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작물을 가꾸기에 황금 같은 계절. 새싹 하나 키워보자. 집도 좁은데 웬 텃밭? 상관없다. 베란다의 아주 작은 공간, 혹은 싱크대 옆도 괜찮다. 그런데 무얼 키우지? 개인별 성향에 맞는 품종을 제안해본다.
베란다 텃밭 하기 좋은 계절
계절에 따라 햇빛의 세기가 다르다. 그 깊이와 채광 시간도 달라진다. 자연히 베란다 내 환경도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 봄과 가을은 모든 조건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베란다 텃밭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일단 접근성이 뛰어나다. 코앞에 있기 때문에 관리하기 위해 멀리 나가야 하는 부담이 없다. 잡초 걱정도 안 해도 된다. 또 비바람, 가뭄, 혹한 등의 외부 환경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바로바로 수확해 식탁에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덤으로 아이들 교육에도 좋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식물을 기르면 언어폭력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선희 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 박사는 “식물을 교실 내에서 기르고 관찰한 학생들은 주변의 친구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고운 말 사용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실내이다 보니 빛의 부족, 공간의 부족 등의 한계점이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참외나 수박, 감자 같은 작물은 베란다 텃밭에 적합하지 않다. 대체로 열매를 먹거나 비대해진 큰 뿌리나 줄기를 먹는 작물은 광합성량이 많아야 한다.
장윤아 농촌진흥청 도시농업과 농업연구사는 “베란다 텃밭은 실외 텃밭에 비해 접근이 쉬워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지만 환경 조건이 실외와 다른 만큼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베란다 텃밭에 맞는 작물과 품종 정보, 관리 방법에 대한 정보를 활용해 성공적으로 베란다 텃밭을 가꿔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게 맞는 품종 고르기!
# 바쁜 직장인 요섹남(요리를 잘하는 섹시한 남자), A씨
“새벽같이 출근하고 야근이 잦습니다. 평일엔 집안을 돌보기 힘들죠. 주말은 다릅니다. 요리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죠. 특히 파스타가 가장 자신 있어요.”
▶ ‘바질’을 추천한다. 집안일에 많은 신경을 쓰기는 힘들지만 텃밭 꾸미기에 도전하고 싶은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간단하게 키울 수 있는 허브 종류가 알맞다. 손이 거의 가지 않고 혼자서도 잘 자라는, 대표적으로 키우기 쉬운 채소다. 특히 바질은 샐러드나 파스타, 샌드위치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키우면 잘 자란다. 물도 겉흙이 말라간다 싶을 때 한 번씩 주면 된다. 벌레도 잘 생기지 않는다.
ⓒ조선앤북 Shutterstock
# ‘빨리빨리’ 성격 급한 중학생, J군
“수확까지 가만히 기다리질 못하겠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여다보고, 물을 주다 보니까 뿌리가 썩어버린 적도 있죠. 이왕이면 바로바로 음식에 넣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숙주나물’은 씨앗을 심고 일주일 안에 수확이 가능하다. 숙주나물은 녹두로 기른다. 껍질을 까지 않은 녹두를 준비하면 된다. 수확을 빨리 할 수 있어 매력적이고, 키우기도 쉽다. 숙주나물을 포함한 새싹 채소 키우기는 틀과 공간, 물과 씨앗만 있으면 된다. 소요기간도 짧아 초보자에게도 좋은 채소다. 싹이나 눈이 발아된 지 얼마 안 된 새싹채소 역시 병해충의 문제가 전혀 없기 때문에 농약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발아하면서 종자 내부의 모든 영양분이 깨어나 새싹에 공급돼 효소,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풍부해진다.
ⓒ조선앤북 Shutterstock
# ‘베알못(베란다 텃밭은 알지도 못하는)’ 자취생, C씨
“자취생이 식물을 키울 여유가 어딨겠어요. 그런데 최근 생각이 바뀌었죠.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에, 매번 채소를 사 먹기 쉽지 않더군요. 키워서 먹어볼까, 하는 중입니다. 그 생명력 강하다는 선인장도 말려 죽인 제가 과연 가능할까요?”
▶ ‘잎채소’라면 가능하다. 누가 뭐래도 베란다 텃밭에 가장 무난한 채소다. 경험자들은 초보자들에게 보통 ‘상추, 치커리 등 잎채소 모종?새싹채소?채소 씨앗 심기?열매채소?뿌리채소’ 순으로 시작하길 추천한다. C씨에겐 청치마 상추를 추천한다. 베란다 텃밭에서 키울 수 있는 상추와 양상추 품종은 수십 가지인데, 다양한 품종 가운데 매년 빠지지 않고 베란다 한켠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가 바로 청치마 상추 품종이라고. 식탁에 올리기도 좋다. 여러 차례 수확할 수 있다는 점도 자취생에겐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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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심 좋은 동반장 전업주부, L씨
“지금도 베란다에서 몇 가지 채소를 키우고 있는데요, 새로운 품종을 키워보고 싶네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희 집에 가끔 들르기 때문에 보기에도 좋고, 이왕이면 나눠 먹을 수 있는 걸로요.”
