북도 내 ‘글로벌 자동차대체부품산업 협의회’도 출범했다.
전라북도는 5월 8일 “시장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도 추경에 13억 2000만 원을 확보, 총 사업비 16억 5000만 원을 투입해 인증대체 부품산업 육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지난 3월 26일 열린 (주)네모이엔지 새만금 군산공장 착공식 | 새만금개발청
새만금산단 잇단 공장 신설 허가
“어떻게 먹고사나 걱정하는 사람들 많더라고. 당장 어려움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려는 사람도 많아. 새만금의 경우가 그렇지.”
단지 근처 새만금개발청으로 향하는 길에 택시 기사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군산의 미래 희망으로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이하 재생에너지 사업)을 손꼽는 이들이 많다. 2018년 10월 30일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후 새만금개발청과 전라북도는 총 4차례 주민 설명회를 열었고, 재생에너지 사업 계획과 지역상생 방안 등의 의견 수렴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발족해 총 3차례 회의를 여는 등 사업 계획을 하나씩 추진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새만금 부지에 건설 예정인 태양광 발전사업의 약 30%가 주민 이익 공유 사업으로 실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만금개발청과 전라북도는 4월 30일 개최한 제3차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 민관협의회에서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의 지역상생 방안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민관협의회는 전체 2400MW 중 약 744MW(31%) 규모의 사업을 주민 이익 공유 사업으로 실시, 지역 주민이 채권 등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지역주도형 사업을 제외한 공사주도형, 계통연계형, 내부 개발 및 투자유치형 사업에서 지역 주민에게 제공되는 수익률은 7%로 정해졌다. 투자 기간은 15년 만기로 한다. 민관협의회는 “사업 미참여 주민과 피해 어민을 위한 복지형 정책 및 공익재단 기금 적립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하며, 기금의 규모와 방법은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역주도형 태양광 발전사업을 당초 계획한 300MW에서 500MW 규모로 대폭 확대하기로 한 점이 눈에 띈다. ‘지역주도형으로 배정된 300MW만으로는 지역 주민의 참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전라북도와 민측위원 등의 의견을 적극 수용한 결과다. 지역주도형 사업은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이 사업 주체와 주민참여 방식, 지역 기업 참여율 등을 자율 결정해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새만금개발공사가 추진하기로 했던 300MW 중 100MW는 산업 및 고용위기 지역인 군산에 양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사주도형 사업 규모는 300MW에서 200MW로, 내부 개발 및 투자유치형 사업은 1500MW에서 1400MW로 조정됐다. 계통연계형 300MW는 그대로 유지한다.
지역주도형 사업은 지역 주민과 지역 기업의 이익 공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말한다. 공사주도형은 새만금개발공사의 도시개발 재원 마련을 위한 사업이며, 계통연계형은 새만금에 대규모 전력망 구축을 위한 사업을, 내부 개발 및 투자유치형은 투자유치 등 새만금 개발 촉진을 위한 사업을 뜻한다. 내부 개발 및 투자유치형 1400MW의 사업 추진 방식은 추후 민관협의회에서 협의할 계획이다.
새만금산업단지에 (주)네모이엔지, ㈜레나인터내셔널 등 공장 건축이 허가됐다는 희소식도 들려온다. 새만금개발청 측은 “네모이엔지 300여 명, 레나인터내셔널 120여 명 고용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북 군산시 수송동 음식점 ‘샤브쌈주머니’에서 손님이 군산사랑 상품권으로 결제를 하고 있다.
발매 4개월만에 910억원 전액 판매
군산 지역 경제는 요즘 ‘군산사랑 상품권’(이하 상품권)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상품권이 지역주도형 경제활성화 사업 모델로 손꼽히며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을 할 정도다.
군산시청에서부터 번화가인 수송동으로 가는 길. 안경점, 옷 가게, 제과점 등 ‘군산사랑 상품권 가맹점’ 게시물이 없는 상점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후 1시경, 수송동 한 상가에 있는 음식점 ‘샤브쌈주머니’도 상품권 가맹점이었다. 가게는 빈자리 없이 손님들로 꽉 찼다. 결제하는 5팀 중 2팀꼴로 상품권을 내밀었다.
개업한 지 3년째. 대표 송은영(48) 씨는 “2018년이 가장 힘든 해였다”고 말했다. “현대조선소랑 한국지엠 사태 터지고 회식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졌죠. 그러다 10월부터 회복되더라고요. 월 매출 중 약 30%가 상품권입니다.”
▶‘군산사랑 상품권’ 가맹점을 확인 할 수 있는 앱 화면 캡쳐
군산시는 2018년 5월 고용위기지역 및 산업위기특별지역 지정에 따라 상품권 발행 지역으로 선정됐다.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사태 등으로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자 군산시의회에서는 지역자금 유출 방지 및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18년 4월 상품권 도입을 건의했다. 7월에는 상품권 관리 및 운영 조례도 제정했다. 지역 상품권 발행은 강임준 시장의 공약이기도 했다.
2018년 9월 3일 상품권 첫 발행 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발매 4개월 만에 910억 원 전액이 판매됐다. 군산시청 지역경제과 김윤희 주무관은 “상품권을 발행하는 다른 지역들은 보통 1년 발행 금액이 평균 50억 원이라는데 군산시는 지금도 하루 평균 20억, 30억씩 팔리고 있다”고 했다.
상품권은 5000원권, 1만 원권, 5만 원권 3종으로 군산시 관내 전북은행, 농협, 국민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5개 은행 75개 지점)에서 1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현재 가맹점 수 1만여 곳. 다른 지자체와 비교할 때 가맹점 수가 매우 많다는 게 상품권의 성공 이유 중 하나다. 지역자금 역외 유출을 방지하고, 선순환하자는 취지라 대형마트, 본점이 군산시 아닌 법인의 직영점 등은 제외했다. 김 주무관은 “상품권 제도가 잘 안착하려면 시민 입장에서 사기 편하고, 쓰기 편해야 한다. 특히 음식점, 학원, 주유소, 슈퍼마켓, 미용실 등 실생활과 밀접한 가맹점을 집중적으로 확보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아이 학원 보내는 가정의 경우, 월 50만 원을 학원비로 쓴다고 하면 5만 원이 절약되는 거죠. 1년으로 치면 60만 원입니다. 큰돈입니다. 익산, 전주로 출근하는 분들은 군산에서 주유하고 가시더라고요.”
만 19세 이상 군산 시민이 1개월 동안 사용한 현금과 상품권 현금영수증(주민등록상 주소지 가맹점 1개소와 가맹 음식점 1곳을 포함한 2개소 이상의 영수증, 5만 원, 10만 원, 20만 원)을 모아 읍·면·동 주민센터에 제출하면 상품권(5000원, 1만 원, 2만 원)으로 환급해주는 ‘주소지 골목상권 소비 지원 사업’ 등도 참여율이 높다.
상품권이 시민들 사이에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소상공인 매출이 올랐다. 군산시가 2018년 11월 군산사랑 상품권 가맹점 8400개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군산사랑 상품권 유통 이후 매출이 66.5% 올랐다고 응답했다. 상품권의 유례없는 성과에는 군산 시민의 노력도 영향을 미쳤다. 김 주무관은 “시민들이 SNS 등을 통해 ‘지역 경제가 어려우니 상품권 많이 쓰자’며 어떤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홍보 이벤트 등을 펼쳤다”고 했다.
군산/ 글·사진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