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필요하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심화, 내수 부진 장기화 등으로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내부의 동력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 남북경협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인구 구조, 자원 부족, 좁은 내수 시장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경협은 한반도 단일 경제권 형성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아시안하이웨이 등으로 교통·물류의 범위를 넓혀 경제권을 유라시아로 확대할 수도 있다. 또 동북아 슈퍼그리드, 남·북·러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사업 등 자원·에너지 분야의 리스크를 상쇄해 해외 직접투자와 노동력 유입 같은 외부 효과도 극대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남한 경제에는 중장기적 잠재성장률 상승을, 북한 경제에는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윈윈(win-win)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금강산·개성 협력, 군사분계선 북상 효과
남북경협은 성장의 모멘텀 외에도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장전항을 사용하던 북한의 동해 함대가 후방으로 약 100km 후퇴했다. 개성공단이 첫 삽을 뜰 때도 수도권을 겨냥한 장사정포 부대가 후방으로 약 10km 이동했다. 북한의 군부대가 후방으로 밀려나며 군사분계선이 북상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2008년 개성 관광은 연 10만 명, 금강산 관광은 연 40만 명의 관광객 시대를 목전에 두며 중단 전까지 누적 관광객 약 195만 6000명을 기록했다. 2004년 12월 첫 제품을 생산한 개성공단은 5만 3000여 명의 남북한 인력이 함께 생산 활동을 한 상생 경협의 실험장이었다.
그럼에도 남북경협 효과는 반감됐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대립 국면을 지속했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 군사 도발을 감행했다. 남한은 보수·진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협 정책의 부재로 추동력을 상실했다. 개성공단 운영은 지지부진을 면할 수 없었다. 개발 면적은 계획했던 2000만 평(66.12㎢) 대비 5% 수준인 100만 평(3.3㎢), 유치업체 수는 계획했던 2000개의 6%인 125개만 진행됐다. 남북이 처음 합의한 2단계(250만 평), 3단계(공장부지 800만 평+배후부지 1200만 평) 개발은 시작도 못했다. 결국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개성공단은 2016년 중단되며 남북 경제협력은 현재 전무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계속되던 북한의 군사 도발도 멈추지 않았다.
남북을 잇는 철도·도로 등 물류사업 역시 위기를 맞았다. 남북 철도·도로 사업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제1·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와 문산~개성 간 도로 건설에 합의하며 본격 착수했다. 철도 경의선은 문산~개성 간 27.3km, 동해선은 제진~금강산 간 25.5km 연결 사업이 완료돼 2007년 5월 시범운행을 실시했다. 그해 12월부터는 경의선 문산~봉동 간 매일 1회 12량의 화물열차가 정기 운행했으나 2008년 12월 중단됐다. 도로 경의선의 경우 통일대교 북단~개성 간 12.1km, 동해선의 경우 통일전망대~온정리 간 24.2km 연결 사업이 2004년 10월 완료됐다. 2004년 12월 경의선은 개성공단 물자, 남측 근로자 왕래에 이용됐으며 동해선은 금강산 육로 관광에 이용됐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에서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에 합의했지만 2008년 실무 협의를 끝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남북경협이 시작된 건 1988년 7·7선언을 계기로 북방정책이 추진되면서부터다. 그사이 남북관계는 수많은 굴곡을 거쳐 왔다. 꼭 30년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11년 만에 개최됐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을 채택하고 적극적인 이행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판문점에서는 연일 군사·철도·도로·산림 등의 분야의 실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 완화가 피부로 와 닿으며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신(新)남북경협의 시대가 눈앞에 있다.
남북경협 재개 기대감 고조
남북경협 30년을 맞이하는 현재, 몇 가지 고려사항을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 정상화를 모색해야 한다. 재개에 오히려 신중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정책적 결단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가해지는 국면에서 남북경협 재개는 고도의 정책 결정이 필요한 일이다. 북핵문제 해결이 진전되면 남북경협이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실현하고 이것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이바지한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남북경협으로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아래의 변화가 북한 사회에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상향식(bottom-up)’ 변화로 남북관계 정상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비핵화 진전 시 ‘남북기본협정’ 체결과 남북관계 제도화를 추진해 정책의 일관성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남북 간 합의가 필요하다. 남북경협 재개를 위해 공동경제발전을 위한 합의와 실천이 담보돼야 한다. 한반도 개발을 위해 ‘H 경제 벨트’ 조성 등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남북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공유로 경협 부문에서 남북 합의 도출은 어렵지 않게 추진 가능할 것이다.
넷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고려해야 한다. 향후 민생 분야에서 남북경협이 추진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경협 재개가 한반도 긴장 완화와 정세 안정을 견인하며 동북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설득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남북경협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단기적 성과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남북경협이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통일 공감대를 다져가는 다양한 토론과 소통의 장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정│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