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차하림 씨는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또 다른 ‘육아’를 시작한다. 대상은 집 안에서 키우는 식물들. 다육식물 5종, 허브 4종, 쌈채소 5종, 나무 2종을 포함해 총 18종의 식물이 매일 그의 손길을 기다린다. 차 씨는 베란다에 심어놓은 청경채 화분에 오늘 아침 노란 꽃이 핀 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며 자랑했다.
“식물에서 싹이 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는 게 무척 기다려지고 재미있어요. 특히 쌈채소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볼 때마다 놀라워요. 처음엔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식물 키우는 재미에 빠져 얼마 전부턴 씨앗을 사와 직접 심어 가꾸고 있어요. 첫 싹이 나오기까지 열흘이 걸렸는데 날마다 설?어요. 스투키나 율마 같은 공기 정화식물 역시 눈에 띄게 확확 자라진 않는데 천천히 자라는 식물을 바라보는 일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죠.”
차 씨는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며 연신 ‘몇 마리, 몇 마리’ 하는 표현을 썼다. 마치 반려동물을 대하듯. 실제로 차 씨는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다. 실수로 식물을 죽인 뒤엔 그만뒀지만 예전엔 반려식물에 이름까지 붙여줬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그에게 반려식물은 큰 위안이 되고 있다.
▶ 두 아이의 엄마인 차하림 씨는 다육식물. 쌈채소, 공기정화식물 등 집 안에서 18종의 식물을 키운다. 그는 "반려식물을 키우는 기분은 자식을 돌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차씨의 두 자녀가 식물들을 보듬고 있다.
“아이를 가진 뒤엔 함께 살던 반려동물은 친정집에 보내고 반려식물을 키우는데 느낌은 똑같아요. 둘 다 내 자식을 키우는 듯해요. 처음엔 무조건 예쁜 식물을 갖다 놓기 바빴죠. 그런데 ‘율율이(차 씨가 율마에 붙인 이름)’가 죽은 뒤 율마는 햇빛과 물을 좋아하고 바람도 자주 쐐야 하는데 제가 너무 집 안에만 들여놔 잘못됐단 걸 알았어요. 이후 식물마다 좋아하는 게 다 다르다는 걸 알고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다 보니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과 같이 화분에 물 주고 다 자란 채소를 뜯어 요리해먹는 즐거움도 아주 큽니다.”
바쁜 현대인, 시간 덜 들이고도 큰 위로 얻어
관리 쉽고 공기 정화 효과 큰 다육식물 인기
차 씨처럼 식물을 단순한 인테리어 장식품을 넘어 집 안 공기를 정화하거나 요리 재료로 활용하는 등 반려식물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은 식물이 반려동물처럼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을 위로해주는 ‘힐링’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뜻에서 나왔다. 이에 집 안에서 식물을 키우는 ‘인도어 가드닝(Indoor Gardening)’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11번가는 최근 3개월(1월 2일∼4월 1일) 동안 원예상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상승했다고 밝혔다. 화병과 분재 등 원예도구•재료 매출도 13% 증가했다. 원예식물 중 건조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 관리가 손쉬운 선인장 등 다육식물이 인기다. 공기를 정화하고 천연 가습기 역할을 해주는 수경 재배 식물과 산세베리아 매출도 각각 22%, 16% 늘어났다.
부엌이나 식탁에 놓고 키우며 식재료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향신 허브류인 애플민트와 레몬바질의 매출은 각각 12%, 18% 증가했다. 11번가는 “최근 반려식물 구입이 증가한 것은 봄을 맞은 시기적 특성도 있지만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반려식물을 키우며 위로와 에너지를 얻고 있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유리그릇 안에 작은 식물과 피규어를 넣어 가꾸는 테라리움은 관리가 쉽고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반려식물의 힐링 효과가 입증되면서 저소득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반려식물 전달사업을 벌이는 지방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홀로 사는 노인이 화초를 가꾸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물주기, 분갈이 등의 과정을 통해 신체 활동까지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때 홀몸어르신에게 반려동물을 분양하는 사업이 계획되기도 했으나 비용 문제와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무산됐다. 이에 비해 반려식물 보급사업은 적은 비용으로 고독사 등 노인 문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로 각광받고 있다.
반려식물 전시회도 열렸다. 지난 2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전시회에선 가방에 넣을 수도, 품에 안을 수도 있는 ‘이끼볼 컬렉션’이 선보였다. 흙을 동그랗게 뭉친 뒤 그 위를 조경용 이끼인 수태로 감싸 이물질이 묻어나지 않게 했다. 전시를 기획한 지컬렉션은 “바쁜 현대인이 식물은 좋아하지만 관리가 어려워 기르기를 꺼리는 점과 환경적인 문제를 고려해 제작했다”고 밝혔다. 지컬렉션은 누구나 30분만 배우면 완성할 수 있는 이끼볼 만들기 체험 교육을 준비 중이다. 지컬렉션은 “체험 참가자들이 살아 있는 식물과 흙을 직접 만지면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 성취감과 치유 효과를 느끼기 바란다”고 전했다.
‘녹색의 힘’ 통해 일상 벗어나 느린 삶 만끽
반려동물 들이듯 정성 쏟고 주인 성격도 고려해야
이구름 씨는 현대인들에게 ‘초록의 힘’을 알려주고자 1년 전 ‘슬로우파마씨(Slow Pharmacy)’라는 복합 공간을 차렸다. 슬로우파마씨는 녹색식물이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을 실험하고 대중에게 전시•판매하는 곳이다. 이 씨는 이 공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느린 삶’을 공유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직장인이 많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공간을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 도심 한복판에 꾸며진 녹색식물 전시판매장 '슬로우파마씨'.
“저도 한때는 광고디자인 회사에서 매일같이 철야작업을 했어요. 너무 지쳐 일을 그만두고 쉬던 시기에 식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전 같으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시간에 녹색식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었죠. 끝없이 주입되는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제 스스로 무언가를 떠올릴 수도 있고요. 도심을 초록색으로 물들여 바쁜 현대인들에게 초록이 갖는 힘을 알려주고 슬로 라이프를 공유하고 싶어요.”
이 씨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식물이 따로 있고, 식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식물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에게 이 씨가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은 “식물을 죽여본 적이 있느냐”라는 것. 이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닌, 식물을 리빙 아이템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약간의 ‘경고’성 발언이다.
“식물을 ‘입양’하는 것 역시 반려동물을 들일 때와 같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모든 식물은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식물마다 자라는 환경은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다음에 집 안 환경과 키우는 사람의 성향을 고려해 식물을 추천해드려요. 식물이 빨리 혹은 천천히 성장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지, 심리적 안정을 얻고 싶은 건지, 가꾸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건지 등 성향에 따라 맞는 식물이 다르거든요. 섬세한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대해선 안 되듯 식물도 각기 성격이 다르다는 걸 알고 대하면 훨씬 더 오래 가꿀 수 있어요.”
이 씨는 “책상에 이런 것 하나쯤은 있어야 버틸 수 있다며 찾아오는 직장인들이 많다”면서 실내조명만으로도 잘 자라는 테이블야자, 흙과 물 대신 미세먼지를 먹고 자라는 에어플랜트(공중식물) 틸란드시아 등을 추천했다. 덧붙여 “유리그릇 안에 작은 식물과 인형 피규어를 함께 넣어 키우는 테라리움은 숲 속 안에 작은 세상이 펼쳐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심신이 지치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글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