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이산가족찾기 방송. 김동건 아나운서(왼쪽)가 신은경 아나운서와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동건
4월 말이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다. 남북 간 해빙 소식은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이산가족들에게는 봄꽃 소식보다 더 반갑다. 이산가족 상봉 이야기만 나오면 나의 머릿속 시곗바늘은 35년 전으로 돌아간다.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 총 453시간 45분 동안 방송했던 프로그램, KBS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 말이다.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 생방송으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이 큐 사인과 함께 전파를 탔다. KBS 본관 공개홀의 메인 스튜디오에는 ‘스튜디오 830’의 콤비 진행자인 유철종 MC·이지연 아나운서, 공개홀 객석에는 이산가족 출연자들이 자리 잡았다.
애초에 세 시간가량 방송하려고 했던 이 프로그램은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사람들이 KBS로 몰려들면서 모든 정규 방송을 취소하고 5일 동안 이산가족찾기 특별방송을 진행했다.
진행 절차는 간단했다. 우선 공개홀에 입장한 이산가족들이 자신의 신상 명세를 적은 ‘메모판’을 가슴에 들고 서면 아나운서가 그 내용을 낭독해주는 것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생사조차 모르던 혈육을 다시 만난 그 벅찬 반가움과 헤어져 살던 서러움이 한데 뒤엉켜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감동적인 장면…. 그것은 어느 드라마의 극적 장면보다도 진했다.
138일간의 방송 기간 동안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혈육들이 눈물로 재회하고 서로 얼싸안고 울부짖는 장면은 분단된 한민족의 아픔을 치유해줬다.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은 1985년 9월 남북이산가족 최초 상봉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당시 실무 접촉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이종률 북한적십자사 대표와 이영덕 대한적십자사 수석대표(총리 역임)에게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이 빼곡히 들어찬 KBS ‘통곡의 벽’을 안내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고향이 황해도 사리원인 실향민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이산가족이 말을 못 이으면 엄청 자세하게 물어보았던 기억도 난다. 평양 서문여고를 1등으로 졸업한 우리 어머니…. 사업가인 아버지와 결혼하면서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사리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내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내 딸보다 어린 20대의 모습 그대로 내 사진첩에 남아 있다.
내가 1985년부터 무려 33년간 진행하는 ‘가요무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제가 ‘고향’과 ‘어머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따스한 단어다. 어머니 무덤에 가서 풀이라도 뽑고 마음껏 울어보는 게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그 어머니가 아직도 내 꿈에 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다. 77년을 어머니 없이 살았는데, 여든 살이 된 지금에 와서 왜 점점 더 어머니가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6만 명의 이산가족들은 가끔 베개가 젖도록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남과 북의 위정자들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그만두고 진정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 IT 강국 남쪽이 주도해 ‘화상통화’로 북쪽 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다. 독일어로 ‘자유를 산다’는 뜻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 방식으로 1963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서독은 동독에 억류된 반체제 인사 3만 3755명을 송환시키지 않았는가.
1985년 9월 22일 이산가족 고향 방문 및 예술공연단 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한 홍성철 당시 국토통일원 장관이 누이와 헤어지면서 “누님, 지금 헤어지면 우린 살아생전에 다시 만날 수 없을 겁니다. 대보름 때마다 저녁 7시면 달을 보고 누님을 생각할게요. 누님도 달을 보고 내 생각을 해주세요”라고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요즘 고향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사리원 냉면집에 통 가지 않는다. 공연한 고향 생각에 마음만 천근만근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동건│전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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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