▶ ‘딸기’가 좋겠다. 다년생 베란다 텃밭 작물 중 관상 효과가 높고 수확의 기쁨이 가장 큰 작물을 꼽으라면 단연 딸기. 다른 채소에 비해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며 딸기가 한번 열리면 바닥에 닿지 않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딸기 열매는 흙바닥에 닿으면 쉽게 상하기 때문. 제철이 되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편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베란다에서 직접 키워서 수확한다면 주머니 사정까지 신경 쓸 수 있어서 좋다. 관리만 잘하면 몇 년간 수확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특히 여름에는 러너라 불리는 줄기 번식을 하게 되는데 번식된 포기의 뿌리를 토양에 잘 활착시킨다면 이웃에게 많은 양의 딸기 모종을 나눠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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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롭지만 적적한 은퇴자, K씨
“본격적으로 베란다에 텃밭을 가꿔보려고 합니다. 급할 게 없으니, 가꾸는 시간은 많이 투자할 수 있습니다. 수확량이 많다면 적적함을 달래기 좋겠네요. 허허.”
▶ ‘고추’는 베란다 텃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물 중 하나다. 화분만 잘 관리해주면 보는 재미와 수확하는 재미가 동시에 있기 때문. 1~2월 중 파종하면 봄, 여름, 가을 내내 수확할 수 있다. 고추는 다년생으로 개체가 얼어 죽지 않는다면 이듬해 다시 수확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다. 상추와 무에 비해 발아 기간이 훨씬 길기 때문. 빠르면 일주일, 보통 10~15일은 넉넉히 기다려야 한다. 흙에 바로 심는 것도 좋으나 눈으로 발아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투명한 용기에 물과 함께 담근 후 발아가 확인된 씨앗에 한해 하나씩 포트에 심는 방법을 추천한다. 베란다에서 키울 수 있는 다른 과채류에 비해 생산량이 비교적 많은 편으로 그만큼 열매를 맺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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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 <나만의 베란다 텃밭이야기>, <열두 달 베란다 채소밭>,
<초보자를 위한 꼼꼼 가이드북 베란다 텃밭 가꾸기>
ⓒ조선앤북<열두 달 베란다 채소밭> 저자 장진주
“채소 키우는 소질,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주말농장이나 텃밭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채소는 집집마다 누구나 키울 수 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는 그다지 넓지 않지만 활용하다 보면 구석구석 공간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굳이 베란다가 아니라도 주방 싱크대 옆에서 숙주나물과 콩나물같이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새싹채소를 길러도 돼요.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채소를 가꿀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숨어 있답니다.”
장진주 씨는 초보 가드너에게 “처음엔 씨앗보단 모종을 구입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우선 키우는 재미를 느끼는 게 필요하니까요. 꽃집이나 화훼단지에 모종이 나오면 몇 개 구입하고 상토만 한 봉지 사서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키워보세요. 처음부터 여러 도구를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흙과 모종만 있어도 충분해요.”
초보자들이 쉽게 실수하는 부분도 지적했다. 밖에서 퍼온 흙을 사용한다는 것.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이면 시판 상토를 구입해 사용하시길 권합니다. 밖에서 퍼온 흙에는 개미 같은 벌레나 지렁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집에 옮겨질 우려가 있다는 점 주의해주세요.”
서울 대치동 입시학원에서 생물 강사로 강의하는 틈틈이 가꿔온 채소밭 경력이 어느덧 10년차. 연간 100여 종의 작물을 길러내는 소문난 ‘그린핑거스(green fingers : 식물을 잘 키워내는 사람)’이지만, 실은 그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련화 발아 실패를 반복하고, 딸기 모종을 몇 번 죽이기도 했고, 콩나물을 기르다 상해서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뭐든 처음은 서툴고 어려워요. 한 번의 실패로 ‘난 채소 키우는 데는 소질이 영 없나보다’며 포기하지 말고 다시 씨앗을 심어 그 뒤에 찾아올 큰 즐거움을 꼭 느껴보길 바랍니다.”
베란다 텃밭 준비물
화분 : 채소용 화분은 수확하고 싶은 양을 충족시킬 만큼 큰 것을 고르거나, 작은 화분 여러 개를 놓아두면 된다. 화분의 모양은 윗면과 아랫면의 넓이가 비슷한 것으로 고른다. 화분을 선택할 때는 심을 작물의 종류에 따라 깊이나 폭을 맞춰야 한다.
상토 : 채소를 잘 재배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가 흙. 통기성이 좋고 물 빠짐이 잘 되며 양분이 적절히 함유된 흙을 선택. 농원이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원예 범용 상토가 적절하다.
씨앗, 모종 : 씨앗은 봉투에 품종 이름, 재배 특성, 재배 일정표, 씨앗량, 발아율, 생산연도, 발아 보증 시한 등 도움이 되는 정보가 담겨 있다. 모종을 고를 때는 뿌리에 활력이 좋은지, 잎에는 상처가 없는지, 병충해 피해를 받지 않았는지 확인. 초보자의 경우 모종으로 시작하길 권한다.
양분 (비료) : 일반적으로 채소용 상토는 한 달 정도 키울 수 있는 양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보다 재배기간이 길어지면 양분을 추가해주는 게 좋다.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