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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동갑내기 ‘여진구’와 ‘화이’

열일곱 동갑내기 ‘여진구’와 ‘화이’

ⓒ제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컷! 외마디 외침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한껏 가라앉은 공기가 더해진 그곳의 나는 열일곱 소년 화이였다. 영화 화이의 화이를 연기한 그때부터 5년이 흘렀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연기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건 있다. 스스로 얼마나 달라졌다고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촬영현장에서 웃음기가 다소 사라진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배우로서 무게감과 책임감이 더해졌으며 보다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 자신이기도 했던 화이 덕분이다. 지난 13년 동안 20개 남짓한 작품을 했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매 순간이 행복했다. 그렇지만 많은 선후배 배우들이 입을 모으듯 연기 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은 유독 여운이 길다. 내가 기억하는 화이처럼 말이다. 영화를 촬영할 당시 극중 배역과 같은 열일곱 살이었다. 동갑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화이가 무척 궁금했다. 그 친구는 그 세계에서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서였나보다. 화이로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연기 욕심을 냈다. 내면에 존재하는 괴물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그리고 다섯 아빠와 대화할 때는 더욱 그랬다. 그렇게 4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화이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참 이상했다. 계단에 기댄 선배 배우와 꽤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먹먹한 기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맡은 역할을 떠나보내는 데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배우로서 확고한 다짐을 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화이를 관람한 건 영화가 개봉된 뒤 2~3년이 지난, 내가 성인이 되고서였다. 보는 내내 여러 감정이 겹쳤다. 뿌듯함, 압박감, 그리고 기대감. 그런데 엔딩 크레딧에 등장한 내 이름을 눈에 담는 순간 무언가 확실해졌다. 그전에는 마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에 그쳤다면, 앞으로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다짐이었다. 확실히 그때 나의 화이와 현재 나의 화이는 다르다. 최근에도 화이를 다시 보거나 시나리오를 다시 읽곤 하는데 그때처럼 연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때는 배우 여진구와 화이가 각각 존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진구가 온전히 화이가 돼버릴 것이다. 둘 중 무엇이 옳다고 할 순 없다. 다만 배우로서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올해 나는 스물두 살이 됐다. 배우로서 그리고 20대 한 청년으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전진해야 하는 시기다. 실제 내 성격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색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봐도 새로운 나를 작품에 남기고 싶다. 소화할 수 있는 연기와 장르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존경하는 선배들을 따라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즐겁게 연기하는 모습이 멋있는 배우라고. 여진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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