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으로 행복한 삶’ 올해 장애인의 날 슬로건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으며 함께 걸을 때 모두 행복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열고 정부 포상과 올해의 장애인상을 시상했다. 수상자는 장애인을 위한 공적 활동을 한 사람들과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들리지 않는 건 세상과 단절 청각장애인 귀와 입 되고 싶어”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이정자 관장
▶ 이정자 관장이 훈장증을 든 채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C영상미디어
어릴 적 꿈은 고아원 원장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시력이 나쁜 친구가 안경을 쓰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원장 어머니가 돈이 없다”고 대답했다. ‘원장 어머니’라는 생소한 단어에 적지 않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고아원 원장이 돼서 안경도 사줄 거야.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줄 거야.’ 수많은 농아인의 귀와 입이 된 지 수십여 년, 어느덧 살아온 시간의 절반을 장애인과 함께했다. 이정자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장은 그 모든 순간을 가슴 벅차 했다.
“어떻게 하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을지 늘 관심을 가져왔어요. 대입 때는 충청남북도에 사회복지학과가 없어서 사회학을 전공했지만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적합한 인력을 보내달라’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의 제안에 저를 추천해주셨어요. 면접을 거쳐 대전 지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어요.”
장애인의 취업을 알선하는 업무를 처음 맡았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지금보다 강했던 터라 장애인 스스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정자 관장이 장애인은 어떤 직무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는지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는 건 이 때문이었다.
장애인재활협회 명함을 들고 가면 ‘돈을 달라’는 뜻인 줄 오해하고 회사 입구에서부터 차단당했던 일도 부지기수였다. 폭우와 폭설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우산을 쓴 채 정문에서 기다리는 진심을 보였고 갖은 노력 끝에 조금씩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1983년 한 해에만 100명의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었다.
1997년부터는 오로지 청각장애인만을 위한 복지 활동에 집중했다. 그들을 위한 사회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앞을 못 보는 게 사물, 사람과의 단절이라면 들리지 않는 건 세상과의 단절입니다.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니까요.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원하는 정보를 습득하지 못할 때가 상당한데 그 고충을 몰라주는 것 같아요. 청각장애인이 일부 복지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더 안타까운 점은 그들이 사회적 배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청각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실어주고 싶은 이유예요.”
복지관 최초 수화영상도서관 개관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시작해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까지 여러 기관을 거치는 동안 흔히 말하는 ‘좋은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다. 오히려 소속기관이 과도기를 겪을 때 앞장서 힘을 보탰고, 그러한 시간이 쌓여 올해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하게 됐다. 그중에서도 4년째 몸담고 있는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은 이 관장이 지향하는 방향과 궤를 같이하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은 ‘청각장애인과 동행하는 복지관’으로서 어떻게 하면 농아인에게 보다 개선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우리나라 복지관 최초로 수화영상도서관을 개관한 것은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다.
“수화영상도서는 일반 책 내용을 요약하고 그것을 수화로 읽어주는 형태의 도서입니다. 일종의 대체 도서인 셈이에요. 지난 7년 동안 2000여 권이 제작됐어요. 농아인의 학습 수준을 높여주는 동시에 농아인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제작된 영상 대부분이 농아인의 손끝에서 나왔거든요.”
더불어 복지관은 코다(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들이 시각장애가정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교육적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이 관장은 청각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처럼.
▶ 농아인의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관장과 농아인들 ⓒ이정자
이 관장은 퇴임 이후에도 청각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주 작은 규모의 공간이더라도 그들이 원할 때면 언제든 찾아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방을 만드는 게 꿈이다. 청각장애인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또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통로가 돼줌으로써 농아인의 수입을 늘리는 게 목표다.
“다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일을 하느라 아이들의 성장기를 온전히 돌봐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릴 때도 있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이 이런 제가 자랑스럽다고 해요. 지난해 회갑을 맞으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문득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확신이 서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이건 약속할 수 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끝까지 달릴 겁니다.”
