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오후 11시 우리나라 이동통신 3사가 세계 최초로 첫 5G 서비스를 상용화하며 ‘5G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 5G란 ‘5th generation mobile communications’의 줄임말로 5세대 이동통신(규격)을 뜻한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내린 정의에 따르면 5G는 최대 다운로드 속도 20Gbps, 최저 다운로드 속도 100Mbps인 이동통신 기술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4G 이동통신 기술인 LTE(Long-Term Evolution)와 비교하면 속도는 약 20배 빠르고, 처리 용량은 100배 많다. 5G 서비스를 ‘초(超)시대’ ‘초능력’으로 부르는 이유다.
“5G는 단순 통신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상상을 현실로 실현하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정부는 2월 2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낸 보도자료에서 5G 시대를 이렇게 설명했다.
5G 시대에는 영화 <킹스맨> <어벤저스> 등에서 본 홀로그램 회의를 할 수 있다. 재난 현장에서는 증강현실(AR) 안경을 쓴 구조대원이 사람을 구출할 수도 있다. 이는 극히 일부다. 5G 시대 우리 일상에는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변화가 생긴다. 5G가 산업에 끼칠 영향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5G 시대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는 5G 시대가 열리면 10개 산업 분야에서 최소 42조 3000억 원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5G 시대가 바꿀 우리 일상의 모습은 어떤지, 업계는 어떤 준비를 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팩토리를 갖춘 포스코 공장 | 포스코
5G 시대가 가져올 일상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5G의 세 가지 특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5G의 열쇳말은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이다. LTE의 처리 속도는 1Gbps인 데 비해 5G는 최대 속도가 20Gb㎰에 달한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5G의 가장 큰 특장점은 ‘초저지연성’이다. 초저지연이란 스마트폰에서 보낸 데이터가 기지국, 교환실, 서버 등을 거쳐 다시 단말로 돌아오는 지연시간이 매우 짧다는 의미다. 4G에서 5G로 옮겨가면 전송 지연(latency)이 LTE의 10ms에서 1ms 수준으로 10분의 1가량 줄어든다. 덕분에 기존에 불가능했던 ‘실시간’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5G는 최대 연결기기 수도 LTE에 비해 10배 이상 많다. 수많은 기기와 센서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다.
5G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는 영화 한 편 다운로드에 걸리는 시간이 말해준다. 3GB 용량의 영화를 내려받을 때 16초가량 걸렸지만 5G 시대에서는 1초 만에 가능하다. 빠른 속도에서 비롯된 변화만 있는 건 아니다. 단말기와 기지국, 서버가 신호를 주고받는 시간, 즉 초저지연성 덕에 5G 서비스 이후 우리 일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5G만의 초저지연 특징을 구현한 게 바로 ‘자율주행차’다.
▶2018년 9월 4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지원허브 앞 광장에서 출발한 11인승 자율주행차량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 한겨레
정지신호 삑, 2.7㎝ 만에 끽
3월 12일 한 차량이 강변북로, 영동대교, 올림픽대로, 성수대교를 지나 서울숲 주차장까지 서울 시내를 달렸다. 차량은 강변북로에 들어서면서 제한속도를 준수했다. 정체 구간에서는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고 차선을 바꾸기도 했다. 차 한 대가 제한속도에 맞춰 문제 없이 잘 달린 게 뭐가 대수냐 싶지만, 차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차는 LG유플러스와 한양대가 공동 개발한 5G 자율주행차 ‘A1’(에이원)이다.
자율주행차는 센서로 날씨, 도로 환경 등 주변 정보를 처리한다. A1이 제한속도에 맞춰 달리고, 정체 구간에서 앞차와 간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로 주행하고 있는 자율주행 차량 앞에 장애물이 등장해 정지신호가 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치자. 4G 기준으로는 0.81~1.35m를 움직인 뒤에 멈추지만 5G에서는 그 거리가 2.7㎝로 줄어든다. 물론 도로와 차량 제동거리 등 다양한 변수는 남아 있지만 발견-인지-반응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보인다. 4G 수준에서는 사고가 될 수 있는 일이 5G에서는 안전한 운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자율주행차에 몸을 맡기고 차 안에서 마음 편히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게 흔한 일상이 될지 모른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KT가 강릉, 평창 등지에서 5G 협력 자율주행 버스를 선보인 이후 자율주행차는 꾸준히 기술적으로 진화하는 모양새다.
