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많이 탄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게다가 이런 얘기를 하면 믿지 않는 눈치들이지만, 우리 어릴 적엔 더 추웠다. 요즘 추위는 옛날 추위에 댈 게 아니라는 말이 가끔은 입술을 달싹이게 하지만, ‘옛날 사람’ 소리 안 들으려고 꾹 참을 뿐이다.
초등학교도 하필 시골에서 나왔다. 아버지가 장만한 첫 번째 집은 언덕바지 고지대 마을이었다. 처음 새집에 들어가던 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며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몇 번이나 멈춰 섰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지형을 환호할 수 있는 건 한겨울에 ‘비료포대 눈썰매’를 탈 때뿐이었다. 잘 닦아놓은 눈썰매장(?)에 연탄재를 깨놓는 ‘동심 파괴’ 아주머니들을, 그때는 진심으로 원망했다.
여기까지 얘기는 다 내가 진짜 추운 데 살았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한 소리다. 안 그래도 옛날에는 더 추웠는데(믿어달라), 바람을 막아줄 고층 건물이 전무한 시골에, 그것도 산자락에 면한 언덕바지 마을이었으니 얼마나 내 처지가 딱했겠나. 나는 과수원을 지나, 도랑을 건너, 논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어마어마한 경사의 내리막길(하교 길엔 오르막길)을 무사히 통과해야 도달하게 되는 작은 학교에 다녔다. 미션 전체 시간은 한 20분 정도. 물론 초등학생의 심리적 시간일 수 있다.
가장 힘들 때는 역시 겨울이었다. 오싹한 냉기도 냉기지만, 매운 회초리 같은 북풍이 여린 볼때기를 사정없이 짝짝 휘갈겼다. 피할 곳도, 기댈 곳도 없었다. 주위에 보이는 거라고는 다 논이고 밭인데, 모진 바람을 피할 곳이 어디 있겠나.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가 다시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오그라든 발가락을 풀려고 발을 동동 굴렀다가를 해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작은 머리통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뭐가 너무하냐고? 날씨가 말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 계속 추워도 되는 거냐? 이렇게 사람을 못살 지경으로 괴롭히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이건 옳지 않다. 부당하다. 너무한 거다. 참았던 분통이 터져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마치 밭 한복판에 처박힌 채 얼어버린 무처럼, 나는 집에 가다 말고 멈춰 서서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부로 이런 날씨를 거부한다!
결과는? 나는 울기 전보다 두 배는 더 비참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물로 퉁퉁 부은 얼굴을 겨울 한파가 보란 듯이 할퀴어놓은 것이다. 엄마는 동상 연고를 발라주며 기가 막혀 했다.
“추운 게 화가 나서 울었다고? 하하하… 그건 화낼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는 생각했다. 엄마 말이 맞다. 날씨는 화낼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엄마 말이 맞는 건 거기까지다. 날씨에 대해서 화낼 수 없다면, 세상에 화내도 되는 문제, 그러니까 화를 내는 게 해결에 도움이 되는 문제가 대체 얼마나 있다는 건가? 그럼 어른들이 끊임없이 화를 내는 것도 그게 다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돼서 그러는 거라고? 암만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요즘도 날씨가 추워질 때면, 그래서 슬금슬금 화가 나려고 하면, 그때를 떠올린다. 아차, 날씨에 대해서는 내가 화를 안 내기로 했지. 그리고 생각한다. 날씨같이 극악하며 비타협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세상에 참지 못할 일이 뭘까. 살면서 나를 화나게 하는 다른 문제들도 대부분 나쁜 날씨 같은 것이 아닐까. 물론 화내는 게 도움이 된다면, 나도 작정하고 화를 내볼 참이다. 근데 화를 작정하고 낸다니, 그럼 더는 화가 아닌 거 아냐?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