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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했던 단일팀 ‘코리아’의  기억

짧지만 강렬했던 단일팀 ‘코리아’의 기억

참 반가운 소식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한다니. 이 소식을 듣고 나의 시계는 1991년으로 돌아갔다. 스물한 살, 나의 탁구 인생에서 유난히도 뜨거웠던 한 해였다. 일본 지바에서 열리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급하게 남북 단일팀이 결성됐다. 사상 초유의 결정에 모두가 놀랐다. 단일팀 코리아의 여성 단체전 주전은 나를 포함해 홍차옥, 리분희, 류순복 네 명으로 구성됐다. 처음에는 북한과 팀을 이룬다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금메달을 향해 훈련에 매진할 때였기 때문이다. 팀워크가 좋아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대회였다. 46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 팀이 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차차 시간이 흐르자 승산이 있어 보였다. 당시 넘어야 할 산은 세계 최강의 중국팀이었다. 그런데 남북 모두가 중국을 상대로 이긴 경험을 갖고 있었다. 탁구 기량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호흡을 맞출수록 예상보다 좋은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단일팀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리분희 선수다. 리분희 선수는 강력한 스매싱과 좋은 백핸드를 가진 선수였다. 그런데 당시 그는 간염을 앓고 있었다. 간이 좋지 않으니 피로가 금방 누적됐고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16강, 8강에 올라갈수록 다른 팀원들도 힘에 부쳤다. 리분희 선수의 컨디션을 알고 있으니 그 몫까지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터였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내색할 수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중국과의 여자 단체전 결승전, 27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 속 관중들의 환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믿었다. 마지막 단식을 앞둔 경기 상황은 2 대 2. 지름 4cm 무게 2.7g의 작은 탁구공에 모두의 눈이 따라 움직였다. 손에 땀을 쥐며 박수와 탄식이 오갔다. 결과는 우리의 승리였다. 시상대 가운데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단순한 승리 이상의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짧지만 강렬한 46일이었다. 이후 27년간 북한팀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2012년이다. 리분희 선수가 단장이 되어 런던패럴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정화가 보고 싶다고 했단다. 나 역시 그가 보고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에 리분희 선수가 있듯 그 역시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남북 단일팀 구성은 1991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남북이 국제경기대회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한 적은 있었지만 제2의 단일팀 구성은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억 속에는 오랫동안 각인된 듯하다. 남북 단일팀 이야기는 2012년 영화 코리아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때 영화 제의를 받고 내가 제작진에게 처음 건넨 말이 왜 이제 오셨어요?였다. 남북이 스포츠로 화합하는 모습을 진작, 더 많은 대중이 알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땀은 정직하다. 남북이 교류하는 데 스포츠만큼 좋은 게 없다. 다른 현안들은 저마다의 득실을 따지게 되지만 스포츠는 사심 없이 교류할 수 있는 매개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남북이 화합하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다시 한 번 하나 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길 바란다. 이런 모습이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아울러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는 가교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스포츠가 가진 힘을 믿는다. 현정화│대한탁구협회 부회장,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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