5G 시대에는 병원에 직접 가는 게 낯선 일이 될 가능성도 크다. 5G 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 및 loHT(Internet of Health Thing) 서비스의 등장 때문이다. loHT란, 병원을 찾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질병에 대한 예방과 진단,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2월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비아 전시관에서 열린 ‘MWC19(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SK텔레콤이 3·1절에 맞춰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태극기 변천사를 소개하고, 소셜 VR 시연을 활용해 관람객들에게 대한민국 100주년을 알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4G에서도 원격진료는 가능했지만 먼 거리에 있는 환자의 경우 통신 지연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있어 로봇 수술 등은 근거리에만 한정돼 있었다. 초저지연을 특징으로 하는 5G에서는 끊김 현상 없이 통신이 이루어져 원격진료 및 수술이 원활해지고, 먼 거리에 있는 환자들도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원격진료도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영상 서비스를 통해 더욱 고도화된다. 좀 더 꼼꼼하고 정확한 진단도 기대할 수 있다. 초고난도 수술의 경우, 의사의 눈으로 보기 어려운 수술 부위는 VR/AR 영상을 활용해 정확하게 집도할 수 있다. 기술이 더 진화한다면 의사가 0.1초의 오차도 없이 전송되는 실시간 화면을 확인하며 먼 거리에 있는 로봇을 원격 조종해 수술을 집도하는 상황도 현실이 될 수 있다.
▶2월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 전시회 MWC2019에서 관람객들이 KT 부스에 설치된 ‘5G 플레이 그라운드’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원하는 각도와 위치에서 가깝게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현실 ‘오아시스’를 통해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세계를 그렸다. 2045년 미래의 모습을 다룬 이 영화 속 이야기가 곧 우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
5G 시대에는 일상에서 실감나게 즐길 오락 거리가 많아진다. 4K UHD(Ultra High Definition, 초고선명) 영상은 물론, 8K UHD 영상도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용할 수 있다. 고화질 VR 영상 중계도 가능하다. VR를 활용하면 축구, 야구 등 스포츠 경기를 실제 경기장에서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실제 관람석에서 보면 선수가 슛하는 장면을 한쪽 각도에서 또는 멀리서나 보지만 VR을 활용하면 원하는 각도와 위치에서 가깝게 만나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실감미디어(싱크뷰·타임슬라이스 등)를 실제 올림픽 경기·중계에 적용한 바 있다. 2018년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5G 체험관을 통해 배드민턴·농구 등 VR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다이내믹·실감형 콘텐츠가 자리를 잡으면 현실감 있는 가상 환경 속에서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며 교육을 받거나 스포츠를 직접 즐기는 게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여행 시 호텔을 예약할 때 미리 방을 둘러볼 수도 있다. T커머스(양방향 데이터 홈쇼핑)를 통해 직접 매장에 가지 않고 옷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2018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과학창의축전에서는 VR을 활용한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다. 관람객들이 VR 장비로 면접 체험을 하는 모습이었다.
5G 시대 제조업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제철 공장을 예로 들면, 과거에는 직원이 2시간에 한 번씩 용광로에 온도계를 넣어 온도를 확인했다. 5G 시대에는 사람이 아닌 고화질 카메라와 수백 개 사물인터넷 센서 등이 내부 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알려준다.
이는 5G가 여는 ‘스마트 팩토리’의 한 예다.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5G를 활용해 공장 간 연계가 가능해지고, 유연한 생산체계가 마련된다. VR/AR 기술과 웨어러블 테크놀로지(wearable technology, 몸에 심거나 액세서리로 착용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 기술), 무선 기반 로봇으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생산도 가능해진다.
돌발상황 응급 대처로 사고 없이
5G의 짧은 지연시간은 로봇이 사고 없이 업무를 실행할 수 있게 도와준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대량의 데이터 전송 기능이 작동해 이를 피할 수 있는 데이터를 로봇에게 재빨리 전달해준다. 사람이 일할 때보다 사고가 줄어들 수 있는 이유다. 불량률 감소, 맞춤형 생산도 기대해볼 수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5G 시대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업은 자동차, 금융, 미디어, 유통 등을 제치고 2025년 8조 6000억 원에서 2030년 15조 6000억 원으로 기대 효과가 가장 큰 산업으로 집계됐다.
제철 공장에서 온도 확인하는 일을 기술이 대신해주니 제조업 분야에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단순노동은 사라지지만, 각종 인공지능이 내놓은 자료를 해석하고 적용할 일은 많아진다.
이른바 ‘초능력 시대’가 오면 일자리 지형도 바뀐다. 세계경제포럼이 내놓은 ‘직업의 미래 2018(The Future of Jobs 2018)’에 따르면 7500만 개의 직업이 로봇에 의해 대체된다. 보고서는 로봇이 인간을 빠르게 대체할 분야로 회계, 고객 관리, 생산, 이송, 비서 업무 등의 영역을 꼽았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인간을 위한 1억 300만 개 직업이 새로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술이 진화하는 만큼 그에 따른 회사의 제품을 설명 및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미디어 분야의 영업·마케팅 전문가, 5G와 핀테크,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록체인 전문가, 자동차, 가전, 부속품 및 기타 제조 물품 등을 설계하고 로봇을 개발하는 로봇 공학자 등이 수요가 늘 것으로 보이는 직업들이다.
김청연 기자
참고 자료: <5G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분석>(KT경제경영연구소), <5G가 만들 새로운 세상>(한국정보화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