“내 목소리, 시각장애인과 정보화 세상의 연결고리”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 김병호 씨
새파랗던 하늘이 까매졌다. 밤이 된 것도 날씨가 어둑해진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희미해 보이는 세상에 들어섰다. 곧 밝은 곳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세상에 갇혀버렸다. 두 눈으로 담던 모든 것을 두 귀로 담아야 했다.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소리는 생각 이상의 존재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화교육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다.
▶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김병호 씨 ⓒ김병호
김병호 삼성전자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센터 과장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빛조차 감지할 수 없는 지금이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온전한 시력을 가진 비장애인이었다. 동시에 네 살배기 아들과 첫돌을 앞둔 딸아이를 둔 젊은 가장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을 자신이 쓰게 될 거라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몸에 피로를 느끼면 충혈이 되곤 했어요. 약을 먹고 점안하면 조금 나아지다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같은 증세가 나타났어요. ‘치료 받으면 나아지겠거니’ 여겼는데 어느 순간 시력이 두드러지게 나빠졌어요. 컴퓨터 화면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서서히 시력을 잃는 ‘포도막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어요. 이전처럼 생활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자 휴직계를 내고 치료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죠.”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애당초 치료 목적이 시력 회복이 아닌 상태 유지였을 정도였다. 2년 동안 치료에 매진했지만 장애를 안게 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결국 서른 하나에 모든 시력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장애를 수용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좌절할 시간은 없었다. 두 자녀와 아내를 둔 가장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합숙 교육센터를 찾았다. 보행은 말할 것도 없고 한글로 점자를 익히는 등 당연하게 해왔던 일들을 새롭게 배워나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게 됐다. 가장 잘했고, 잘할 수 있다고 자부했던 일도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되니 달라졌다.
“과거에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했습니다. 조그마한 기기 안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는 게 주된 역할이었어요. 시력이 반드시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에 기초재활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더 이상 할 수 없었죠. 대신 잘할 수 있는 걸 찾았는데 정보화 교육이었습니다. 합숙 교육을 하면서 소리만으로 컴퓨터 사용이 가능하다는 걸 체험했거든요.”
시각장애인 정보화 교육 주도
▶ 김병호 씨는 ‘올해의 장애인 상’을 수상했다. ⓒC영상미디어
김병호 씨는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하는 곳이 극히 드물었다고 기억했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만 있다면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휴직했던 회사를 다시 찾아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화 교육기관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사회공헌 아이템으로서 꽤 가치 있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게 1997년 삼성전자 시각장애인 컴퓨터 교실. 그곳에서 그는 정보화 교육 강사, 시각장애인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연결고리를 맡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컴퓨터 교실의 형태도 달라졌다. 오프라인 형태였던 교육센터는 온라인 누리집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본 문서 작성 프로그램 과정부터 인터넷 정보 관리사 자격 대비까지 다양한 교육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김 씨는 이 모든 강의를 직접 녹음하고 누리집(anycom.samsunglove.co.kr)에 게재해 시각장애인들이 언제 어디서나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1년 동안 8000여 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이 누리집을 활용했다.
그는 정보화 교육 강사를 비롯해 사내 여러 곳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내 봉사단 ‘스마트 앤젤’을 꾸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스마트폰 활용에 취약한 장년층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화 교육 봉사를 해오고 있다. 또 삼성 스마트폰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향상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비장애인 개발자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UX(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그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됐다. 2014년 출시된 갤럭시 코어 어드밴스는 김 씨가 직접 개발 자문과 사용자 테스트에 참여한 제품이다.
“제품 출시에 앞서 일정 기간 동안 실제로 써보고 불편한 점을 기록해서 전달하고 있어요. 회사는 그 내용을 개선 사항에 반영하고요. 직장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니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소리가 언제 어떻게 필요한지 제가 잘 알잖아요.”
그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장치나 시선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예전에는 장애인 서비스를 받으려면 특정 공간에서 가족들과 분리돼야 했는데 이제는 통합 서비스로 제공돼요. 바람직한 방향이에요. 다만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중 어느 한쪽만 노력해서는 안 돼요. 비장애인 개발자들이 장애인의 사용 환경을 고려한 제품을 만들고, 장애인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처럼요. 세상은 고도화되고 있고 시각장애인들은 또 다른 벽을 마주할 거예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또 찾아야겠죠?”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