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홍 위원장은 “올해 ‘혁신주도형 동반성장 모델’의 구축과 확산을 중점 과제로 채택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곽윤섭 기자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권기홍(70)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묵가 사상의 핵심인 ‘겸상애 교상리(兼相愛 交相利)’를 늘 마음에 새기고 일을 풀어간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고, 서로 다 함께 이롭게 하자는 뜻이다. 남을 아량 있고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인다는 뜻인 ‘포용’이나, 여럿이 공존하며 살아감을 이르는 ‘상생’도 권 위원장은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인다.
권기홍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포용국가위원회 고문을 맡아 겸애의 가치와 상생의 문화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했다. 그 밑그림을 그는 지난 1년여 동안 조심스럽게 채워오고 있다. 2018년 2월 동반위의 4대 위원장으로 취임하고 난 뒤부터다. 동반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율적 합의로 상생을 모색하는 민간기구다. 권 위원장은 포용국가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며,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조금 느리더라도 법과 제도로 강제하는 것보다 민간 자율합의 방식이 길게 보면 더 효과적이라는 게 권 위원장의 믿음이다.
동반위는 지난해 중점 업무과제를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에 두었다. 권 위원장은 “임금격차 해소 운동의 참여 범위와 유형을 넓히는 동시에 올해는 ‘혁신주도형 동반성장 모델’의 구축과 확산을 중점 과제로 채택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구로구 키콕스벤처타워에 마련된 동반위 사무실에서 지난 1월 15일 권기홍 위원장을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 주요 업무 구상을 들어봤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올해 국내외 경제 여건과 기업 환경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가 큰 것 같다. 동반위를 통해 모이는 의견도 분분할 것 같은데.
=외부 환경은 다들 좋지 않다고 말하고, 실제로 미·중 무역마찰 등의 여파로 악재가 많은 것 같다. 문제는 단기적인 시장 환경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적으로 커져 여력이 있는 대기업조차 투자를 꺼리면서 성장 잠재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다른 분야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대외 경쟁력을 키워 성장을 견인해왔지만 이제 이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인정한다. 기업 투자를 통한 낙수효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민간소비 기반을 강화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여러 가지 진통도 불가피하다.
▶지난 1월 15일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구로구 동반위 사무실에서 박순빈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곽윤섭 기자
기존 주력산업 혁신이 근본 해법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추진해온 정책들의 효과가 가시화하면서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 여건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정책들이 한꺼번에 시행되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고용지표가 나빠진다든지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부담이 커진 데는 정부 정책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 정책을 미리 정밀하게 세워놓고 시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부작용을 오로지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고용 부진이나 자영업 위기의 보다 큰 원인을 짚어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의 부진을 들 수 있다. 그 충격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보다 더 크다. 따라서 기존 주력산업의 혁신이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해법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부작용만 부각되었는데 올해부터는 순기능도 서서히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노동 소득의 향상, 근로장려세제(EITC)의 대폭 확대 등의 효과로 소비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혁신적 포용성장도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지난해 동반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운동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다. 기업 간 자율 협의체인 동반위에서 노동시장의 현안까지 다루는 게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금격차 해소 7조 6310억 지원 협약
=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새로 구성된 동반위 회의에서 ‘임금격차 해소 원년’을 선언하고 민간기업 차원의 격차 해소 운동 전개를 중점 사업으로 의결했다. 임금 수준은 노사관계의 문제이지만, 기업 간 임금격차는 기업 관계의 문제다. 청년 취업난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중소기업에서 만성적인 인력난을 호소하는 현상은 왜 벌어지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임금격차의 심화 때문이다. 임금과 복지 수준이 대기업과 비교하면 너무 낮으니까 인재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경쟁력과 임금 지불 능력이 계속 떨어져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전체 산업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생존 기반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동반위 위원사로 참여하는 대기업 쪽도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임금격차 해소 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운동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는지, 실제로 임금격차를 줄이는 효과를 얻었는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견기업, 공기업 등 21개사가 임금격차 해소 운동에 참여해 앞으로 3년 동안 협력기업에 모두 7조 6310억 원 규모를 지원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른 지원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협력기업 근로자의 임금 및 복리후생 증진 지원, 둘째 협력기업의 전반적 임금 지급능력 제고 지원, 셋째 협력기업의 경영 안정을 위한 금융지원 등이다. 이런 지원으로 실제 임금격차가 줄어들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임금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하고 공생의 길을 찾는 문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의미는 크다. 앞으로는 참여 기업의 범위를 더 넓히고 협약 유형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곽윤섭 기자
자동차·반도체·조선부터 플랫폼 모델 구축
-임금격차 해소 운동을 전개하면서 ‘혁신주도형 동반성장 모델’과 연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어떤 구상인가?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대·중소기업 협업을 혁신 활동으로 발전시켜보자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은 신산업 분야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보다 기존 산업에서 기업 간 거래관계나 협업체계를 개선해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하다. 이런 혁신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평적인 지위에서 참여하는 플랫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해 생산성 향상 등을 위한 혁신 활동을 해보자는 것이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주요 업종에서부터 플랫폼 모델을 만들어 성과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혁신의 성과가 적절히 배분되어야 할 텐데 지금처럼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갑·을’ 관계에서 공평한 배분이 보장될 수 있나?
