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자동차의 질주가 심상치 않다. 한국 수출 시장을 이끌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쏟아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월 자동차 산업 동향’에 따르면 2024년 1월 자동차 수출액은 역대 1월 기준 최대 실적인 62억 달러를 넘었다. 현대차·기아는 2023년 매출 262조 4720억 원, 영업이익 26조 7348억 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자랑했다.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차량 판매 대수는 토요타그룹,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글로벌 판매량 3위를 차지했다. 이제 K-자동차의 질주는 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유럽, 북미·중남미 등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올해 2월 초 포르투갈로 여행을 간 강정미(가명) 씨는 기아가 2023년 출시한 다목적스포츠차량(SUV) 전기차 EV9이 리스본 시내를 달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강 씨는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전기차가 해외에서 인기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최근 출시한 신차를 보니 신기하고 자부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한국차 인기도 만만치 않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제네시스 GV70이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비비안 유 씨는 “포드, 토요타 등 큰 SUV를 선호하던 사람들이 최근에는 한국차에 관심을 갖는다”며 “더 세련되고 모던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자동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다. 전체 자동차 수출액에서 대미 수출이 50.3%의 비중을 차지한다. 2023년 미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44.7% 증가한 321억 1000만 달러(약 42조 7705억 원)를 기록했다. 미국 다음으로는 ▲캐나다(7.4%) ▲호주(5.2%) ▲독일(4.3%) ▲영국(3.7%) 순이다.
중대형 SUV, 고급 브랜드 자동차 선전
K-자동차의 질주는 비교적 단가가 높은 중대형 SUV와 고급 브랜드 자동차의 선전 덕분이다. 여기에 친환경차가 시장에서 각광받으면서 탄력을 받았다.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로 바뀌는 시장의 흐름을 읽고 발 빠르게 친환경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해외 시장에서 한국산 전기차의 전비와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전기차의 안전성은 우연한 계기로 입증됐다. 2021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대회 참석 차 LA에 체류했다가 차가 뒤집히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큰 사고였지만 범퍼가 파손된 정도였고 차량 내부는 온전했다. 타이거 우즈가 탄 차가 제네시스의 GV80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USA투데이’는 “우즈가 미국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차량을 타고 있었다”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급 차 브랜드가 주목받았다”고 소개했다.
제네시스의 GV80는 북미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린 ‘2024 캐나다 국제 오토쇼’에서 제네시스의 전기차 모델인 G80와 GV70가 각각 ‘2023 캐나다 올해의 전기차’와 ‘2024 캐나다 올해의 전기 유틸리티’로 선정됐다. 또한 기아의 전기차 EV9은 1월 9일 미국 미시간주 폰티액에서 열린 ‘2024 북미 최고의 차’ 시상식에서 유틸리티부문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그 외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 기아의 니로 등 다양한 전기차종이 업계에서 인정받으면서 전기차 시장에 빠르게 안착했다.
시장의 반응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전기차·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수출액은 2022년보다 50.6% 증가한 240억 1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친환경차가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32.5%에서 37.6%로 5.1%포인트 높아졌다. 친환경차 중 전기차가 22.3%로 가장 비중이 컸고 하이브리드 자동차(11.9%), 플러그인하이브리드(3.3%) 순으로 많이 판매됐다.
K-중고차 시장도 꾸준히 성장
신차뿐 아니라 중고차 수출도 상승그래프를 그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3년 해외에 판매된 우리나라 중고차는 63만 8000여 대, 수출금액은 47억 8000만 달러(약 6조 2000억 원)로 전년 대비 61.5% 증가했다. 우리나라 중고차를 수입하는 나라는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등 중미지역이다. 특히 중미지역의 우리 중고차 수출액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부터 연평균 45%씩 성장하고 있다.
중미지역은 대중교통망 개선이 어려워 자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신차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중고차 구매자가 신차 구매자보다 더 많다. 우리나라 중고차는 품질이 우수하고 상태가 양호해 현지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중미 4개국(코스타리카, 파나마, 자메이카, 니카라과) 중에서는 코스타리카가 수출 금액이나 수출기업 수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중고 시장은 그동안 미국에서 사고 난 차를 싸게 수입해 수리·판매해왔다. 그런데 2019년부터 사고 차량 수입이 금지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대체재를 찾고 있었다. 그 틈을 우리나라 중고차가 파고든 것이다.
중미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는 중형 디젤 승용차다. 그 뒤를 ▲중형 가솔린 승용차 ▲경차 ▲디젤버스 ▲소형 디젤 트럭이 잇고 있다. 중형 디젤 승용차와 경차의 경우 전체 수출에서 중고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신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자동차부품산업법’ 7월 시행
KOTRA 파나마 지역 무역관에 따르면 중고차 수입 시장의 호조세는 앞으로 3~5년 정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차 수출 시장은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거나 수출 규모가 소폭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가 2023년 12월 4일 발간한 ‘2024년 자동차산업 전망’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 수출은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수요 정상화와 소비심리 회복 등으로 인해 수출액이 전년 대비 3.9%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호실적이 꾸준히 이어지려면 변화하는 자동차시장의 흐름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 7월부터 시행되는 ‘미래자동차부품산업법’을 통해 K-자동차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선점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 법안에는 자동차부품기업이 내연차에서 전기차 등 미래차로 기술을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친환경 기술 등 미래차 기술 범위 확대 ▲미래차 핵심 기술 투자 등 초격차 기술 확보 ▲지원 인프라 확층 ▲미래차 전환 지원기구 설치 등 사업 전환과 적응 지원을 통해 부품기업들이 전기차 부품기업으로 빠르고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정부는 법 시행 원년인 2024년 자동차 산업에 총 4425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며 그중 3925억 원을 미래차 초격차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그린카 개발에 1320억 원, 스마트카 개발에 828억 원, 자율주행기술 개발 등에 1336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조이현 객원기자