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고용의 새 지표를 제시하는 기업이 있다. 에버영코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언제나 젊은 한국’이라는 회사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니어의 사회적 역할 확산 기반을 마련하는 게 에버영코리아의 비전이다. 이곳에서 근무 중인 권선옥 씨를 만났다.
ⓒ조선DB
지난 8월 2일 경기도 소재 에버영코리아(EVER YOUNG KOREA) 성남센터에 들어서자 수십 대의 컴퓨터가 일렬로 배치된 공간이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무실 풍경이라지만 조금 다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는 이들 모두 시니어라는 점이다.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 공무원 생활을 접고 전업주부로만 살았어요. 40년 넘게 주부로 지내다가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이곳에서 또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권선옥(72) 씨가 웃으며 입을 뗐다. 3년 전 입사한 권 씨는 줄곧 네이버 지도 블러링 업무를 맡고 있다. 블러링은 네이버가 촬영한 거리뷰 사진에서 개인 정보와 연관된 부분을 지우는 일이다.
에버영코리아 근로자들의 주요 업무는 권 씨가 맡은 역할을 비롯해 온라인 게시판에 욕설은 없는지 허위·과장 정보가 게재되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연령대는 55~84세. IT 기업 이미지와는 이질감마저 들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권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고용시장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길잡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설립된 지 4년 차에 접어든 에버영코리아는 은평·성남·춘천 센터 3곳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총 438명이 근무 중이다. 성별·경력과 관계없이 55~84세면 누구든지 서류 지원이 가능하고 심사를 거친 뒤 입사할 수 있다.
권 씨는 동네 고령친화체험관에서 취미생활을 하던 중 에버영코리아 채용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자녀들은 ‘고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려감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뒤로는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고.
며칠 전에는 손녀딸이 회사 앞까지 찾아와 “할머니가 자랑스럽다”고 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전부터 컴퓨터로 정보를 검색하거나 게임을 해봐선지 입사 후 두 달간 교육을 받으면 업무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더라고요. 교육 난이도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어요.”
회사 측은 처음부터 시니어들의 IT 업무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건 아니다. 회사 설립에 앞서 송파 시니어 클럽 소속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네이버 지도 블러링을 진행했는데, 생각 이상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결과는 시니어도 근로자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졌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에 은평센터를 필두로 에버영코리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에버영코리아 성남센터 직원들이 오전 근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DB
업무 성격부터 근무 환경까지 에버영코리아의 운영 방식 자체가 시니어 중심이다. 센터마다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인 근무 시간은 하루 네 시간이다. 컴퓨터 모니터를 봐야 하는 작업인 만큼 근로자들은 회사가 지정한 안과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다. 팀별 회식비와 경조사비, 동료 생일을 챙길 수 있는 소정의 금액도 지원된다.
센터 내부에 마련된 혈압 측정기에 눈길이 향했다. 그러자 권 씨는 “시니어들은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못하다고 느끼면 혈압부터 잰다”며 “아주 유용한 기기”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던 중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자 근무자들이 휴게실로 쏟아져 나왔다. 50분 근무한 뒤 갖는 10분의 휴식 시간이었다. 시니어들은 휴대폰을 확인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권 씨는 “이곳에서 느끼는 행복은 여기서 일하는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동료들이 퇴직 이후 느꼈던 고독감을 센터에서 일하며 모두 내던지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이 센터에서 지내는 생활이 본인에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시간을 쪼개 근무하고 새 경험으로 삶을 채움으로써 자신감을 얻었다는 이유에서다.
그에게 에버영코리아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하자,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답이 돌아왔다.
“시니어들의 정원. 제가 지금 여기 입사하려고 한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몰라요. 경쟁률이 꾸준히 올라 지금은 평균 20대 1이라고 들었어요. 할 수 있다면 가능할 때까지 일하고 싶어요.”
권 씨가 건넨 명함 뒷면을 보니 그가, 그리고 에버영코리아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듯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