=2012년부터 도입된 성과공유제의 방식을 차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기준으로 협력업체와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기업이 396곳이고, 세제 혜택의 적격 대상으로 확인된 과제만 5937건에 이른다. 그런데 현행 성과공유제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원가절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의 지원과 중소기업의 노력으로 납품 원가를 줄이는 데 따른 성과를 나누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원가절감 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이 협력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높인다면, 현행 성과공유제처럼 사전에 약정한 배분 방식에 따라 성과를 나눌 수 있다. 이런 게 바로 개방형 혁신을 통한 동반성장 모델이다.
생계형-중소기업 적합업종 조화해야
-올해부터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본격 시행돼 관심이 많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운영하는 동반위가 생계형 업종 등록신청 접수와 시장 실태조사, 이해당사자 의견 수렴, 추천 기능까지 맡게 됐는데, 법적 효력이 전혀 다른 두 가지 제도를 병행하면서 혼란은 없나?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이 지난해 12월 13일부터 시행되었다. 시행 직후 중소벤처기업부와 공동 설명회를 열었고, 올해 들어서는 1월부터 업종별 상담회를 구성해 소상공인 단체가 적합업종을 신청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하고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특별법에 따라 중기부 장관이 최종 지정하며 법 위반에 대한 징벌도 뒤따른다. 반면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민간 자율합의로 지정해 권고만 하는 등 지정 절차나 운영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영세한 중소상공인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고자 하는 도입 목적은 같다. 특별법에서 신청 대상 요건을, 중소기업 적합업종 기한 만료 또는 만료 예정이거나,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신청된 업종·품목 가운데 보호가 시급한 업종·품목으로 제한해뒀다. 따라서 두 제도는 서로 병행해 운영할 수밖에 없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라는 새로운 규제와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자율 합의라는 특수성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박순빈 기자
▶대·중소기업 대표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동반성장위원회 회의 모습 | 동반성장위원회
동반성장위원회란… 2010년 출범 민간자율 기구
대·중소기업 간 갈등 요인을 발굴하고 논의해 민간 부문의 합의를 도출하고 동반성장 문화 확산을 위해 2010년 출범한 민간 자율기구다. 2010년 9월 열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회의’에서 동반성장 추진 대책의 하나로 동반성장위원회 구성 및 운영을 결정하고, 그해 12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따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위원회를 설치했다. 주요 업무는 대기업에 대한 동반성장지수 산정 및 공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합의 도출과 운영이다.
본 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주요 업종의 대기업 대표 8명, 중견기업 대표 2명, 중소기업 대표 10명, 공익 대표 9명 등 모두 30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적합업종 선정위원회와 동반성장지수 평가위원회, 그리고 업종별로 13개 실무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하고 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초대 위원장을 맡았으며 2대는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 3대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를 거쳐 2018년 2월부터 권기홍 위원장이 동반위를 이끌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낸 권기홍 위원장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남대와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와 단국대 총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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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